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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세상을 속인 거짓말

[리뷰] 영화 <제이티 르로이> 미국 문학계를 휩쓴 전대미문 사기극

21.01.24 10:20최종업데이트21.01.2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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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이티 르로이> 포스터 ⓒ (주)영화사 빅

 
최근 문화 추세는 젠더 플루이드(gender fluid)와 부캐다. 젠더 플루이트란 성(性)을 여성과 남성 둘로 분류하는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난 유동적 성 정체성을 말한다.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밝힌 성 정체성처럼 영화 <제이티 르로이>의 캐릭터 사바나와 제이티는 젠더 플루이드를 반영한 독특한 시도다. 부캐란 원래 게임에서 사용하던 용어지만 일상생활로 확대되면서 평소 나의 모습과는 다른 나를 캐릭터화할 때 가리키는 말로 재정의 돼 놀이처럼 활용되고 있다. 즉, 개인의 삶이 결코 해보지 못한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변신하는 것을 용인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앞서 말한 젠더 플루이드와 부캐가 결합된 설정이 돋보이는 영화가 <제이티 르로이>다. 비록 만들어진 가상 인물이지만 '제이티 르로이'는 바라는 사람에 따라 누구도 될 수 있었다. 상황과 사람에 따라 유동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소년일 수도 소녀 일 수도, 한 가지로 얽매이지 않는 다층적 페르소나라 하겠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사기극
 

영화 <제이티 르로이> 스틸컷 ⓒ (주)영화사 빅

 
2001년 사바나(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독립해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오빠 제프(짐 스터게스) 집에 머물게 된다. 함께 음악 작업에 몰두하는 오빠의 연인 로라(로라 던)와 같이 살게 되며 자연스럽게 부딪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사바나는 로라의 오랜 이야기를 듣게 되고, 로라는 자전적인 소설 《사라》를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던 어느 날, 로라는 제이티가 자신이 바라던 사바나와 흡사함을 느끼고 흥분한다. 이에 다짜고짜 가상 인물이 아닌 실존하는 제이티가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 사실, 로라는 넘치는 재능과 끼를 주체하지 못해 다양한 영역에서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선뜻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내길 꺼리며 궁금증을 자아냈다. 작품이 잘 될수록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고 마침 로라의 눈에 자신이 그렸던 제이티가 서 있었다. 로라는 내키지 않아 하는 사바나를 설득해 제이티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었고, 그렇게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로라는 뛰어난 패션 감각을 지닌 상처 받고 수줍은 성격,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아이콘을 구현해냈다. 사바나의 묘한 매력은 실제 제이티라 불릴 만큼 표정, 목소리, 몸짓 등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했다. 내성적인 사바나의 실제 성격과도 흡사했기에 사바나와 제이티는 동일 인물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들의 역할 놀이는 본격적으로 분야를 완전히 나누며 복잡해진다. 글과 목소리는 로라가 담당하고, 공식 석상에는 사바나가 등장했다. 그 횟수가 늘어나거나, 긴 시간 동안 모습을 드러내야 할 때면 로라는 매니저로 변신해 곁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지휘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연기에 속아 넘어가는 대중을 흥분 속에 바라보며 짜릿한 희열을 느꼈으며, 덩달아 소설 판매까지 급상승하며 영화 판권 계약을 앞두게 된다. 하지만 이 일에 에바(다이앤 크루거)가 등장하며 얽히고설키게 된다.
 
세 배우의 감정 연기가 압권
  

영화 <제이티 르로이>스틸 ⓒ (주)영화사 빅

 
실제 이야기는 이랬다. 2000년 출간된 자전적 소설 《사라》로 단숨에 천재 작가 반열에 오른 '제이티 르로이'는 각종 예술인과 셀럽들이 사랑하는 인기인이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산 작가를 대중은 환호하기 시작했고 실체를 향한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급기야 배우 겸 감독 아시아 아르젠토는 제이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이유있는 반항>에 출연과 연출을 맡으며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2006년 뉴욕 타임스의 '이 모든 게 가짜다'라고 폭로했고, 미국 문학계의 충격을 안긴 희대의 사기극으로 전락했다.
 
영화는 미국 문학계의 사기극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했다. 영화의 바탕이 된 자서전을 읽은 저스틴 켈리 감독은 겉으로 드러난 상황보다 두 사람의 심리를 주목하기에 이른다. 현실에는 없는 제이티가 모두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세세히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때문에 분명한 사기 행각임에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개인의 심리와 상황을 다층적 해석으로 이끈다.
 
게다가 세 배우의 역대급 호연으로 활력을 불어넣는다. 순수와 퇴폐를 오가는 제이티 자체가 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말할 것 없거니와. 할 말 많지만 하지 못하는 로라 던은 농염함으로 드라마 전체의 장악력을 행사한다. 다이앤 크루거의 대체할 수 없는 분위기는 크리스틴과 로라가 이끌던 쌍두마차에 기름을 붓는다. 배우 본연의 역할 욕심과 영화 제작권을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이 연기인지 실제인지를 다소 헷갈리게 설정했다. 이 기묘한 분위기는 전작 <심판>에서 보여준 처절한 분위기와 사뭇 달라 신선하기까지 하다.
 
마치 '벌거숭이 임금'이 된 듯하다. 임금은 보이지 않는 옷을 입고 벌거숭이가 되었는데, 모두가 진실에 눈 감고 감언이설로 임금을 떠받드는 우스운 꼴이다. 물론 거짓말은 부메랑이 되어 더 큰 위기를 자초하는 데 일조한다. 거짓은 진실을 결코 이길 수 없고 해서도 안되지만, 영화 속 캐릭터는 똑똑히 말하고 있다. 누군가의 내가 아닌, 나 자신으로 살 것을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세상에 둘일 수 없는 나로서 우뚝 선 자아. 부족하고 서툰 점도 나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고, 나 자신과 마주할 때. 비로소 진실은 나의 편이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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