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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왕후가 살았던 시대 궐밖에서 벌어진 민망한 일

[사극으로 역사읽기] tvN 드라마 <철인왕후>

21.01.24 12:00최종업데이트21.01.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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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와대 셰프 장봉환(최진혁 분)의 영혼이 조선 철인왕후(신혜선 분)의 몸에 들어간 이야기인 tvN 드라마 <철인왕후>는 철종시대의 궁중생활과 권력 암투를 주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주 무대는 대궐과 세도가문이다.
 
그런 설정 때문에 드라마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게 있다. 철인왕후와 철종의 시대를 특징짓는 핵심 이미지 중 하나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고 있다.
 
이 시대에는 외척(왕실 사돈)이 국정을 농단하다 보니, 유교적 이상 형태인 왕도(王道) 정치가 구현되지 않고 그것의 타락 형태인 세도(勢道)정치가 두드러졌다. 그로 인해 3대 행정인 전정·군정·환정이 본래 취지를 벗어나 문란해지고, 이 때문에 토지세(전정)·병역세(군정)는 물론이고 복지정책(환정·환곡)마저 서민들을 갈취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정조가 생을 마감한 1800년 이후의 세도정치 하에서는, 국가재정이 허약해지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서민층에게 조세를 더 거두는 양상이 나타났다. 재정 부족을 부자 증세가 아닌 서민 증세로 만회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이 민중에 대한 수탈과 착취를 심화시키는 동시에 이들의 저항과 민란을 초래했다. 19세기가 임술민란(진주민란)·임오군란·동학혁명을 비롯한 대략 100개의 민란 때문에 '민란의 세기'로 불리기도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만약 왕권이 강했다면, 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선제적 개혁을 시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권세를 쥔 외척들이 국가 전체보다는 가문과 당파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통에 개혁의 필요성은 뒷전으로 밀려나가고 말았다.
 
삼정의 문란
 

tvN 드라마 <철인왕후> 한 장면. ⓒ tvN

 
드라마 <철인왕후>에 나오는 철종도 삼정의 문란을 시정하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다. 음력으로 철종 10년 2월 25일자(양력 1859년 3월 29일자) <철종실록>에는 철종이 '내 침실 벽에 탐관오리 명단이 적혀 있다'며 조정과 지방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실권이 뒷받침됐다면 철종의 의지가 실현될 수도 있었겠지만, 정권이 안동 김씨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또 이 시기에는 세도가문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관직을 사들이는 매관매직이 횡행했다. 이런 식으로 관직을 사들인 지방 수령들이 토착세력이나 아전과 결탁해 백성들을 쥐어짜면서 '원금'을 회수했기 때문에, 사태가 한층 심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속에서, 병역세 또는 군포 부과 행정인 군정(軍政) 분야에서는 목불인견이라고 표현할 만한 부조리들이 대거 양산됐다. 오늘날 군대 이야기가 대중의 의식에서 많은 영역을 차지하듯이, 이 시대에는 군정의 문란이 그 이상의 영역을 차지했다. 그 정도로 군정의 부조리가 매우 심각했다.
 
조선 후기의 군정 문란을 대표하는 단어들이 한국사 시간에 자주 언급된다. 군포를 납부해야 할 사람이 사망하거나 죽은 경우에 친족에게서 부족분을 징수하는 족징(族徵), 그것을 이웃에게 부과하는 인징(隣徵)이 유명하다.
 
또 60세가 넘어 병역의무가 없는 남성의 나이를 서류상으로 깎은 뒤 군포를 계속 부과하는 강년채(降年債)도 있었다. 서류상으로 젊게 만들어준 뒤 병역세를 부과했던 것이다. 또 병역을 불법으로 면제해주고 금전을 징수하는 마감채(磨勘債)라는 것도 있었다.
 
이 외에도 더 있었다. 국가 징세체제의 최정점인 군주조차도 민망해 했던 것들이 있었다. 세도정치가 시작되기 80년 전인 1720년에 세상을 떠난 숙종의 입에서 거론된 것들이다. 세도정치 이전부터 군정의 문란이 심각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숙종 4년 5월 22일자(1678년 7월 10일자) <숙종실록>에 따르면, 만 17세 된 숙종이 이 날 내린 하교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아! 생민(生民, 백성)들 중에서 근심·걱정으로 괴로워하고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을 다 헤아리기 힘들다. 그중에서도 약한 아이를 (병적에) 충원하며, 죄짓고 죽은 사람에게서 포를 징수하는 일을 나는 매우 민망하게 생각한다."
 
왕자들은 조기교육 시스템 때문에 또래들보다 조숙한 편이었다. 그래서 군주가 10대 후반만 돼도 '애늙은이'처럼 말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해도, 만 17세는 절대적인 인생 경험의 양이 부족한 나이다.
 
그런 숙종의 입에서 '민망하다'는 표현이 등장했다. 어린아이까지 군인으로 충원해 세금을 받아내고 망자에게까지 세금을 부과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만 17세 된 군주한테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이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인생을 몇 년만 살아도 겪을 수 있었던 일이었던 것이다.
 
숙종이 언급한 것들은 흔히 황구첨정과 백골징포로 표현된다. 이 중에서 황구첨정(黃口簽丁)은 황색 부리를 가진 새 새끼처럼 아직 나이 어린 아이들을 장정으로 등재한 뒤 병역의무를 부과하고 군포를 받아내는 일이었다.
 

tvN 드라마 <철인왕후> 한 장면. ⓒ tvN

 
다산 정약용의 '애절양'
 
숙종은 하교를 통해 그 두 가지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숙종과 달리 시를 써서 그 폐해를 지적한 이가 있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이 바로 그이다.
 
<다산시문집>에 애절양(哀絶陽)이란 시가 있다. 철종이 왕이 되기 전에 나온 작품이지만, 정약용 시대와 철종 시대에 공통적으로 존재했던 군정의 문란을 다룬 시다. 슬픔으로 양근을 자른다는 의미의 '애절양'이라는 이 시는 젊은 여성의 울부짖음으로 시작한다. 시의 첫 대목은 이렇다.
 
갈대밭 마을, 어린 부인의 곡성이 길구나(蘆田少婦哭聲長)
현문을 향해 곡하며 푸른 하늘에 울부짖는다(哭向縣門號穹蒼)
 

현문(縣門)이 현청 정문을 뜻하는 것이라면, 이 사람은 부·목·군·현 중에서 가장 낮은 현에 거주하는 백성이다. 그가 관청 경비병에게 호소하는 장면이 뒷부분에 나오는 것을 보면, 현문은 현청 정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 대목은 이렇다.
 
남편이 전쟁하러 나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夫征不復尙可有)
자고로 남자가 양근을 잘랐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自古未聞男絶陽)

 
그의 남편이 끔찍한 일을 벌인 동기는 바로 다음 대목에 나온다. 과장법이 사용된 구절이다.
 
시아버지는 상이 나서 이미 명주처럼 희고, 아이는 아직 씻기지도 않았는데(舅喪已縞兒未澡)
삼대(三代)의 이름이 군보(軍保)에 등재돼 있다(三代名簽在軍保)

 
시아버지는 작고한 지 오래고, 아이는 아직 씻기지도 않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어리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자기 남편과 함께 병역 의무자로 등록돼 3대가 납부 의무를 지게 됐다. 이에 대한 분노 때문에 남편이 자기 몸에 해를 가하게 됐던 것이다.
 
그로 인한 분노와 설움이 폭발해 그가 울부짖으며 관청 앞으로 갔지만, 경비병은 호랑이처럼 무섭게 대하기만 하고, 이정(里正, 이장 비슷)은 소를 몰 듯 으르렁대기만 했다. 군정의 문란 정도가 아니라 군정의 학정 때문에 신음하는 동시대 민중을 생각하며 정약용은 '애절양' 끝부분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부호들은 한 해가 다 가도록 악기나 연주하면서(豪家終歲奏管弦)
낟알 한 톨, 비단 한 치도 납부하는 일이 없건만(粒米寸帛無所捐)
똑같은 우리 적자(赤子, 백성)들을 어찌 이리 차별하는가(均吾赤子何厚薄)


애절양 속의 여성처럼 19세기 한국인들은 부자증세가 아닌 서민증세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그 고통이 삼정의 문란에 대한 민중봉기로 표출돼 19세기를 민란의 세기로 만들었다.
 
철인왕후와 철종이 살았던 시대는 서민경제 시각에서 볼 때 그처럼 암울한 시기였다. 드라마 <철인왕후>의 밝고 화려하며 명랑한 분위기와 달리, 대궐과 세도가문의 담장 밖에서는 폭정과 수탈이 자행되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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