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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춤 하나로 90년대 남성들 마음 빼앗은 이 가수

[응답하라 1990년대] 예쁜 음색으로 사랑 받았던 강수지

21.01.20 09:31최종업데이트21.01.20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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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나날들>이 들어있는 강수지 2집은 1집을 능가하는 인기로 강수지를 최고의 솔로 여성가수로 성장시켰다. ⓒ 오감 엔터테인먼트

 
부유한 가정을 중심으로 막 '비디오'라는 것이 보급되기 시작하던 1980년대 중·후반,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은 '영화'라는 신세계를 접하게 됐다. 그 중에서도 사나이들의 의리를 주제로 한 '홍콩 누아르'라는 장르가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홍콩 누아르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은 당시 남학생들의 필수관람 영화였고 두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주윤발과 이수현은 순식간에 남학생들의 영웅이자 롤모델이 됐다. 

그렇게 남자들의 의리와 배신이 남학생들의 심장을 뜨겁게 하던 80년대 후반, 뜬금없이 귀신과 인간의 사랑을 다룬 멜로 영화 <천녀유혼>이 청소년들의 가슴을 울렸다. 특히 <천녀유혼>의 히로인 왕조현은 순식간에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당시 남학생들은 굳이 사전을 찾지 않아도 왕조현을 통해 '청순가련'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왕조현은 주윤발이 모델로 등장한 '우유맛 탄산음료' 라이벌 업체 음료 CF에 출연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하지만 대만 출신의 왕조현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이방인이었고 그 시절 남학생들은 한국어를 쓰는 '청순가련 히로인'에 목말라 있었다. 당시 떠오르는 스타였던 김혜수와 이미연, 고 최진실 등은 이미 성인 연기자로 자리를 굳히고 있었기에 소년들의 로망(?)을 채워주기엔 다소 부족했다. 그러던 1990년, 가녀린 어깨춤으로 남학생들의 심장을 공격한 가수가 등장했으니 바로 90년대 최고의 청순가련 여성 가수 강수지였다.

대한민국 남자들을 무장해제시킨 강수지의 어깨춤
 
서울에서 태어난 강수지는 중학교 2학년 때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뉴욕에서 가수의 꿈을 키우던 강수지는 1988년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미국 동부지역 금상을 수상했다. 그 후 가족을 뉴욕에 두고 홀로 귀국한 강수지는 1990년 1집 앨범을 발표하고 정식으로 데뷔했다.

강수지의 데뷔곡 <보랏빛 향기>는 강수지가 직접 쓴 상큼한 가사와 신예 작곡가 윤상의 경쾌한 멜로디, 그리고 강수지의 청아한 목소리가 더해진 신나는 노래다. 특히 입으로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가녀린 체구에 어깨를 살짝 흔드는 특유의 어깨춤은 남성 팬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충분했다. 대한민국의 남학생들이 더 이상 왕조현 같은 타국의 스타들에게 목을 멜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보랏빛 향기>는 발매 당시 조정현이나 김민우 같은 대형 신인들에 밀려 지금의 대중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대단히 큰 사랑을 받진 못했다. 사실 강수지뿐 아니라 데뷔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가수들은 데뷔곡이 그 가수의 대표곡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활동 당시에는 의외로 큰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요즘에야 블랙핑크와 트와이스, 오마이걸 등 여자 아이돌의 팬덤도 규모가 상당히 커졌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남성 팬들이 여성 가수를 쫓아 다니는 문화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강수지는 1991년에 발표한 2집에서 <흩어진 나날들>로 MBC <여러분의 인기가요>에서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데뷔 1년여 만에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흩어진 나날들>은 훗날 박효신, 서영은, 조규찬 등 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된 명곡이다). 강수지는 <흩어진 나날들>에 이어 발랄한 후속곡 <시간 속의 향기>로 다시 한 번 인기몰이를 하며 최고의 여성 솔로 가수로 등극했다.

강수지는 1992년 3집 엘범을 발표하며 최고의 여가수를 향한 '굳히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3집 타이틀곡 <내 마음 알겠니>는 기대했던 만큼 큰 인기를 끌진 못했다.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같은 외부적인 변수나 1,2집에서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던 윤상과의 음악적 결별(윤상은 1991년 가수로 데뷔하면서 인기스타가 됐다) 같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강수지의 실제 이야기인듯한 노래들이 들어 있는 4집은 강수지의 최고 명반으로 꼽힌다. ⓒ 오감 엔터테인먼트

 
1993년 6월 발표된, 강수지가 직접 가사를 쓴 4집 타이틀곡 <그 때는 알겠지>는 '너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를 네 곁에 두려 한다면, 사랑한다는 이유로 지나온 모든 것들을 용서해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내게는 어려운 걸'이란 가사를 담고 있다.

강수지 4집에서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는 타이틀곡 <그 때는 알겠지> 정도였다. 하지만 강수지 4집은 진성과 가성을 가장 부드럽게 넘나드는 여성 보컬리스트 강수지의 매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명곡들로 가득 차 있다. 1번 트랙 <사랑했어 너만을>은 신인 테크노 밴드 EOS의 리더 강린이 만든 애절한 발라드곡이다. 10년 동안 미국에서 생활했던 강수지의 유창한 '네이티브 영어 내레이션'을 들을 수 있는 곡이다.

<돌아와줘 내게>와 <널 기다리며>는 강수지 특유의 발라드 넘버들로 라디오를 중심으로 잔잔하게 사랑을 받았다. <소중한 기억들>과 <아름다운 시간들>처럼 <보랏빛 향기>나 <시간 속의 향기>를 떠올리게 하는 발랄한 댄스곡들도 수록돼 있다. 강수지는 4집에 수록된 8곡 중 7곡의 가사를 직접 쓸 만큼 작사가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하지만 강수지 4집의 백미는 마지막 트랙의 < I Miss You >다. 작곡가 겸 가수 오태호가 작사·작곡한 드라마틱한 가사가 돋보이는 < I Miss You >는 훗날 고 서지원이 리메이크했다가 사후에 더 유명해진 노래의 원곡이다. 서지원이 폭발적인 샤우팅으로 노래의 슬픔을 폭발시켰다면 강수지는 좀 더 담담하고 성숙한 창법으로 '두려움이 앞선 미안함'을 잔잔한 감성으로 표현했다. 

강수지 4집은 좋은 노래들로 채워져 있는 알찬 앨범이었지만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수지 4집의 활동시기는 신승훈 3집의 <널 사랑하니까>, 서태지와 아이들 2집의 <하여가>, 이무송의 <사는 게 뭔지>, 김수희의 <애모> 등 90년대 가요계를 대표하는 레전드급 히트곡들의 활동시기와 겹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수지 4집은 팬들 사이에서 강수지 최고의 명반으로 꼽힐 만큼 많은 사랑을 받은 앨범이다. 

데뷔 9년 동안 11장의 앨범 발표한 부지런한 가수
 

강수지는 지난 2018년 <불타는 청춘>에서 '치와와 커플'로 활약하던 김국진과 실제 부부가 됐다. ⓒ SBS 화면 캡처

 
강수지는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으면서도 앨범 수록곡 대부분의 가사를 직접 쓸 정도로 작사가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유했다. 그러면서도 6집 앨범에서는 작사가 박주연에게 앨범 전곡의 가사를 맡기기도 했다. 1995년 겨울에는 미스터투의 <하얀 겨울>, 터보의 <회상>과 함께 '90년대 3대 겨울송'으로 꼽히는 <혼자만의 겨울>을 발표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강수지는 데뷔 후 9년 동안 9장의 정규 앨범과 한 장의 스페셜 앨범, 그리고 한 장의 베스트 앨범을 발표하며 부지런히 활동했다. 물론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한 앨범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외면 받은 앨범도 있었지만 쉬지 않고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는 것만으로 그 시절 강수지를 좋아하는 팬들에겐 아주 큰 선물이었다.

사실 강수지는 <혼자만의 겨울>이 수록된 스페셜 앨범 이후로는 가수로서 완만한 하강 곡선을 그렸고 개인적으로도 굴곡진 삶을 경험하기도 했다. 지난 2010년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디지털 싱글 <추억은 눈꽃처럼>은 발매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로 대중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그리고 강수지는 <추억은 눈꽃처럼>을 끝으로 10년 넘게 공식적인 가수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강수지는 지난 2015년 SBS 예능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 출연해 김국진과 '치와와커플'로 활약하다가 2018년 5월 백년가약을 맺었다. 현재 MBC 라디오 <원더풀라디오 강수지입니다>의 DJ로 활약하고 있는 강수지는 예쁜 음색으로 많은 명곡들을 들려주던 매력적인 여성 보컬리스트다. 그리고 지금은 아저씨가 됐을 수많은 소년들의 가슴에 아련한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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