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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미국의 보물"... 누가 진짜 괴물인가

[안치용의 영화적 사유] <바이스>

21.01.15 15:40최종업데이트21.01.1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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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대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을 포함한 미국 대통령 45명 중에서 탄핵 결의안에 직면한 이는 모두 11명이다. 트럼프, 앤드루 존슨, 빌 클린턴 3명에 대해서만 탄핵소추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상원을 통과해 실제로 의회에서 탄핵된 미국 대통령은 아직까지는 없다. 아마 상·하원에서 모두 탄핵안인 통과됐을 가능성이 큰 리처드 닉슨은 하원의 탄핵 표결 직전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임기가 2020년 1월 20일까지인 트럼프는 2019년 말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하원의 탄핵을 받은 데 이어 2020년 1월 '미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로 다시 탄핵을 받아 재임 중 하원에서 두 번이나 탄핵받은 첫 번째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미국 민주주의의 몰락이 트럼프 한 사람의 책임인가?
 

영화 <바이스> 스틸 컷 ⓒ 콘텐츠판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부패와 추락을 극화한 <빅쇼트(The Big Short)>(2015)를 만든 아담 맥케이 감독이 딕 체니란 정치인을 중심으로 미국 정치의 심각한 문제점을 파헤친 영화가 <바이스(vice)>(2018)다. <빅쇼트>에서 호흡을 맞춘 크리스찬 베일이 <바이스>에서도 주연을 맡아 체니 전 부통령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제목 '바이스(vice)'는 부통령(vice president)과 악(惡) 비행 등을 뜻하는 영어단어 'vice'를 함께 의미하는 중의적 제목이다. '부통령의 악행'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영화는 젊은 날의 체니와 심장이식까지 받은 노년의 체니까지를 미국 정치의 뜨거운 현장과 연결지어, 고장난 미국 민주주의의 실상을 까발렸다. <바이스>는 신념과 가치는 없고 출세지상주의로 무장한 야심가 정치인의 개인사와, 민주주의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미국 정치 시스템이란 두 축으로 전개된다. 등장인물을 기준으로는 딕 체니의 아내 린 체니(에이미 아담스)가 전자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스티브 카렐)이 후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바이스>는 상업정신과 자본이 정치를 장악한 적나라한 모습과 워싱턴의 과두제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국민을 배신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닉슨 행정부부터 아들 부시 행정부까지를 포괄하며 이들이 국민을 어떻게 속이고 선동했는지를 고발한다. 상업화한 독과점 언론, 자본의 후원을 받는 싱크탱크, 금권과두제, 무능한 세습 정치, 비즈니스와 머니게임으로 전락한 정치 등 특히 미국 보수 진영이 자본을 중심으로 결집하며 일사불란하게 기득권을 지키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그들의 안중에 국민은 없었다.

체니가 한때 럼스펠드 밑에서 일할 때 두 사람이 주고받은 극중 대화가 눈길을 끈다. 아직 젊은 체니가 럼스펠드에게 "우리는 어떤 신념하에 움직이는가"를 묻는 장면이다. 대화라고 하기 힘든 게 체니의 그 말을 듣고 럼스펠드가 배꼽이 빠져라 웃기만 한다. 그런 걸 묻다니, 아마추어냐? 우리에게 그런 게 어디 있냐? 그런 뜻이겠다. 그들의 정치엔 신념 혹은 이념이 없고 이익과 모리배 정신만 있음을 극적으로, 소름 끼치게 보여준다.

가장 은밀한 정치인이자 가장 막강한 권력을 지닌 부통령이었던 체니의 전성기는 특별히 이라크에 크나큰 불운을 가져다주었다. 9·11사태 이후 미국은 알 카에다를 겨냥한 작전을 진행하다가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공론화하며 느닷없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사담 후세인이란 '독재자'를 축출했지만, 멀쩡한 주권국가를 침략한 결과 많은 사람이 죽고 국토는 황폐화하였다. 그들이 주장한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체니가 부통령이 되기 전에 CEO로 재직한 헬리버턴이 이라크전쟁을 통해서 막대한 이익은 본 것은 영화에서나 다른 보도를 통해서 확인된다.

이 영화는 체니를 중점적으로 조명하기에 도널드 트럼프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 정치에서 또 공화당에서 트럼프가 등장하고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던 온상이 무엇이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누가 괴물인가
 

영화 <바이스> 스틸 컷 ⓒ 콘텐츠판다


<바이스>에서 트럼프 얘기가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나서 에필로그처럼 시민패널들의 토론 비슷한 장면이 이어진다. 사회자가 <바이스>란 영화가 불편했느냐고 묻자, 누군가 그렇다며 "(영화가) 진보의 편견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다른 시민이 "근데 다 팩트 아니냐. 변호사가 검토했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어지는 대화는 아마 한국에서도 흔히 목격될 광경이지 싶다. '진보의 편견'이라고 말한 최초의 시민이 반박한 사람에게 "'진보 찐따' 같은 소리하네"라며 사실상 욕을 한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단어로는 '좌좀'쯤 되려나. 계속된 다음의 대화는 에필로그의 백미이자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팩트란 걸 이해하면 나는 진보다? 댁이 뽑은 오렌지 대가리(트럼프)가 나라를 말아먹고 있지."
"트럼프는 미국의 보물이야."


대화는 이렇게 진행됐다. 2020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7400만명이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한번 망가진 정치와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데는 정말 많은 노력을 요하게 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 퇴임 후 체니의 인터뷰를 극화한 장면 또한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체니는 '괴물'들과 싸운 것을 자신의 의무라고 말하면서 "당신들(국민)의 가족을 지켜낸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신들이 나를 선택했다"며 "나는 당신들이 요청한 것을 했을 뿐"(I did what you asked.)이라고 당당하고 또 비장하게 말한다. 맥케이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화의 말미에 이 장면을 배치함으로써 누가 진짜 '괴물'인지를 관객들에게 묻는다. 답이 자명한 것 같기는 하지만.
덧붙이는 글 안치용 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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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평론하고, 래디컬 정치를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대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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