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민주주의의 위기는 어디에서 감지되는가

[리뷰] 넷플릭스 다큐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The Edge of Democracy)>

21.01.11 14:51최종업데이트21.01.11 14:51
원고료로 응원
 

▲ 영화 포스터.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 ⓒ 넷플릭스

 
민주주의의 위기는 어디에서 먼저 감지될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는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건넨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소수 엘리트 집단들의 움직임'에서 감지된다고.

여기서 엘리트란 진정한 의미의 지성인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스스로 엘리트의식에 취해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봐야 한다. 판·검사나 변호사로 활동하는 법관들 중 일부, 영리에만 밝은 사업가들, 시대의 흐름을 잘 타는 부동산 부자들, 살아있는 권력에 도전한다지만 실제론 기득권 세력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언론인들을 지칭한다. 그들은 각각의 집단 안에서 일부(혹은 다수?)를 차지하면서 또 다른 중요한 공통점을 지닌다. 가난하지 않다는 것.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에 따르면, 브라질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뼛속 깊이 엘리트의식을 갖춘 집단들 중 사법권 안에서 발동이 걸렸다. 민주주의체제의 삼권(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중에서 특히 사법권은 어느 나라에서나 신뢰와 존경이 기대되는 분야다. 공부 많이 해서 어렵사리 그 자리에 오른 탓일까.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타인들의 신뢰와 존경을 기대할 뿐 아니라, 신뢰와 존경을 (실제 여론조사 결과는 그렇지 않을지라도) 스스로 거의 당연시하는 것 같다. 브라질 법조인들 중 어떤 사람들도 그랬다.

브라질에서 사법 분야에 종사하던 엘리트들은 군부에서 민간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딱히 자기들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한, 대체로 미동 없이 자기들의 업무에 집중했다. 노동운동가 출신 대통령 룰라(Lula)가, 유전(油田)으로 벌어들인 돈을 사회복지 분야에 쏟아부을 때 브라질의 부유한 백인들 사이에 불만이 일긴 했으나, 법조인들은 그럭저럭 조용했다.

룰라의 뒤를 이어, 민주화운동가였던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가 당선되었다. 지우마 대통령의 임기 초반에도(다큐멘터리 화자는 대통령을 친구 부르듯 '지우마'로 부름), 세칭 일부의 부유한 엘리트들은 크게 거부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우마가 엘리트 기득권 집단들에게 대놓고 불이익을 주는 법안들을 연거푸 내놓자, 부유한 엘리트들 중에서 법조인들의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이 짙어졌다. 그들은 위기의식을 느꼈다. 민주주의가 위험해졌다는 위기의식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칭 엘리트로서 자신들은 물론 주위의 동급(?) 엘리트들이 누리던 기득권이 함께 위험해졌다는 것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꼈다.

급기야, 법관들은 공명정대하여야 할 법을 가지고 누구에게는 몹시 철저히 적용하는 반면, 또 다른 누구에게는 매우 느슨히 적용하는 활동을 개시했다. 브라질 사법제도에서는 검사가 판사를 겸할 만큼 권력이 막강한데, 이때 '편향된 법 적용 및 판결'의 기수로 나선 이가 '세르지우 모루 검사(판사)'였다. 그는 행정권을 향하여 일명 '세차(Car Wash) 작전'을 시작했다. 대상을 하나 골라, 세차하듯 싹싹 털어내는 방법이었다.

그 결과 민주화운동가 출신 여성대통령은 말 그대로 '탈탈 털렸다.' 회계부정이 주된 조사항목이었다. 국가경제에 대단히 큰 피해가 아직 발생한 것은 아니었으나, 브라질의 거대 부정부패 시스템 안에서 대통령의 실수가 있기는 했다. 모루 검사는 지우마의 실수를 물고 늘어졌다. 동시에 다른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눈을 완전히 감았다. 모루 검사는 오직 지우마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수사를 했다. 함정을 미리 파놓거나 결과를 정해둔 채 조사를 진행했다.

사업가들과 부동산 부자들은 그 편파적 법 적용에 대하여 기꺼이 호의적 대가를 지불했다. 입법권을 지닌 국회의원들도 삼삼오오 집단을 이루어, 법관들을 도왔다. 갑자기 엘리트집단들 사이에 협력이 아주 잘 일어났다.

언론인들은 벌써 이 판세에 개입해있던 참이었다. 그들은 모루 검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썼다. 신문은 거의 모루 검사의 발표로만 구성되었다. 언론인들은 자기들이 모루 검사와 함께, 현정권과 직전정권의 권력비리를 캐내고 있다는 식으로 행세했다. 그들은 마치 '살아있는 권력'에 용감히 도전한다는 식의 결기를 내보였다.

엘리트의식으로 무장한 이 사람들은 단일대오로 뭉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브라질 국민들을 차근차근 선동해나갔다. 그러자, 상대적으로 비엘리트였던 룰라(노동자 출신)와 지우마(민주화운동가 출신)에 대한 적대적 여론이 재빨리 형성되었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 브라질 국민들은 양쪽으로 갈라져 분노했다. 한쪽은, 부정부패에서 깨끗할 것 같았던 너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며 룰라와 지우마에게 분노했다. 심지어 군부독재시대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반면 다른 한쪽은, 룰라와 지우마에게만 특별히 더 가혹한 법 적용에 대해 의문을 가지며 분노했다. 그 와중에 개인들의 소셜 미디어는 각각의 진영에 확증편향을 부추길 만한 뉴스들을 퍼나르며 양극화를 부채질했다.

마침내, 온갖 부정과 부패의 배후세력으로 룰라가 지목당했다. 법률에 근거하여 지우마 현직 대통령은 탄핵당했고, 법률에 근거하여 전직 대통령 룰라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는 룰라와 지우마가 청렴결백한 사람들이었으며, 1점1획의 부정부패도 없었던 대통령들이었다고 옹호하지 않는다. 그들이 정치·사회·경제적 부정부패의 분위기 안에서 일정 정도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을 인정한다. 말하자면, 현 정치지형에서 어쩔 수 없이 정치적 계산을 하느라 그들이 적폐청산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룰라와 지우마가 비록 국민들이 기대했던 과업을 완수하진 못했지만, 긴급히 탄핵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혀야 할 만큼의 중대범죄를 저질렀는가에 대하여 다큐멘터리는 질문한다. 법관들이 두 정치인에게 보다 더 가혹하고 촘촘하게, 정치적 셈법이 내포된 법 적용을 단행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지적한다.

브라질 민주주의의 위기는 (영화 안에서도 지적되듯) "법치주의에 진력이 난" 일부 법관들에 의해 주도된 셈이다. 남들보다 성적이 출중했고, 남들보다 공부도 많이 한 그들은, 이를테면 만민평등이 싫었다. 그들은 법조인이었지만, 만민평등이 강조되는 법치주의는 원하지 않았다. 

2021년 벽두, 민주주의 종주국을 자부하는 나라에서 '위기의 민주주의' 징후로 보이는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바이든 대선 승리 선언을 앞두고 의회난입 사건 발생). 걱정스럽다. 그런데,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사실 더 큰 걱정이다.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를 관람하는 동안(2시간 2분), 시청자들은 어쩌면 이 하나의 질문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브라질처럼 위기의 민주주의인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Hannah Arendt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커뮤니케이션북스, 2020)] 출간작가 | ‘문학공간’ 등단 에세이스트 | ‘기억과 치유의 글쓰기(Writing Memories for Healing)’ 강사 | She calls herself as a ‘public intellectual(지식소매상).’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