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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그 한 마디가 그토록 어렵던가요

[리뷰] 영화 <세 자매>로 비춰본 우리들의 가족

21.03.01 11:27최종업데이트21.03.0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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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자매> 한 장면. ⓒ 리틀빅픽처스

 
처음엔 답답했다. 그러다가 서글퍼졌다. 영화 <세자매>를 보면서 내 마음에 일었던 감정들이다.

첫째 딸인 희숙(김선영 분)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미안하다"를 입에 달고,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다"라고 말하며 괜찮은 척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답답했다. 그러다 영화 말미에 희숙의 딸 보미(김가희 분)가 외할아버지의 생신날 아수라장이 된 생일상 앞에서, "어른들이 왜 사과를 안 하는데!" 하고 소리치던 장면에서 쿵, 마음이 내려앉으며 서글퍼졌다.

왜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하는 '미안하다'는 말에 그토록 인색했던 것일까. 그들은 성장 과정에서 얼마나 당신들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것일까.
살다 보면 기쁘고 즐거운 감정보다는 괴롭고, 슬프고, 외롭고, 짜증 나고, 화나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더 많았을 텐데. 그들에게 그런 감정들은 되도록이면 남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억누르고 스스로 조용히 처리해야 하는 것으로 치부된 것은 아니었을까.

유년기에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도 그들 부모 세대의 피해자였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세 자매 캐릭터는 영화적 과장이 첨가되기도 했겠다. 캐릭터 자체를 온전히 일반화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들의 처지와 시각에 따라 달리 드러날, 분명한 공감 지점은 이 영화가 갖는 힘이다.

결코 괜찮지 않은 결혼 생활과 자녀와의 관계를 이어 가면서도 별 일 없는 척하는 큰 딸 희숙. 세 자매 중 가장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듯이 보이지만, 자신의 내적 고통을 종교적인 믿음 뒤에 꾹 누르며 살아가는 둘째 미연(문소리 분). 연극 대본 작가이나 자신의 작품에 대한 모든 비평에 예민하고, 결혼 생활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하며 천방지축 살아가는 셋째 미옥(장윤주 분). 이들이 영화를 끌어가는 '세 자매'이다.

세 자매 모두 각자의 삶에서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적절한 해결방법을 모르며, 혹은 회피하며 살아간다. 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릴 적에 빈번했던 아버지의 가정 폭력이었다.

우리는 모두 겉으로 보아서는 별문제 없이 살아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언어적, 신체적 폭력에 노출되었을 때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스스로 지킬 방법은 없다. 유년기의 상처는 신체든 정신이든 우리 몸 어딘가에 상흔을 남기고 삶의 어느 순간에 불쑥불쑥 올라와 영향을 미친다.

어린 미연이 큰 언니 희숙을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구해내고자 최후의 수단을 취해도 보지만, 주변 어른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무산된다. 이는 가부장적인 시대에 흔들릴 수 없는 아버지의 권위와 폭력에 방관하는 사회를 드러낸다. 도저히 깰 수 없는 단단한 벽 앞에서 자식들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성장한다. 이는 그들이 성장 후 만든 가정에서 스스로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지점을 만들어낸다.

때로는 무기력하게(첫째 희숙), 때로는 강압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며(둘째 미연), 때로는 스스로를 쓰레기처럼 여기며(셋째 미옥)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영화 <세자매> 스틸 컷 ⓒ 리틀빅픽처스

 
연기의 끝을 보여주고 싶었다던 감독의 의도대로 배우들의 연기에는 힘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끝장을 내는' 그녀들의 연기는 오히려 인물들의 내면의 고통을 극대화하여 공감도를 끌어올린다. 

가족들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면 내 잘못이 아니면서도 전전긍긍한 마음이 드는 큰딸이어서 더 희숙에게 공감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미연처럼 교회 집사를 하며 모든 공치사를 하느님의 보살핌으로 돌리는 여동생이 있어서일지도. 할 말은 하지만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대하는 막내 동생이 있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영화는 각자가 처한 가족 관계를 대입하면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듯 전개된다.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부모는 자식들을 동일한 저울추로 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 가지에서 나고 자란 형제, 자매들일지라도 각자의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삶의 무게는 달랐을 것이다. 부모의 표현이 왜곡되었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들의 출발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를 사랑이라고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엔딩 크레디트에 삽입된 이소라의 노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는 모든 가족들의 심정을 대변하면서도 심사를 어지럽게 한다.

블랙 코미디 같은 장면도 있었으나 시종일관 무거운 마음이 들었던 이 영화에서 그래도 희망을 본 지점이 있었다. 마지막 아버지의 생신 장면에서 가식덩어리로 살아왔던 미연이 아버지에게 한 다음 대사에서다. 

"사과 안 하실 거예요? 우리한테? 사과는 목사님한테 하실 게 아니고 우리한테 하셔야 돼요!"

우리는 종종 정말 해야 할 상대가 아닌, 엉뚱한 데에 자신의 잘못을 빌고 그것으로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감정적 피해를 당한 당사자의 아픔은 전혀 씻겨진 것 하나 없는데도. 아니, 오히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을 지켜내지 못한 자책감까지 더해져 괴롭게 살아가는 줄도 모르면서 말이다.

가족 중 누구라도 어릴 적 상처 입은 감정을 용기 내어 이야기한다면, 무조건 미안하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그때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하라는 말은 필요 없다. 상처 입은 내면 아이를 끌어안고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그녀가 겪었을 고통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그녀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진심을 담아 하는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 한마디뿐이다.
그런 다음에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이해할지, 말지는 그들의 선택으로 남겨 둘 일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brunch.co.kr/@gruzam47)에 함께 게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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