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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이지 않은 90년대 군대 얘기, '청불' 받은 이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하정우와 윤종빈 감독의 출세작 <용서 받지 못한 자>

21.03.03 13:44최종업데이트21.03.0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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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차인표와 이휘재, 구본승 등 연예계를 대표하던 인기스타들이 대거 현역으로 입대하면서 KBS에서는 1995년과 1996년 국방부와 제휴해 <남자만들기>와 <신고합니다>라는 드라마를 제작해 큰 인기를 끌었다. MBC에서도 지난 2002년 성유리가 육군 소위로 출연하는 <막상막하>라는 4부작 미니드라마를 제작하기도 했다.

지난 2013년부터 군대는 예능에도 진출해 연예인들의 군입대 체험기를 그린 <진짜 사나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이 3년 넘게 인기리에 방영됐고 2018년에는 <진짜 사나이 300>이 약 4개월에 걸쳐 방송됐다. 작년에는 <진짜 사나이>를 패러디한 웹 예능 <가짜 사나이>가 제작돼 2기까지 공개되기도 했다. 이 밖에 < 공동경비구역JSA >, <연평해전>, <알포인트>, <대한민국 1%> 등 군대가 배경인 영화들도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와 예능, 영화 모두 각자의 장르적 특성상 군대라는 고립된 공간을 제대로 설명해 주진 못한다. 군 관련 영상매체들이 실제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쉽게 공감을 얻지 못한 이유다.

하지만 2005년 윤종빈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하정우가 주연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는 그동안 각종 매체에서 애써 감췄거나 예쁘게 포장됐던 '군대'라는 공간의 어둡고 추한 부분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수많은 현역, 예비역, 민방위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용서 받지 못한 자>는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는 등 국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 청어람

 
'믿고 보는 배우' 하정우의 주연 데뷔작

<추격자>와 <국가대표>, <황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베를린>, <암살>, <신과 함께> 시리즈 등을 히트시킨 하정우는 현 시점에서 관객들이 가장 신뢰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실제로 하정우는 지난 2018년 <신과 함께 -인과 연>을 통해 역대 최연소 누적관객 1억 명을 돌파했다.

데뷔 초반만 해도 하정우는 여러 영화와 드라마, 시트콤 등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렇게 무명 생활을 이어가던 하정우는 2005년 중앙대 연극영화과 동문인 윤종빈 감독의 독립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분대장 유태정을 연기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정우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모범적인 군생활을 하는 분대장과 전역 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하는 지질한 연기를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용서받지 못한 자>가 화제가 된 후에는 하정우가 연기한 명장면들이 '인터넷 짤방'으로 제작돼 돌아다녔을 정도다. 

하정우는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에도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군도:민란의 시대> 등 윤종빈 감독이 연출한 작품들에 주연으로 출연하는 의리를 과시했다. 특히 <군도> 촬영을 앞두고는 삭발도 불사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전투화 불광내는 비법
 

<용서 받지 못한 자>를 보면 입대 전 군대에 대한 각종 '꿀팁'을 얻을 수 있다. ⓒ 청어람

 
군대 풍경을 가장 사실적으로 다룬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는 차마 글에 담기 어려운 거친 표현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그다지 폭력적이지도, 선정적이지 않은 이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것도 분명 거친 대사들이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래도 미필자들은 <용서받지 못한 자>의 내용을 머리 속에 넣어두면 군생활에 적잖은 도움이 될 수 있다(도움이 되기 전에 군대 가기가 더 싫어질지도 모른다는 점은 알아서 주의하자).

특히 영화 초반 유태정(하정우 분)이 이승영(서장원 분)에게 전투화 불광 내는 비법을 가르쳐 주는 장면을 배워두면 자대에서 매우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자판기 밀크커피와 우유를 절묘하게 섞어 프랜차이즈 매장의 인기 있는 커피 맛을 흉내 내 야간 근무가 끝난 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하정우와 서장원이지만 관객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캐릭터는 바로 허지훈이다(영화 속에서 일병으로 분한 허지훈은 유태정 전역 후 일병으로 진급하지만 캐릭터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허지훈은 마치 부대 내 신병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은 듯 매우 실감나는 이등병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놀라운 사실은 허지훈을 연기한 배우가 바로 <용서받지 못한 자>를 연출한 윤종빈 감독이라는 점이다.

물론 영화의 스토리에서 허지훈은 비극적인 스토리의 단초를 제공하는 인물이지만 그와 별개로 허지훈의 대사와 행동들은 윤종빈 감독의 실제 군생활이 어땠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리얼하다. 

한수현-임현성 조·단역으로 꾸준히 활동
 

마수동 병장을 연기한 임현성(가운데)은 영화 데뷔작인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호연을 펼쳤다. ⓒ 청어람

 
<용서받지 못한 자>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 윤종빈 감독의 졸업작품이다. 따라서 주연 배우인 하정우, 서장원을 포함해 대부분의 배우와 스태프들이 윤종빈 감독의 학교 동문이다. 서글서글한 손영일 일병(영화 중반에 상병 진급)을 연기한 손상범은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각본과 미술, 조감독까지 도맡았고 이후 제작과 투자 부문 스태프로 변신해 <박쥐>, <마더>, <전우치>, <베를린>, <수상한 그녀>, <검사외전> 등의 영화에 참여했다.

하정우의 추천으로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심대석 상병(역시 중반에 병장진급)역을 맡은 한수현(개명 전 한성천)은 일·이병을 관리해야 하는 상병의 고뇌(?)를 잘 표현했다. 한동안 자신에게 맞는 차기작을 만나지 못한 한수현은 2012년 하정우와 공효진, 김성균 등이 출연한 국토 대장정 영화 < 577프로젝트 >를 통해 영화계로 돌아왔다. 한수현은 < 577프로젝트 > 이후 <롤러코스터>, <베테랑>, <범죄도시>, <1987>, <백두산> 등에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주인공 이승영을 연기했던 서장원이 2008년 이후 연기활동이 뜸한 반면에 말년 병장 마수동을 실감나게 연기했던 임현성은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하정우를 제외하면 가장 '잘 나가는' 배우가 됐다. 마수동 병장은 활동복과 방상내피(일명 깔깔이)의 믹스매치, 간부를 의식하지 않는 장난기, 그리고 "매우 편안하구만~", "4가지 매우 없네~"같은 한정적인 대사 만으로도 모든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물론 이승영 입장에서 보면 마수동 병장은 군대 내 부조리를 상징하는 '악의 축'같은 인물이지만 사실 군대에서 말년에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다. 가끔 후임들을 데리고 심한 장난을 치기도 하지만 내무반의 위계질서를 걱정하고 시비가 붙었던 유태정을 따로 불러내 사과하는 등 최선임으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유태정의 표현대로 '조금 단순하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캐릭터로 그려진다.

마수동을 연기한 배우 임현성은 개성 있는 마스크를 앞세워 여러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꾸준히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단편 영화를 제외하면 대부분 조·단역이지만 진정성 있는 연기로 작품마다 점점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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