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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감독이 만든 세계적 디바 이야기... "왜 지금껏 몰랐을까"

[리뷰] 헬렌 레디 전기 영화 <아이 엠 우먼>

21.01.17 10:04최종업데이트21.01.1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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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 엠 우먼>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 <아이 엠 우먼>은 세계 3대 여성 가수이자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그래미 어워즈 수상 타이틀을 겸비한 헬렌 레디의 전기 영화다. 싱글맘이자 호주 이민자 출신으로 오직 가수로 성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낸 일화를 시간순으로 풀어냈다. 유명 아티스트의 프로모션 매니저였던 남편을 만나며 본격적인 가수로서 이름을 남긴 실화를 바탕으로 문화, 패션, 정치적 격동기였던 1970년대를 재현했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국제 여성의 날 주제가 된 '아이 엠 우먼'이 만들어진 사연도 담았다. 따라서 1989년 워싱턴 전미 여성 대회 현장의 벅차오르는 감동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가수의 일생과 명곡이 어우러지는 구성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떠오르게 하지만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헬렌 레디를 음악으로만 알고 있던 관객이라면 그가 일찍이 여성 운동에 뜻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는 여성이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운 시대, 편견과 차별에 맞서 음악을 통해 용기를 심어준 가수였다.
 
여성 목소리의 대변
  

영화 <아이 엠 우먼> 스틸 ⓒ (주)팝엔터테인먼트

 
1966년, 음반 계약을 위해 뉴욕에 어린 딸과 함께 싸구려 호텔 방에서 가수의 꿈을 키우던 헬렌(틸다 코브햄-허비)은 비틀즈 같은 남성 그룹이 대세인 음악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재능과 열정은 충만했지만 음반 제작사의 냉담한 반응에 상처받고 발길을 돌린다. 하지만 가수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클럽에서 몇 안 되는 손님을 상대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마저도 여성이자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밴드 보다 급여도 적게 받아야 했다. 임금에 항의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남자들은 부양가족이 있다"라는 말이었다.
 
팍팍한 현실을 이어가며 호주로 다시 돌아가려고 고민하던 중 유명 저널리스트 릴리언(다니엘 맥도널드)과 친분을 쌓으며 든든한 지원군을 만나 일어선다. 두 사람은 "둘이 함께 세상을 맞먹자"라는 포부를 품으며 각자의 영역에서 절치부심하며 격려하며 영감을 얻었다. 릴리언은 최초의 로큰롤 백과사전을 만들고 싶다며 밤낮없이 매달렸고, 헬렌도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1967년 제프를 만나 사랑에 빠진 헬렌은 가수와 매니저라는 한 팀이 되자는 제안을 수락하고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다. 하지만 새 기획사에 취직한 제프는 데뷔는 커녕 업무로 바쁘기만 했고, 가수가 되겠다는 꿈은 희미해져만 갔다. 저널리스트로 승승장구하는 릴리언과 대조적으로 헬렌은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영화 <아이 엠 우먼> 스틸 ⓒ (주)팝엔터테인먼트

 
하지만 헬렌은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에 이른다. 제프와 우여곡절을 끝에 마침내 1972년 자전적 경험을 담은 'I Am Woman'을 세상에 내놓는다. 억압되고 차별받는 여성들을 대변하는 가사의 울림은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르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다. 음반사는 이 노래를 듣고 마치 화난 것 같다, 남성 혐오라며 반대했지만 헬렌은 가부장제에 지친 여성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 용기를 주고 싶다고 응수했다. 이후 헬렌은 여성 해방은 곧 인간 해방과 같다는 일념 아래 페미니즘을 위해 싸우는 전사로 거듭난다. 훗날, 영화와 동명의 노래는 제2차 페미니즘 운동의 상징이 된다.
 
'나는 여자/ 나의 포효를 들으라/ 무시하기에는 우린 너무 커졌지/ 모르는 척 살기에는 너무 많은 걸 알게 됐어/ 나는 뭐든 할 수 있어/ 나는 강해/ 나는 꺾이지 않아/ 나는 여자'
 
한국계 호주인 문은주 감독의 연출 데뷔작
 
<아이 엠 우먼>은 호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은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아카데미 수상 이력의 남편 '디온 비브'가 촬영을 맡아 화제였다. 제44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오프닝 나이트 개막작이자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초청작이다.
 
문은주 감독은 "나는 헬렌 레디의 노래가 여성들을 대담하고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어떻게 정상에 올랐는지, 그곳에서 어디로 걸어갔는지 <아이 엠 우먼>을 통해 놀라운 인생을 알려야만 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헬렌의 사회적 인기와 업적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영화화를 결심했다.
 
한 시상식장에서 우연히 이야기할 기회를 얻게 된 감독은 여성이자 호주라는 공통 경험을 나누며 공감했다. 그렇게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그녀는 끝내 완성된 영화를 보지 못한 채 2019년 생을 마감했다.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격려했던 친구였던 릴리언은 로큰롤의 어머니가 되었고, 그녀가 만든 《로큰롤 백과사전》은 고전이 되었다.
  

영화 <아이 엠 우먼> 스틸 ⓒ (주)팝엔터테인먼트

 
헬렌이 활동하던 때,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거리로 나온 여성들은 여성 투표권을 이룬지 50주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양성평등은 제자리걸음이라 주장했었다.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미국 성평등 헌법 수정안은 1920년 초 처음 도입된 이후 30여 차례 진통을 겪었으나 아직까지 통과되지 않은 상태다.
 
영화는 1970년이라는 미국의 격동기에 여성 솔로 가수 최초로 많은 업적을 남긴 디바의 일생을 다루었다. 변화의 최전선에서 양성평등의 아이콘이 된 헬렌과 제프 부부의 모습은 가히 파격적이었다. 당시 여성의 사회 활동에는 제약이 따랐다. 자기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었고, 담보 대출도 받을 수 없던 시절이다. 남편 혹은 집안의 남성의 종속된 존재였던 여성들은 헬렌의 노래, 말, 행동을 통해 자유를 꿈꿨고, 대리만족했다. 그 후 여성들은 일터로 나왔고 경제적으로 자립했으며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미약 중독, 방탕한 생활로 재산 탕진 위기를 만들었던 남편 제프는 그녀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마치 휘트니 휴스턴과 바비 브라운이 오버랩 되지만 극명한 차이점이 있다. 제프는 매력적인 모습과 공격적인 카리스마로 헬렌의 데뷔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이후 33년 동안 재활에 성공했다. 어쩌면 데뷔 초 "당신은 너무 건전해"라는 제프의 충고에도 컨셉을 유지했던 이유는 건강한 몸과 마음가짐을 믿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헬렌은 거친 세상에서 여성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증명해 보였던 인물이다. 위험했지만 사람을 이끄는 마성의 제프가 있었기에 헬렌 또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녀가 남긴 족적이 지금까지도 세대를 넘어 가슴을 울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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