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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썸머 85> 한 겨울에 보는 한 여름 영화의 즐거움

21.01.12 15:50최종업데이트21.01.1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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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썸머 85> 포스터 ⓒ 찬란

 
<썸머 85>는 그동안 내가 봤던 프랑소와 오종 감독 영화 중 가장 경쾌하고 밝은 작품이다. 그동안 장르와 소재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온 오종의 19번째 영화이며 성장담이기도 하다.

아름다웠던 시절 1985년을 배경으로 한 해변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는 마치 여름휴가를 다녀온 듯 설렘을 안긴다. 오프닝과 클로징에 사용된 더 큐어의 'Inbetween Days'가 울려 펼쳐질 때면 두 사람에게 푹 빠져 모든 것을 잊게 된다. 영화 <싱스트리트>에 쓰인 감성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느껴진다.
 
이야기는 1985년 프랑스 노르망디 바다 한가운데 빠진 알렉스(펠릭스 르페브르)를 다비드(벤자민 부아쟁)가 구해주면서 시작된다. 여름 태양만큼 아찔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처럼 청량한 그해 바다를 배경으로 두 소년의 로맨스를 주축으로 하지만, 현실에선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알렉스의 담담한 목소리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던 한여름의 아찔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기 때문. 헤어 나올 수 없는 다비드의 매력에 빠진 알렉스는 "둘 중 한 명이 죽으면 그 무덤 위에서 춤을 추자"라고 제안한 다비드의 소원을 가슴속에 새기고 실천하려 한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경찰에 끌려가게 되고 다비드의 죽음에 관한 죄책감까지 더해지며 씻을 수 없는 후회와 아픔으로 점철된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진다. 다비드의 매력은 죽음에 관심 많은 몽상가 알렉스의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곁에 있고 싶을 정도로 사람을 이끄는 마성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었다. 다비드는 선원이었던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방황하는 다비드를 알렉스가 붙잡아 주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던 엄마(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는 내친김에 알렉스와 공동 운영까지 염두에 두고 있던 찰나였다. 하지만 스파크가 터지며 가까워진 둘의 사이도 서서히 꺼지고 있었다. 이내 식어버린 다비드의 마음을 알아채고 알렉스는 이별을 선언한다.
 
알렉스가 심취했던 죽음은 여름, 첫사랑과 닮았다. 짧고 강렬하게 왔다가 모든 것을 앗아갔다. 인생의 저 밑바닥까지 뒤흔들며 상흔을 남겼다. 그해 여름 학업을 이어갈지, 취업 해야 할지 고민했던 17살 알렉스는 사랑과 이별을 배워 나갔다. 사랑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 가까이에서 죽음을 경험하고 체득했다. 그리고 이별을 통해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게 된다.
 
<썸머 85>는 인상적인 장면과 대사도 많지만, 떠오르는 영화들이 적지 않다. 먼저 영화적 스승이라 말하는 에릭 로메르 감독의 연작 시리즈 중 <여름 이야기>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변주한 듯 보인다. <태양은 가득히>, <아이다호>, <라붐>, <그리스> 등 80년대 10대를 보낸 오종 감독이 찬란했던 유년 시절로 보내는 러브 레터다. 죽음, 여장 남자, 동성애, 묘지 등 꾸준히 오종 감독 영화의 시그니처였던 것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단골손님 '멜빌 푸포'를 찾는 재미 또한 놓칠 수 없다. 슈퍼 16mm 필름으로 촬영해 배경만이 아닌 영화의 완성도도 아날로그적으로 구현했다. 완벽하게 우리가 사랑했던 80년대, 레트로 여행지로 관객을 안내한다.
 
하이라이트는 다비드와 약속을 지키는 알렉스의 기괴한 춤사위였다. 에이단 체임버스의 원작 <내 무덤 위에서 춤을 추어라>를 영상으로 옮긴 아름답고도 슬픈 명장면이다. 10대 때 원작을 처음 읽었던 오종 감독이 사랑을 담아 각색한 영화답게 박제한 것 같은 아름다운 두 소년 알렉스와 다비드를 한 폭의 그림으로 만들어 냈다. 사랑했던 사람의 빈자리를 가슴 한편에 만들어 놓았다면, 비록 아프지만 애틋한 조각들로 자리 잡을 영화다.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다. 알렉스가 선택했던 방법은 떠올리기 어려운 기억을 천천히 복기하며 글로 풀어내는 것이었다. 알렉스에게 글쓰기는 치유였다. 세상에서 가장 쓰기 어려운 글,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글이 바로 '나의 이야기'다. 알렉스는 문학 선생님(멜빌 푸포)의 권유로 죽을 때까지 마음속에 묻어 두려 했던 다비드를 조금씩 꺼낸다. 지난 6주간의 찬란했던 여름을 소설 형식을 빌려 풀어내는 것. 이로써 주체할 수 없이 요동치던 감정을 어렵사리 정리하고 한 걸음 떨어져 인생을 조망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끝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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