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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에도 끝내 주저앉은 중년 남자... 마음 움직였죠"

[이영광의 '온에어' 80] MBC VR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조윤미 PD

21.02.07 09:24최종업데이트21.02.0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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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났다> 시즌 2 '로망'스 포스터 ⓒ MBC

 
지난해 어린 딸을 잃은 어머니가 VR(가상현실)로 딸과 재회하는 모습을 방송해 눈물샘을 자극한 MBC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가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사별한 아내와 재회하는 남편과 자녀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 1월 21일, 28일 2부작으로 방송된 <너를 만났다> '로망스' 편은 4년 전 아내를 잃고 자식 5명을 혼자 키우는 김정수씨가 VR을 통해 아내 성지혜씨와 재회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이날 방송은 VR을 통해 김정수씨 가족이 살던 집을 그대로 재현해 눈길을 끌었다.

방송 제작 뒷이야기가 궁금해 <너를 만났다> '로망스' 편을 연출한 조윤미 PD를 지난 1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조 PD와 나눈 일문일답.

-<너를 만났다> 시즌2 '로망스' 편 방송을 끝낸 소회가 궁금합니다. 
"긴 시간을 두고 만든 프로그램이라서 체력적,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는데, 방송을 끝내서 홀가분한 마음이 가장 큽니다. 1, 2화로 나눠서 방송했는데 2화를 기다려 주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으시더라고요. '다음주 너무 기대된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계신 게 제겐 좀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방송을 다 보시고는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는 반응도 많았어요. 각자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드린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았던 이유가 뭘까요?
"김정수씨가 보여준 진정성, 진실한 사랑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저희도 방송을 준비할 때는 잘 몰랐어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을 담은 시즌1처럼 감동적인 부분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김정수씨는 참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주셨어요. 두 사람은 아이들 앞에서도 수시로 뽀뽀를 할 정도로 애정표현을 많이 했던 부부였어요. (김정수씨는) 아내가 아프자 손수 간병을 하고, 아내가 떠나자 아내 그림자라도 보고 싶다며 (방송을) 반대하는 딸들을 설득했죠. 비록 가상의 아내이지만 떠나보내는 게 아쉬워 끝내 주저앉은 중년 남자의 진심을 보고 어떻게 마음이 안 움직일 수가 있겠어요."

- 김정수씨 사연은 어떻게 알게된 건가요?
"김정수씨 가족을 만나기까지 약 3개월이 걸렸어요. 그 전에도 여러 가족을 만나 뵀지만 VR 작업은 사진, 동영상이 없으면 불가능하거든요. 김정수씨에겐 아내의 사진과 동영상이 남아있었고, 목소리도 있었어요. 아주 풍부하지는 않았지만요. 무엇보다 이 가족의 유쾌하고 화목한 분위기에 끌렸습니다. <너를 만났다>에선 VR 만남이 가장 중요한 이벤트지만, 본질적으로는 휴먼 다큐멘터리예요. 가족의 부재를 슬픔으로 채우고 있는 가정을 소개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정수씨네 가족은 매우 밝았죠.

2017년 사별한 김정수씨 사연을 처음 들었을 때 '아빠 혼자 아이 다섯을 어떻게 키우실까'란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 아이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기도 했죠. 두 부부가 얼마나 서로를 사랑했는지에 대해선 처음엔 잘 몰랐어요. 취재하면서 하나씩 알게 됐습니다."
 

<너를 만났다> 시즌 2 '로망스'의 한 한면 ⓒ MBC

 
- 자녀분들이 출연을 많이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설득하셨나요. 
"첫째, 둘째는 심하게 반대했죠. 반대한 이유도 충분히 이해돼요. '왜 불편하게 방송국 사람들이 집에 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을 거예요. 내밀한 개인 사정이 방송에 고스란히 담기는 것도 싫을 수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은 돌아가신) 엄마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저희 때문에 자꾸 엄마 생각을 끄집어내야 하는 것도 마음 아픈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첫째, 둘째는 저희와 인터뷰를 하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렸어요.

사실 마음 속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놓고 말하는 게 더 좋대요. 특히 둘째 종윤은 인터뷰를 되게 오랜 기간 미뤘어요. 한 번은 낮에 엄마에 대해 가볍게 물어봤고,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이틀 뒤에 인터뷰를 하자고 했는데 밤에 연락이 와서 나중에 했으면 좋겠대요. 그래서 그러자고 했죠. 아이들이 섬세하고 예민하더라고요. 저희도 굉장히 조심해서 접근했어요. 김정수씨에게도 '아이들한테 이런 질문 해도 될까요?' 하나 하나 허락을 구하고 진행했습니다."

- VR을 통해 집과 숲을 그대로 재현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구상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것인가요?
"숲은 성지혜씨가 생전 좋아했던 장소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장 먼저 구현하기로 결정했어요. 사실 집은 모험이었어요. 집은 실제와 똑같지 않으면 우리집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할 테니까요. 그러면(똑같지 않으면) 힘들게 집을 구현한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벽이나 천정같은 구조물이 있어서 VR 촬영 동선상으로도 제약이 컸습니다. 고민이 좀 많았는데, 저희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기억'이잖아요. 부부는 이 집에서 10년을 사셨어요. 김정수씨에게 이 집은 행복한 기억이에요. 김정수씨가 일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하셨거든요.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면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와서 뽀뽀해주고, 밤에는 아내와 단둘이 식탁에 앉아서 맥주 한잔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시간이 너무 소중했대요. 그 평범하지만 소중한 기분을 다시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너를 만났다> 시즌 2 '로망스'의 한 한면 ⓒ MBC

 
- VR로 고인을 만나는 장면을 녹화할 때의 분위기도 궁금합니다. 시청자들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장면이었거든요.
"이런 표현은 너무 상투적이지만 눈물바다였어요. 진짜 아내가 온 것처럼 생각해 주시고,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하시는 모습이 너무 뭉클했어요. 깊이를 알 수 없는 가족의 마음을 본 것 같아서 마음이 숙연해지고 한편으로는 정말 아름답다고도 생각했습니다. VR을 통한 만남이 끝나고 아이들이 스튜디오로 들어와서 아빠에게 안기는 장면에서 스태프들까지 모두 다 울었어요. 이 가족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아빠가 사실 다섯 아이를 한꺼번에 안기도 버거워요. 두 팔을 다 벌려도 모두 끌어안을 수 없어요. 근데 아빠는 팔을 최대한 뻗어서 아이들을 안아 주면서 '엄마 잘 봤냐'고 물어봐요. 아이들도 서로 토닥토닥 위로해 주고요. 첫째는 막 너스레를 떨면서 오잖아요. 센 척은 다 하면서 '아빠 딸기코 됐다'고 놀리다가 이내 아빠 품에 안겨서 흐느껴 우는데 울면서 소리도 제대로 못 내요. 어린 소녀가 그동안 느꼈을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아빠에 대한 연민 같은 걸 한꺼번에 보여주는 장면 같았어요."

- VR을 통해 성지혜씨와 김정수씨가 함께 결혼식날 영상을 다시 보는 장면도 참 좋았습니다. 결혼식 영상을 다시 보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김정수씨는 결혼한 뒤에 그 영상을 한 번도 보신 적이 없대요. 아내의 진짜 건강하던 시절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너를 만났다> '로망스' 편에서는 사랑의 의미, 부부의 의미에 대해 짚어보고 싶었어요. 부부가 같이 산다는 게 어떤 걸 의미하는지 생각해보고 싶었는데, 결혼식이라는 게 그 출발점이잖아요. 그런데 그 결혼식 장면이 또 굉장히 묘해요. 프러포즈 받았냐는 사진사의 질문에 아내는 '못 받았어요. 평생 우려먹을 거야'라고 하고, 남편은 '잘 살아줄게'라고 웃으면서 말합니다. 단순하고 평범한 말들이 돌이켜 보면 이 부부에게는 정말 지키기 어려운 말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김정수씨에게 과연 어떤 말이 위로가 될까를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김정수씨는 아내에 대한 사랑도 넘치는 분이셨지만, 동시에 아내가 자기와 결혼해서 고생만하다 간 건 아닌지 한없이 미안해하셨어요. 배우자를 잃으신 분들은 이런 아픔까지도 느끼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아내가 '우리 괜찮은 부부였지?'라고 말해준다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김정수씨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우린 괜찮은 부부였으니 남편이 더 이상 지난 시간을 아파하거나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고 싶었어요.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인 아이들과 함께요. 물론 대사를 쓸 때 제작진 마음대로 쓴 건 아니고요 성지혜씨가 남긴 글들을 보면서 신중하게 파악했습니다. 결혼식 영상에서 이어지는 마지막 대사는 이런 바람을 담아 연출하게 됐습니다."
 

<너를 만났다> 시즌 2 '로망스'의 한 한면 ⓒ MBC

 
- 시즌1에 이어 또 다시 2부작으로 구성됐어요. 그럼에도 방송에 못 담은 장면들도 많을 것 같아요.
"저희가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데 3개월 정도 걸렸거든요. 제작진의 상상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게 아니라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야 했어요. VR을 통해 아내를 만나는 장면만 해도 분량이 꽤 많았어요. 식구가 많다 보니 사연들을 한 편에 모두 녹이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어요.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아빠가 하루하루 보여주는 에피소드들과 이야기들이 너무 다채롭고 반짝반짝 빛났거든요. 점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처음부터 2부작을 계획한 건 아니었어요.

아내 성지혜씨가 굉장히 똑똑하고 현명하신 분이셨어요. 김정수씨 표현으로는 자기가 다 지니까 부부싸움이 안 된대요. 아내가 한 마디 하면 자기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을 만큼 현명했대요. 책도 많이 읽고 아이들 교육에도 헌신적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특히 손재주가 좋아서 아이들의 액세서리나 옷을 직접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1회 방송에서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머리핀을 꽂은 사진들이 나옵니다. 아내분이 손수 만드신 거래요.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성지혜씨를 조금 더 소개하지 못한 점은 좀 아쉽죠."

- <너를 만났다>를 통해 제작하면서 어떤 것을 느꼈나요?
"김정수씨는 어떻게 보면 생과 사를 넘나드는 운명적인 사랑을 보여 주셨어요. 분명 세상 어딘가에는 이런 분들이 존재하고는 있는데 그걸 발견하기가 쉽지가 않잖아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근데 운명이라는 게 너무 잔인하게 느껴져요. 바라는 게 하나 있다면, 저희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이 가족에게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겁니다."
조윤미 너를 만났다 VR 휴먼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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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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