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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국경 넘은 방글라데시 체스 소년의 실화

[리뷰] 영화 <파힘>

21.01.26 16:04최종업데이트21.01.2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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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힘> 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영화 <파힘>은 실화를 바탕으로 방글라데시 체스 신동과 아버지의 고군분투를 다루고 있다. 따스한 감동과 진한 부성애가 어우러지며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오랜만에 만끽할 수 있었다. 피에르 프랑수아 마르탱- 라발 감독은 우연히 TV 쇼에 출연한 파힘 모함마드를 보고 이야기에 매료되어 영화화를 결정했다고 한다. 실제 외국인 신분으로 프랑스 대회에서 우승하고 월드 주니어 체스 챔피언 자리에 오른 방글라데시 천재 소년의 삶을 스크린에 옮겨왔고, 사회적 문제를 첨가해 주목을 끌었다.
 
난민 소년 아사드 아메드를 캐스팅해 극의 사실감을 높였다. 인권이 보장된 나라, 자유의 나라 프랑스마저도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이민자, 망명자, 불법체류자를 어쩌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형세가 다른 유럽국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선진국이 허울 좋은 명목과 규제를 따지는 동안에도 길바닥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때문에 편견 없이 받아준 체스 교습소 식구들은 지구촌에 모여 사는 인류에게 필요한 연대와 관용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영화는 체스라는 스포츠로서의 묘미와 재미를 조금만 벗겨내면 인권의 사각지대의 허점을 발견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천재성, 부성애, 스승의 가르침은 한 팀
 
 

영화 <파힘>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방글라데시에서 뛰어난 체스 실력을 갖고 있었지만 아버지 누리(미자누르 라하만)가 반정부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아들 파힘(아사드 아메드)은 위험에 처한다. 자신 때문에 아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자 체스 마스터를 만나러 가자는 달콤한 유혹을 건네며 어렵사리 아들과 국경을 넘는다.
 
의로운 소방관에서 졸지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아빠와 파힘. 남은 가족들에게는 먼저 자리를 잡고 함께 살자고 말해두었지만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다. 그렇게 어렵사리 프랑스에 도착했으나 부자(父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모험이 아닌 추방이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프랑스에서 며칠은 말도 통하지 않았고, 그마저 가져온 돈도 다 써버려 온갖 시련을 겪어야 했다. 노숙은 물론 체스 마스터를 만나 우승하고 말겠다는 꿈은 점점 멀어져만 보였다. 그러던 중 다행히 자선단체의 도움을 받아 일정 기간 머물 수 있는 숙소를 마련하게 된다. 이제 한시름 놓았다 싶어 기뻐하던 부자는 드디어 소문난 체스 학원에 등록하기에 이른다.

체스 교습소의 실뱅(제라드 드빠르디유)은 괴짜 선생님으로 유명했지만 겉으로만 그럴 뿐 속은 여린 츤데레 선생님이었다. 교습소 원장 마틸드(이사벨 낭티)를 혼자서 마음에 품고 있는 소심한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했다. 체스반의 아이들에게 호통은 기본이나, 한 아이 한 아이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한 분석으로 최고의 재능을 끌어내는 지도자였다.
 
특히 파힘이 갖춘 천재성과 승부욕을 기본 재료 삼아 화를 잘 참지 못하고 오만한 성정을 갈고닦아 보석으로 만들어주는 인물이 실뱅이다. 초반 실뱅은 돈 한 푼 없이 찾아온 부자를 냉대하기에 바빴지만, 파힘의 실력과 아버지의 인성을 알아보고 조금씩 이들을 품어 준다. 파힘은 좋은 스승과 선입견 없이 맞아주는 친구들 덕분에 사랑과 우정으로 빠른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이민국에서 발생한 오역으로 두 사람은 거리로 쫓겨나게 된다. 아빠와 아들은 난생처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위기를 맞았으나, 선생님과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체스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빠가 아들을 위해 모진 희생까지도 감수하는 장면이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어떤 부모가 자식의 성공에 걸림돌이 되고 싶을까. 이를 알길없는 파힘은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분노를 여지없이 드러내기에 이른다.
 
가장 영향력 있었던 그 장면
  

영화 <파힘>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체스 경기가 아니었다. 체류증을 발급받지 못해 출전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파힘을 위한 교습소 원장 마틸드의 작은 행동이었다. 재난이 코앞에 와도 보고만 있을 거라는 프랑스인의 냉소적인 태도를 풍자하는 결정적 한 마디였다. 마틸드는 가만히 있지 않고 직접 총리의 생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어 "프랑스는 진정한 인권보장 국가인가요?"라는 날 선 질문을 던진다.
 
이후 파힘은 프랑스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 기여해 특별한 자격을 갖게 되었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에는 그럼에도 여전히 파힘이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문구로 차가운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현실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음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영화 <파힘>은 전반부는 잔잔하면서도 코믹한 유머와 중후반부의 스포츠의 경쟁 심리, 갈등 구조를 적절히 분배해 몰입도를 높인다.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고 지원하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어 뭉클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처럼 체스를 잘 몰라도 즐길 수 있는 체스 영화다. 예상되는 전개마저도 입꼬리를 들어 올리게 하고,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영화다. 올해는 이런 영화를 더 자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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