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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에서도 울려 퍼진 '흑인의 삶도 중요하다'

제63회 그래미, '여성'과 '흑인 인권'에 집중하다... 시상엔 논란 분분

21.03.19 06:40최종업데이트21.03.19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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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제63회 그래미 시상식 ⓒ Recording Academy

 
지난 15일(현지 시각), 미국레코딩예술과학아카데미(NARAS)가 주관하는 '제63회 그래미 시상식'이 개최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가 진행을 맡았으며, 일반 관중이 없는 상태에서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그 어느때보다 소박하게 진행된 행사였다. 사전에 녹화된 공연 영상이 실시간 라이브 공연을 대체했다.
 
올해 그래미는 그 어느 때보다 험악한 여론에 둘러싸인 채 시작해야 했다. 2020년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던 위켄드(The Weeknd)와 그의 노래 'Blinding Lights'가 어떤 후보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위켄드는 '그래미는 부패했다'며 분노했고, 최근에는 그래미 시상식에 대한 완전한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른바 '위켄드 스넙'의 파장은 컸고, 그래미 시상식은 전년 대비 53% 하락한 시청률을 받아들여야 했다. 1000만 명 이상의 시청자가 빠져나간 것이다.
 
물론 최근 몇 년 간 한국 언론이 그래미 시상식에 대해 기울이는 관심은, '방탄소년단'과 관련된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방탄소년단이 그래미에서 거둔 단계적 성과는 괄목할만한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2019년 제61회 그래미에서는 시상자로, 2020년 제62회 그래미에서는 릴 나스 엑스(Lil Nas X) 등과 함께 공연자로 나섰다. 올해에는 최우수 팝/듀오 그룹 퍼포먼스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성과 역시 거뒀다. 시상식 말미에 단독 공연을 배정받는 등 현지에서의 위상 역시 과시할 수 있었다. 최우수 팝/듀오 그룹 퍼포먼스상은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Rain On Me'에 돌아갔지만, 미래를 기약하기에 충분했다.
 
여성 뮤지션, 그리고 'Black Lives Matter'
 

제63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한 허(H.E.R)의 'I Can't Breathe' ⓒ Sony Music


비욘세는 'Black Parade', 메간 디 스탤리온과 함께 한 'Savage' 등으로 4개의 트로피를 챙겼다. 비욘세는 이로써, 역사상 가장 많은 그래미 트로피(28개)를 거머쥔 솔로 가수로 기록되었다. 비욘세 뿐 아니라 올해 그래미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여성 뮤지션들의 활약이었다.

작년에는 빌리 아일리시(Billie Ellish)에게 4개의 주요 부문(General Field)을 몰아 주었다면, 올해는 4개의 주요 부문(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노래상, 최우수 신인 아티스트상)이 네 명의 여성 뮤지션들에게 고루 돌아갔다. 올해의 앨범상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 Folklore >에 돌아갔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팬데믹 기간 동안, 애론 데스너와 잭 안토노프 등과 협업하며 팬데믹 시대의 고립감과 개인적인 사색을 담아냈다. 이 결과에 따라 테일러 스위프트는 프랭크 시나트라, 스티비 원더와 함께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세 번 수상한 뮤지션으로 기록되었다.

올해의 레코드상은 빌리 아일리시의 'Everything I Wanted'에 돌아갔다. 올해의 노래상은 허(H.E.R)의 'I Can't Breathe'에 안겨졌다. 신인 아티스트상은 'savage'의 주인공 메간 디 스탤리온(Megan Thee Stallion)의 몫이었다. 과거 레코딩 아카데미의 전 대표 닐 포트나우가 '여성 뮤지션들이 그래미를 받고 싶다면 분발해야 한다'라는 발언을 했던 것을 감안하면 고무적인 변화다.
 
올해 그래미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삶도 중요하다)'라는 구호다. 최근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상 수상곡들은 대부분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2위를 차지하는 히트곡이었다. 반면 'I Can't Brethe'는 차트 100위권에도 입성하지 못한 곡이었다. 그러나 이 곡은 조지 플로이드의 비극 이후 번진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삶도 중요하다)' 운동의 연장선에 있는 곡이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I Can't Breahte'는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강력 진압에 목숨을 잃기 직전 내뱉었던 말이며, 'BLM' 운동을 상징하는 구호이기도 하다. 허는 수상 소감에서도 흑인 사회에 대한 연대를 선언했다. 최우수 멜로딕 랩 퍼포먼스 수상곡인 앤더슨 팩(Anderson Paak.)의 'Lockdown', 최우수 알앤비 퍼포먼스 수상곡인 비욘세의 'Black Parade' 역시 모두 2020년의 시대상을 담아낸 곡들이었다. 릴 베이비(Lil Baby)와 런 더 쥬얼스(Run The Jewels)의 킬러 마이크(Killer Mike)가 선보인 'The Bigger Picture'의 무대는 백인 경찰에 진압당하는 흑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재현했다. 올해 그래미가 어떤 가치에 역점을 두었는지 미루어볼 수 있는 부분이다.
 
"Where is the hope and the empathy?
희망과 공감은 어디로 갔는가?
 
How do we judge off the color?"
어떻게 우리는 서로를 색깔로 판단하는가?
 - 'I Can't Breathe(H.E.R)' 중

 

2021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레코드상'을 수상한 빌리 아일리시(오른쪽)과 피니어스 오코넬(왼쪽) ⓒ Getty Images

  
2010년대 이후 그래미는 유독 '화이트 그래미'(백인 그래미)라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흑인 음악을 제외시키거나, 보수적이고 안전한 결정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이들도 여론을 의식했다.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900명의 여성, 유색인종 선거인단을 추가했고, 그 결과 제 61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차일디시 감비노(Childish Gambino)의 'This Is America'가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상을 수상했다. 올해에는 두 개의 주요 부문을 흑인 여성 뮤지션에게 안겼다. 따라서 '그래미는 백인 잔치일 뿐이다'라는 편견이 옛 말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파열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위켄드가 후보에서 탈락한 것에 이어, 본 시상식에서도 음악팬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일부 부문의 경우, 음악팬들의 민심과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의 레코드'상을 수상한 빌리 아일리시의 'Everything I Wanted'는 음악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다른  한 해를 대표할만한 명분이 부족하게 느껴진다(빌리 아일리시는 수상 소감에서 메간 디 스탤리온이 상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피치포크 매거진에서 10점 만점을 받는 등 음악 마니아들의 극찬을 받았던 피오나 애플의 < Fetch The Bolt Cutters >가 앨범상 후보에 올라가지 못한 것 역시 아쉬움을 살 만하다. 올해의 그래미는 여러 면에서 변화의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 해를 결산하고 음악계의 다양성을 조망하는 데에 있어 한계가 있다는 사실 역시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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