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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메기 세상' 만들자던 백기완, 그가 남기고 간 숙제

[하성태의 사이드뷰] KBS1 <산자여 따르라, 백기완>가 준 울림

21.02.22 13:43최종업데이트21.02.2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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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모래밭에 떠밀린 미역쪼가리마냥
몸부림쳐 일으킨 샛바람이여
이제는 몰아쳐 이제는 몰아쳐
저 반역의 역사를 발탁 뒤집어엎어라

오늘도 흰구름 이고 껌뻑이는 한라여
그때 그 찢겨진 참해방의 깃발
하늘 높이 하늘 높이 나부끼시라
그날 그 피눈물의 싸움은
저만치 앞서가는 인류의 영원한 길라잡이라

아, 천년만년 한결같은 변혁의 샛바람이여
이어차아 쳐라쳐라 이어차아 쳐라쳐라
이어~차 이어~차 이어~차~ 이어~차~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아, 샛바람이여>란 시의 일부다. 지난 2018년 3월 제주4.3범국민위원회가 4.3 70주년을 기념해 백 소장에 권두언(책의 머리말)을 청탁, <4370신문> 3호에 실린 일종의 권두시다.

우리 현대사의 최대 비극 중 하나인 제주4.3의 정신을 '참해방의 깃발'로, 그 '피눈물의 싸움'을 '인류의 영원한 길라잡이'라 빗댄 대목이 인상적이다. 70여 년 전 항쟁을 역사의 한 페이지에 가둬두지 않았다.

이내 '한결같은 변혁의 샛바람'에 비유한 뒤 제주 섬을 둘러싼 바다와 파도를 끌어와 역동성을 부여한 '이어~차'란 마지막 시구의 반복은 눈여겨 볼 만하다. 백 소장이 평소 어제의 역사를 오늘의 과제로 인식하고, 그 역사의 물결에 산증인으로 동참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명징한 시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당시 4.3범국민위원회 < 4370신문 > 편집장으로 일했다. 메이저 신문과 비교하면 넉넉하지 않은 고료였지만 국민 세금으로 만든 신문이었기에 고료는 반드시 집행해야했다. 백 소장과 통일문제연구소는 한사코 고료 받는 일을 거절했다. 대신 고료를 제주4.3의 진상을 알리는 데 보태달라고 전해왔다.

이후 들려온 백 소장의 와병 소식에 마음이 착잡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후로 3년, 73주년을 맞는 제주4.3은 '4.3 특별법 개정안' 국회통과를 목전에 두는 진보를 맞았다. 하지만 백 소장은 그 진보와 함께 할 수 없게 됐다.

'민주화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평가와 함께 백기완 통일문제연수소 소장이 지난 15일 오전 타계했다. 대통령을 포함해 각계의 진심 어린 추모가 이어졌고, 백 소장을 추모하는 개개인들인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과거 이 '거리의 혁명가'와의 기억 한 토막을 길어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백 소장이 마석공원에 묻힌 다음 날인 20일 밤, KBS1는 특집다큐멘터리 <산 자여 따르라, 백기완>를 편성했다. 4명의 PD가 연출로 이름을 올린 것에서 알 수 있듯, KBS가 <뉴스타파>와 공동기획하고, 독립제작사 나누크 프로덕션이 속도를 내 제작한 이 다큐는 분명 '한국 진보운동의 큰어른'을 떠나보내며 공영방송이 갖춘 어떤 예우라 할 수 있었다.
 

KBS1 특집 다큐멘터리 <산자여 따르라, 백기완> 한 장면. ⓒ KBS1

 
공영방송의 예우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
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 이슬처럼 맺히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릴지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굽이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때까지
우리 흔들리지 말자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백 소장은 "죽어가면서 입으로 천장에다 써서 새겨 넣던 시"라고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모태가 된 장편 시 '묏비나리'는 1980년 백 소장이 서울 서대문구치소 옥중에서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노랫말로 친숙한 시구를 백 소장의 쩌렁쩌렁한 육성으로 듣는 일은 분명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산자여 따르라, 백기완>의 첫 장면이 그랬다. <뉴스타파>의 2부작 <불쌈꾼 백기완> 제작 당시 제작사와 나눈 여덟 차례의 심층 인터뷰 속 백 소장은 예의 그 독야청청한 지사의 면모 그대로였다. 자신이 입고 있는 개량 한복을 "우리 옷"이라 일컬으며 "여러 분이 입은 옷은 서양 거지 옷"이라고 비교해도, 본인은 빗으로 머리를 빗지 않는다며 "역사가 자기 거울이야"라고 허세 아닌 허세를 부려도 '백 소장이라면 그럴 만'한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이렇게 백 소장의 육성으로 출발한 다큐는 우선 백 소장을 추모하는 발길을 기록하고 그들의 육성을 전했다. 병상에서도,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세월호 유가족을 걱정하고, 고 김용균씨와 '세상의 김용균'들을 근심했다던 백 소장. 그런 백 소장의 영결식에서 조사를 하기도 했던 김용균재단 김미숙 대표는 이런 다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동안 백 선생님이 용균이 사고 나고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양쪽에 부축해가면서 여기저기 많이 오셨잖아요. 마지막 유언처럼 김진숙 님하고 저하고 힘내라고 하셨는데 힘없는 사람들에게 많은 힘을 주는 활동을 하셨잖아요. 저도 또한 그런 사람으로 베푸신 마음으로 저도 그렇게 계속 그 분 마음을 닮아가야겠구나."

15일 이후 빈소와 추모식 현장 등을 발 빠르게 카메라에 담은 제작진은 이외에도 백 소장을 기억하는 이들의 육성을 여럿 담아냈다. 물론 본인이 생전 인터뷰를 통해 밝힌 과거 일화들도 빠질 수 없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 사상이나 김구 선생과의 일화, 한국전쟁으로 인해 여덟 명의 가족이 절반씩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야 했던 상황, 당시 국군으로 참전했다 전사한 형을 향한 애달픔, 전쟁으로 헐벗은 산천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매진했다는 '자진녹화대' 활동 모두 청년 시절부터 한국 현대사를 관통했던 백 소장의 생애를 되돌아보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물며 이런 증언은 어떠한가. 조문을 왔다는 방배추(본명 방동규)씨를 제작진은 과거 이름깨나 날리던 이른바 '주먹'이라 소개했다. 상상력을 발휘하면 '장군의 아들'과 어울려 다니던 '어깨'라 할 수 있을 테고. 그렇게 청년 시절 백 선생과 어울렸다는 방씨는 백 선생에서 뺨을 얻어맞았다며 이런 일화를 들려줬다.

"사내자식이 주먹을 쓰면 삼천만 명 동포가 웃고 울고 그러는 거지 열 명을 갖고 주먹 쓴다고 사내새끼가 돌아 다녀. 너랑 동무 안 해(...)라며 소리지르더라고. (내가) 고급술도 먹고 하면, 먹다가 들키면 백기완한테 혼난다고. 이놈아 백성들은 어떻게 사는데 술을 몇 십만 원어치를 먹고 돌아다니냐고 난리쳤다."

노나메기 세상을 위하여
 

KBS1 특집 다큐멘터리 <산자여 따르라, 백기완> 한 장면. ⓒ KBS1

 
이후로도 '한국의 포레스트 검프'라 부를 만했다. 아니, 한국 현대사 주요 장면을 함께 한 백기완의 발자취 자체가 역사였다. 군사정부에 의해 수차례 고문을 당했던 기억을 대수롭지 않게 떠올릴 때는 그 말 할 수 없는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그조차 '낭만주의'에 비유하는 모습은 현대사를 온몸으로 감내해 온 큰 어른의 풍모를 은연중에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 백 소장을 대중에게, 전 국민에게 각인시킨 '사건'(?)이 바로 역사에 남을 1987년 대선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 여러 의미의 한 획을 그은 이른바 '양김 분열' 가운데서 고군분투했던 백 소장이 들려주는 일화는 그 당시 한국 정치사의 아이러니와 민주진보 진영의 딜레마를 함축하고 있었다.

"선생님, '누구 한 명에게 손들어주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더라고. 내가 눈을 똑바로 뜨고 그랬어. 기자 선생님, 이제 내가 누구 손을 들어주면 한 사람이 물러서야 돼. 내가 누구 하나 손을 들어줘도 한 사람이 안 물러나면 둘이서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분열은 우리가 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둘이서 합작을 해서 하나가 돼야지 내가 누구 하나 도와줬다고 그래서 이 분열의 함정을 우리가 메울 수는 없는 겁니다. 그랬더니 '아 알겠다'라면서 물어보는 사람도 울었어. 물론 나도 울었고."


그 눈물을, 제작진은 1987년 12월 14일 무소속 백기완 대통령 후보의 사퇴 기자회견 당시 백 소장의 뜨거운 눈물과 연결 지었다. 그리고, 그 분열상 이후 펼쳐진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사의 굴곡 이후 민중들은 계속해서 "눈물 젖는 세력"으로 남았고, 백 소장은 그 민중과 노동자들 편에 섰다.

"이 땅에서 제일 집중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노동자 아니야. 그 가운데서도 회사하고 갈등이 있어서 싸우는 노동자 아니야. 그 싸우는 노동자가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백기완이가 앉아서 집에서 끓여주는 뜨끈한 국물 먹고 앉아 있어. 도움이야 됐겠어? 그래도 머리 숫자 하난 보태줬어." (고 백기완 소장 생전 인터뷰)

한결같이. 백 소장을 곁을 지켜 온 이들이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가 바로 이 한결같이가 아닐까. 절차적, 그리고 제도적 민주주의의 완성 이후 숱한 재야 인사들이 정치권에 입성했다. 그들 중 다수는 변했고 변신했다.

반면 백 소장의 행적은 그들과의 비교 자체가 무색할 만큼 초지일관이었다. 변함없이 노동자‧민중 곁을 지켜온 백 소장을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은 '큰 산'에 비유했다.

"이런 이른바 문민정부를 겪어오면서는 노동자들한테 적대적으로 돌아선 분들이 많습니다. 상실감이 굉장히 컸었어요. 거리에서 그 최루탄을 같이 마시면서 곤봉에 쫓겨 가면서 그렇게 싸웠던 동지들이 이제는 우리편이 아닐뿐더러 우리한테 적대적이구나 하는 건 굉장히 아프거든요.

그리고 그때마다 노동자들이 고립됐던 그런 역사가 있는데 백 선생님은 늘 한결 같이, 그냥 그 자리에서 함께 해주셨던 것들이 너무 정말 말 할 수 없이 든든하고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백기완 선생님은 그런 의미에서 존재 이상의 힘을 가졌던 거 같아요."


'노나메기' 세상. 끝으로 백기완 소장이 주창했던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모두가 잘 사는 노나메기 세상'의 의미를 되새긴 <산자여 따르라, 백기완>은 그렇게 삼우제를 앞둔 백 소장의 일생을, 그 족적의 가치를 잘 정돈해 되짚고 있었다.

<어머니의 삼팔선> 등 과거 백 소장의 생애를 조명한 KBS의 다큐 및 인터뷰가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급박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고인에 대한 예우를 갖추고 그 의미를 되돌아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구성이었다.

백기완의 정신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고 이어져야 한다는 당위를 애써 소리 높이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산자여 따르라, 백기완>을 만든 제작진의 의도와 같이, 다시금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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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어제는 영화기자, 오늘은 시나리오 작가, 프리랜서 기자. https://brunch.co.kr/@hasungtae 기고 청탁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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