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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여성 넷의 불안하면서도 불운한 연애담

[김성호의 씨네만세 307] <아홉수 로맨스>

21.02.22 14:20최종업데이트21.02.2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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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수 로맨스 포스터 ⓒ (주)스튜디오보난자

 
로맨틱코미디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로맨스와 코미디를 내세운 장르니만큼, 충분히 낭만적이고 재미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공포와 스릴러, 액션, 전쟁 등 여타 장르에 비해 로맨틱코미디에서 특별히 중요한 게 있다. 공감이다. 평생 귀신을 보거나 생명에 위험을 느끼고, 각종 범죄나 전쟁 상황과 맞닥뜨리지 않는 사람도 살면서 몇 번쯤 연애는 해보기 때문이다.

사랑의 유경험자들이 관객이니만큼 로맨틱코미디는 충분히 그럴듯해야 한다. 각자가 한 사랑 못지않게 낭만적이고 재미있으며 그럴 듯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로맨틱코미디 창작자들은 어떻게 해야 사랑이 더 재미있어지는지를 탐구한다. 관객들이 할 법한 고민을 의미 있고 매력적으로 풀어나가는 작업은 그래서 로맨틱코미디가 천착하는 단골 주제가 된다.
 

▲ 아홉수 로맨스 스틸컷 ⓒ (주)스튜디오보난자

 
서른 앞둔 여자들이 들려주는 보통의 연애담

여기 네 친구가 있다. 서른을 앞둔 여자들이다. 학창시절부터 단짝이던 이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남자다. 연애와 사랑, 결혼과 이별, 갈등과 헤어짐 속에서 답을 찾아나가는 이들이다.

지나고 보면 갓 서른이겠으나 당면한 이들에겐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겐 젊음이 끝나는 것 같은 나이고, 어서 짝을 찾아 결혼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지 모른다. 주변엔 하나 둘 결혼하는 친구가 있고, '계란 한판'이 가득 찼으니 어서 짝을 데려오라는 성화에 시달리기도 한다. 저는 그렇지 않더라도 같은 나이의 누군가는 그렇게 살고 있음을 외면하기 어렵다. 어찌 고민이 없겠는가.

서연(이새별 분)은 작은 카페를 운영한다. 여러 남자와 제법 많은 연애를 했지만 제대로 된 짝을 찾지 못했다. 두 달 전 마지막 연애 뒤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그녀에게 우연인 듯 운명처럼 한 남자가 다가온다. 늘 따스하고 다정한 상혁(양지원 분)이다. 자주 찾아와 관심을 보이고 좀처럼 화도 내지 않는 상혁과 서연은 새로운 만남을 시작한다.

희주(조한나 분)는 항공사 승무원이 되겠다던 꿈을 이뤘다.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미국과 유럽 등을 오가며 사는 그녀에겐 오래된 연인이 있다.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동석(지찬 분)이다. 무려 10년을 뒷바라지한 오랜 사이다. '동석이가 시험만 붙으면' 희주는 하고 싶은 일이 참 많다.
 

▲ 아홉수 로맨스 스틸컷 ⓒ (주)스튜디오보난자

 
모든 연애엔 각자의 고충이 있다

보영(강나리 분)은 아동극단을 운영하는 어엿한 단장이다. 보영은 비밀로 해오던 단원 주승(서인권 분)과의 연애를 최근에야 밝혔다. 대출까지 받아가며 어렵사리 극단을 꾸려가는 보영에게 주승과의 연애는 일상의 활력소다.

가희(이다해 분)는 세련된 직장인이다. 채 서른이 되지 않았는데 자산관리인으로 제법 잘 나가고 있다. 얼마 전 가희 앞에 마음을 끄는 남자 한 명이 나타났다. 재미교포 크리스(구윤상 분)다. 저와 생각하는 것도 하는 짓도 완전히 다른 크리스에게 가희는 금세 푹 빠져버린다.

<아홉수 로맨스>는 서연과 희주, 보영, 가희의 연애담이다. 제목처럼 스물아홉 여성들의 불안하면서도 불운한 연애를 다뤘다.

서연은 답답한 남자를 만난다. 뭐든 틀어지는 게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기려나보다"하고 자동응답기처럼 말하는 상혁이 어느 순간부터는 짜증스럽다. 몇 차례 진지하게 이야기해봤지만 도무지 고쳐질 기미가 없다. 작은 균열은 조금씩 관계를 비틀어간다.

희주의 남자는 바람을 핀다. 10년 연애가 불러온 권태 때문이었을까. 동석은 희주를 속이고 학원에서 더 어리고 예쁜 여자와 관계를 시작한다. 철저하게 서로에게 서로의 존재를 숨긴 채다. 낌새를 챈 희주의 일상은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 아홉수 로맨스 스틸컷 ⓒ (주)스튜디오보난자

 
당신의 연애만 힘들고 불안한 게 아냐

보영이라고 편안하기만 한 건 아니다.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는 선배가 주승에게 호감을 보인다. 이렇다 할 비전이 보이지 않는 극단으로는 주승을 잡아두기가 쉽지 않다. 주승이 나서서 딱 잘라 끊어주길 바랐지만 주승은 보영에게 하나 둘 감추는 게 늘어간다.

크리스에게 마음을 빼앗긴 가희도 심란하다. 크리스는 좀처럼 가희에게 마음을 고백하지 않는다. 애인으로 곁에 있고픈 가희에게 크리스는 친구사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확인받고 싶은 가희와 무책임해 보이는 크리스의 관계는 가희의 희생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

이들 네 쌍의 연인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연애를 한다. 애틋하고 절절하지만 실망스럽고 화가 치미는 그렇고 그런 연애다. 어떤 관계는 틀어지고 깨져나가 다시는 붙지 않는다.

그렇고 그런 연애담 끝에서 영화는 말한다. 삶은 그래도 살아지더라고, 사랑하고 이별하며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고.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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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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