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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하는 날, 남편을 잃은 여성... 그에게 찾아온 끔찍한 존재

[안방극장] 영화 <바바둑> 정신과 망상, 현실과 꿈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흥미로운 호러

21.01.03 10:07최종업데이트21.01.0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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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에선 처음 또는 다시 볼 만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작품부터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품까지 다양하게 다루려고 합니다.[편집자말]

영화 <바바둑> 포스터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출산하러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멜리아(에시 데이비스 분). 병원에서 치매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로 일하며 당시 태어난 사무엘(노아 와이즈만 분)을 키우지만, 과잉행동 장애가 있는 아들을 보살피기가 벅차기만 하다.

어느 날 사무엘은 아멜리아에게 아빠의 책장에서 발견한 동화책 '바바둑'을 읽어달라고 조른다. 그런데 동화책을 읽은 다음부터 이야기 속에 존재하던 악령 '바바둑'이 현실 속에 나타나 두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영화 <바바둑>은 호주 출신의 제니퍼 켄트 감독이 2014년 연출한 작품이다. 최근 그녀가 연출한 <나이팅게일>(2018)이 극장가에 개봉하여 여성 복수 영화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하지만, 숱한 영화제 수상에 빛나는 <바바둑>은 안타깝게도 국내에선 영화제로만 상영한 후 극장 개봉 없이 판권 시장으로 직행했다.

<바바둑>은 2005년에 만든 흑백의 단편 영화 <몬스터>(유튜브에서 무자막으로 감상이 가능하다)를 바탕으로 한다. 홀로 아들을 키우는 엄마(인물), 동화책 속 사악한 존재가 주는 두려움(사건), 집과 지하실(배경), 모성과 편집증(주제) 등 단편 영화 <몬스터>의 요소들은 <바바둑>에 이식되어 장편 영화의 뼈대가 되었다.
 

영화 <바바둑>의 한 장면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아멜리아는 교통사고가 난지 6년이 흐르도록 아들 사무엘의 생일을 한 번도 챙겨주지 않았을 정도로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중이다. 아들을 사랑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가 과잉행동 장애로 일으키는 사고로 인하여 무척 괴롭다. 상실의 기억과 육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멜리아가 치매 노인을 돌보는 간호사란 점은 그녀의 상황을 더욱 역설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아멜리아는 동화책 '바바둑'을 접한 다음부터 현실에서 검은 코트와 모자를 쓴 긴 손톱의 남자 '바바둑'을 만나며 심리적 붕괴를 일으킨다. 영화는 '바바둑'이 초자연적 현상의 산물인지, 아니면 아멜리아의 내면이 만든 허구인지를 모호하게 다룬다. 관객은 계속 추측할 수밖에 없다. 

<바바둑>은 <반항>(1965), <악마의 씨>(1968), <샤이닝>(1980), <테이크 쉘터>(2011)를 연상케 하는 심리 화법을 활용하여 정신과 망상, 현실과 꿈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동시에 해석의 방향에 따라 모든 것이 들어맞게끔 구성한 영리함도 갖추었다. <폴터가이스트>(1982), <부기맨>(2005)과 같은 장르의 관습도 완전히 벗어난다.

<바바둑>의 집은 극의 대부분을 보여주는 무대이자 아멜리아의 심리 상태를 형상한 모습이다. 텅 빈 집은 남편을 잃은 상실감을 반영한다. 화면은 회색톤에 가깝고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색은 극도로 제한적이다. 집 주변의 앙상한 나무들은 인물에 공허함과 고독감을 더한다. 

동화 '바바둑'과 악령 '바바둑'에겐 선명한 검정과 강렬한 빨강이 칠해졌다. 동화책 '바바둑'은 책장을 펼쳤을 때 장면이 묘사된 그림이 입체적으로 튀어나오는 '팝업 북' 형태라 그 자체로도 불길함을 전한다. 악령 '바바둑'이 현실에 등장하는 장면은 스톱모션으로 기괴함을 불어넣었다. 때론 극 중 TV에 나오는 만화, 영화를 활용하여 인물이 공포에 휩싸이게 한다.
 

영화 <바바둑>의 한 장면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바바둑>의 핵심은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이중적인 시선이다. 아멜리아에게 아들 사무엘은 기다렸던 생명의 탄생이나 남편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너무 사랑하나 육아의 고통은 적지 않기에 벗어나고 싶은 족쇄처럼 느껴질 적도 있다. '바바둑'은 그런 복잡한 감정 상태가 부른 악령, 슬픔과 우울증이 만든 괴물인 셈이다.  

"어머니는 무조건 아들을 사랑해야 할까?"란 질문으로 본다면 <바바둑>은 <케빈에 대하여>(2012)의 공포 스릴러 버전처럼 보인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갖는 사랑과 미움이란 양가적 감정은 고스란히 아멜리아에게 스며들어 있다. 

아멜리아가 남편의 죽음이란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서는 모습에 주목한다면 여성 영화를 대표하는 <피아노>(1993)의 다른 판본으로 볼 수도 있다. <피아노>에서 여성을 억누르던 상징이 '피아노'였다면 <바바둑>은 바로 존재 '바바둑'이기 때문이다. 

2010년대 호러 장르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포를 보여주며 주목을 받았던 <팔로우>(2015), <더 위치>(2015), <유전>(2018). 그 옆에 <바바둑>은 당연히 놓여야 한다. 제47회 시체스 영화제 오피션 판타스틱-스페셜 배심원상, 여우주연상 수상작.
바바둑 제니퍼 켄트 에시 데이비스 노아 와이즈만 헤일리 매켈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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