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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가' 김정희 못지않게 눈길 끈 '암행어사' 김정희

[사극으로 역사읽기] KBS2 드라마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

21.02.08 19:00최종업데이트21.02.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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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월화드라마 <암행어사 : 조선비밀수사단>의 한 장면 ⓒ KBS2

 
추사 김정희가 위대한 예술 세계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노력과 천재적 소질 때문이지만, 또 다른 요인에도 어느 정도 기인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정치적 불운도 그의 예술을 심화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18년간의 유배기간 동안 학문과 저술에 매진한 다산 정약용처럼, 김정희 역시 유배지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일궈냈다.
 
정조 임금 때인 1786년 지금의 충남 예산군 신암면에서 태어난 김정희는 만 33세 때인 1819년 과거시험에 최종 급제했다. 그 뒤 병조참판과 성균관 대사성(국립대 총장) 등을 역임한 그는 관직 생활의 상당 부분을 관청이 아닌 유배지에서 보냈다. 이 유배 생활이 결과적으로 한국 문화를 폭넓게 해주는 역설적 효과를 낳았다.
 
김정희의 생부인 김노경(양부는 김노영)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의 대리청정(대리통치) 시기에 정권 실세 중 하나였다. 그랬던 김노경은 1830년에 효명세자가 죽은 지 얼마 뒤에 탄핵을 받고 유배 판결을 받았다. 그 뒤 고금도에서 3년을 보냈다.
 
김노경이 유배를 간 것은 김정희가 헌종 때인 1840년(54세)에 유배를 간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두 부자 다 '윤상도 옥사'에 연루됐다. 탐관오리 탄핵을 시도했다가 '군신관계를 이간시킨다'는 역풍을 맞은 윤상도의 사건에 연루돼 두 부자가 유배자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김정희는 헌종 다음인 철종 때도 유배를 갔다. 이때 유배지는 함경도 북청이었다. 두 차례 유배에 소요된 기간은 약 11년이다. 그 기간의 대부분인 8년 3개월을 그는 제주도에서 보냈다.
 
김정희 시대 사람들은 그를 비운의 지식인으로 기억했다. 그가 사망한 날짜에 기록된, 음력으로 철종 7년 10월 10일자(양력 1856년 11월 7일자) <철종실록> 속의 김정희 졸기(망자에 관한 기록)는 "어린 나이에 영예를 날렸지만, 중간에 가화(家禍, 가문의 재앙)에 걸려 남쪽으로 내쳐졌다가 북쪽으로 귀양 갔으며 풍상을 고루 겪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풍상을 이것저것 겪었지만, 시간을 결코 허투루 쓰지 않았다. 유배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쪽으로 내쳐진' 8년 3개월의 제주도 유배 기간 역시 예술적 심층화의 시기로 활용했다. 이런 추사의 삶이 오늘날의 제주도 학자들의 글에도 소개돼 있다.
 
제주대학교 양진건 교수와 현은선 박사과정이 2014년 <철학사상문화> 제17호에 기고한 '추사 김정희 제주 유배 기록에 나타난 화목(花木)의 교육적 의미'는 제주도에 유배된 죄수들에 관해 스케치하는 대목에서 "어떤 유배인은 1년 만에 사약을 먹고 죽기도 하고, 또는 10년을 살다가 해배되어 돌아가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어떤 유배인은 38년을 제주도에서 살다가 늙어 죽기도 했다"고 한 뒤 "그(김정희)는 8년 3개월의 제주 유배기간 동안에 많은 시·서·화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고 말한다. 김정희는 새로운 땅인 제주를 유배지가 아닌 작품의 무대로 선용했던 것이다.
 

KBS2 월화드라마 <암행어사 : 조선비밀수사단>의 한 장면 ⓒ KBS2

 
그런데 김정희의 인생이 정약용과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계기가 있다. 그것은 KBS2 드라마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의 시대적 배경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그가 암행어사로 활동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그가 파견된 해는 드라마의 배경 시점보다 조금 이른 1826년이다.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하기 1년 전의 일이었다. 이때 김정희의 나이는 드라마 <암행어사>의 성이겸(김명수 분)보다 훨씬 많은 40세였다.
 
순조 임금이 김정희에게 가라고 명령한 곳은 충청우도였다. 임금이 있는 곳을 기준으로 좌우를 정했기 때문에 그가 파견된 곳은 우리 관점으로 바꾸면 충청도 서부다.
 
김정희는 생부 김노경과 더불어 효명세자의 측근으로 분류됐다. 이들 부자가 보좌한 효명세자는 아버지 순조가 안동 김씨에 눌려 사는 것을 보면서 성장했다. 그래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를 끝내고 정상적인 왕도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효명세자의 최대 목표였다.
 
김정희는 영조의 사위이자 화순옹주의 남편인 월성위 김한신의 증손자다. 경주 김씨인 이 집안은 정조가 죽은 1800년 이후의 3년 동안은 세도가문의 일원이었다. 영조의 계비(후처)이자 정조의 새할머니인 정순왕후 김씨가 어린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면서, 정순왕후의 친정인 경주 김씨가 세도가문으로 떠올랐다. 이 시기에 김정희는 10대 중반이었다.
 
하지만, 경주 김씨의 세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 가문의 집권은 1803년 끝났고, 그 뒤로는 순조의 부인인 순원왕후를 배출한 안동 김씨가 1827년까지 권세를 잡았다. 그래서 17세 이후의 김정희는 세도가문의 일원이 아니었다. 그는 안동 김씨 세도정치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갖고 살 수밖에 없었다. 효명세자와 정치적 입장을 같이했던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그가 충청우도 암행어사로 파견됐다.
 
집권세력인 안동 김씨에게 비판적인 효명세자의 측근이 암행어사로 파견됐으니, 충청우도의 수령과 서리 그리고 지방 토호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이 실제로 긴장했으리라는 점은 김정희의 어사 활동 성과에서 나타난다.
 
암행어사 김정희의 서계(書啓, 보고서) 등을 연구한 김명숙 동덕여대 교수의 논문 '암행어사 김정희가 본 19세기 전반기 충청우도의 사회상'은 "1826년 김정희의 서계를 통하여 보고된 충청우도의 수령은 59명이며 이 중에서 12명(20.3%)이 적발·징치되었다"며 "충청우도 수령의 약 1/5 정도가 적발·징치"됐다고 설명한다.
 
'암행어사' 하면 흔히 박문수를 연상하지만, 박문수는 암행어사로 파견된 적이 없었다. 공개 활동을 하는 일반 어사가 된 적은 있어도, 암행어사였던 적은 없었다.

영조시대 관료인 박문수는 복지정책과 개혁에 심혈을 기울인 인물로 유명했다. 그는 대인관계도 좋지 않았다. 영조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과는 매끄럽지 못했다. 청렴·강직으로 인한 부작용이 그처럼 '심각'했다.

하지만, 조선 후기 민중들은 그런 박문수를 좋아했다. 서민들 편에 서줄 그런 인물이 암행어사 같은 것으로 재림해 세상을 바꿔주기를 염원했다. 그런 민중의 염원이 '암행어사 박문수 신화'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암행어사 박문수'는 실제가 아니라 신화인 반면, '암행어사 김정희'는 신화가 아니라 실제다. 충청우도 수령의 5분의 1 정도가 김정희 때문에 징계를 받았다. 이 정도면 '서화가 김정희' 못지않게 '암행어사 김정희'도 탐구해볼 만하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김정희의 관직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5분의 1' 중 하나인 비인현감 김우명이 앙심을 품었고, 그것이 김정희와 그의 가문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KBS2 월화드라마 <암행어사 : 조선비밀수사단>의 한 장면 ⓒ KBS2

 
김우명은 지금의 충남 서천군 비인면에서 현감으로 근무하다가 김정희를 만나 곤욕을 치렀다. 김우명은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효명세자가 죽고 3개월 반이 흐른 순조 30년 8월 27일(1830년 10월 13일) 김우경은 김정희 아버지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 결과, 김노경에게 유배 판결이 떨어졌다.
 
김정희가 1840년에 유배를 간 것은 동일한 사건이 다시 거론되고 그가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어사 활동이 두고두고 그와 가문에 불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작동했던 것이다.
 
김정희의 유배는 그에게 고난과 시련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예술 세계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었다. 그런 고난과 시련이 40세 때의 암행어사 활동에 적지 않게 기인했다. 그렇게 본다면, 그의 암행어사 경력이 한국 문화의 수준을 높이는 데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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