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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와 신승훈 사이, '둘리 전성시대' 열었던 발라드 황제

[응답하라 1990년대] 더블 밀리언 셀러와 1990년 가수왕에 빛나는 변진섭

20.12.02 10:26최종업데이트20.12.0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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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6일 첫 방송된 <싱어게인-무명가수전>은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아직 무대를 꿈꾸는 가수들이 대중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돕는 신개념 리부트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물론 과거에도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이나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 같은 리부트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싱어게인>의 출연진들은 각자 다른 사연과 노래들로 매주 시청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 합격자들은 정체(?)를 밝히지 않는 오디션의 룰이 있기 때문에 이제 고작 3회 밖에 공개되지 않은 방송의 스포일러는 함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음악을 즐겨 듣는 대중들이라면 너무나 유명한 명곡을 부른 가수들이 <싱어게인>에 대거 출연한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돌아보면 이렇게 좋은 노래를 불렀던 가수들이 왜 오랜 기간 대중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싱어게인>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야 했는지 궁금해질 정도.

실제로 요즘 가수들은 단지 노래 실력 하나 만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가 쉽지 않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여러 가지 능력과 끼를 시험하는 이유다. 하지만 과거에는 오로지 '노래 실력' 만으로도 충분히 정상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오직 뛰어난 노래 실력 만으로 '가수왕'에 올랐던 이 가수가 이를 증명한다. 노래가 성공하니 얼굴도 더욱 미남으로 보였던 '노래성형'의 수혜자. 이문세와 신승훈의 중간에 있던 또 한 명의 '발라드 황제' 변진섭이다.

트로트의 시대에 불쑥 등장한 무서운 발라드 신예
 

변진섭은 데뷔 앨범과 2집 앨범이 연속으로 100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 RIAK

 
80년대 역시 90년대 못지 않게 훌륭한 가수들이 많이 배출됐지만 사실 80년대 초·중반까지는 '조용필의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가왕' 조용필의 독주가 단연 돋보였다. 조용필은 <창 밖의 여자>가 대박을 친 1980년을 시작으로 <허공>을 히트시킨 1986년까지 MBC <10대 가수가요제>에서 7년 동안 무려 6번이나 가수왕을 차지했다(그 시절 유일하게 조용필의 대상을 저지했던 가수는 1982년 <잊혀진 계절>을 히트시켰던 이용이었다).

조용필이 주춤한 80년대 후반에는 '트로트의 시대'가 도래했다. 약사 출신 가수 주현미가 1988년부터 <신사동 그 사람>과 <짝사랑>, <잠깐만>을 차례로 히트시켰고 현철도 <봉선화 연정>과 <싫다 싫어>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주현미와 현철은 80년대 후반 MBC와 KBS의 가수왕을 나눠 가지며 트롯계는 물론 가요계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했다. 그리고 그 시절 젊은 가수 지망생들은 각종 가요제에 출전하며 가수의 꿈을 키워 나갔다. 

변진섭 역시 그 시절 많은 젊은 가수 지망생 중 한 명으로 1987년 MBC 신인가요제를 통해 가수데뷔의 기회를 얻었다. 수많은 인기 가수들을 배출한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를 <슈퍼스타K>와 <K팝스타>에 비유할 수 있다면 7년 만에 폐지된 신인가요제는 <위대한 탄생>정도라고 보면 될 듯 하다(그래도 신인가요제는 7년의 짧은 역사 속에서도 변진섭을 비롯해 신효범, 트로트 가수 이정옥 등을 배출했다).

제1회 신인가요제에서 <우리의 사랑이야기>라는 곡으로 은상을 받은 변진섭은 작곡가 하광훈을 만나 1988년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변진섭은 신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애절한 음색과 안정된 고음 처리로 대중들의 귀를 사로 잡았다. 타이틀곡 <홀로 된다는 것>으로 1989년 1월 <가요톱10> 1위를 차지한 변진섭은 이어 <너무 늦었잖아요>와 <새들처럼>까지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단숨에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다.

특히 <홀로 된다는 것>의 후속곡이었던 <너무 늦었잖아요>를 통해 보여준 변진섭의 폭발적인 가창력은 단연 압권이었다. 음향시절이 좋지 않았던 시절 스피커를 뚫고 나올 듯한 성량을 줄이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마이크를 반대쪽으로 빼던 스킬은 그 시절 변진섭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1집 앨범을 통해 3곡의 히트곡을 탄생시킨 변진섭은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았던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까지 라디오와 길보드차트를 중심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1집을 통해 1988년 골든디스크 신인왕과 1989년 골든디스크 대상을 받은 변진섭은 80년대가 끝나가던 1989년 10월 두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그리고 변진섭 2집은 1집의 3연속 히트가 예고편으로 보일 만큼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가요계의 르네상스인 90년대의 시작을 알렸다.

한 앨범에서 두 곡을 동시에 1위 후보로 올린 최초의 가수

변진섭 2집에서 뻬놓을 수 없는 특징은 두 걸출한 여성 뮤지션의 등장이었다. 일일이 손에 꼽기도 힘들 만큼 많은 명곡들을 만들며 90년대를 대표하는 작사가로 군림하는 박주연과 작사가와 가수,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로 다방면에서 활동했던 노영심이 그 주인공이다.

박주연은 변진섭 2집에서 타이틀곡 <너에게로 또 다시>를 포함해 4곡의 작사에 참여했다. 박주연의 애절한 가사와 변진섭의 명품 보컬이 돋보이는 타이틀곡 <너에게로 또 다시>는 발표 직후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다가 1990년 2월 <가요톱10>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골든컵을 향해 달려갈 거 같았던 희대의 발라드 명곡 <너에게로 또 다시>의 독주는 일주일 만에 막을 내렸다. 바로 같은 앨범 가장 구석에 수록돼 있는 <희망사항>이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다. 이화여대 작곡과에 재학중이던 노영심이 만든 <희망사항>은 변진섭 2집 마지막 트랙에 외롭게(?) 수록돼 있는 노래였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일상의 가벼운 속마음을 표현한 노래는 거의 없었고 이는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국 <희망사항>은 변진섭이 이렇다 할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1990년 3월 첫째주 <가요톱텐> 1위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전주 1위였던 <너에게로 또 다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희망사항>은 <가요톱텐>에서 가볍게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변진섭에게 데뷔 첫 골든컵을 안겼다.

변진섭 2집에는 <가요톱텐> 1위를 차지한 대표 히트곡 <너에게로 또 다시>와 <희망사항> 외에도 명곡들이 대거 수록돼 있다. 첫사랑의 감정을 '가을에 서둘러 온 초겨울 새벽녘의 반가운 눈'으로 표현한 <숙녀에게>는 당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여학생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숙녀에게>는 지난 2015년에 방송된 <응답하라 1988>에서 선우(고경표 분)와 보라(류혜영 분)의 테마곡으로 쓰이기도 했다.

5번트랙에 수록된 박주연 작사·하광훈 작곡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는 단언컨대 시대를 관통하는 최고의 '건전가요'다. '아주 작고 약한 힘이지만 나의 손을 잡아요'라는 1절 가사와 '아주 작고 약한 힘이라도 내겐 큰 힘 되지요'라는 2절 가사가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일방적인 선행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 간의 조화와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변진섭 2집의 숨은 명곡이다.

이 앨범에서 몇 되지 않은 빠른 템포의 <저 하늘을 날아서>는 <새들처럼 Part2>라는 부제를 달여도 좋을 만큼 순수하고 깨끗한 곡이다(심지어 후렴구에 '새처럼 저 하늘을 날아서'라는 가사가 반복된다). 변진섭 2집은 1집에 이어 밀리언 셀러(100만장 이상 판매)를 기록하며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변진섭은 1990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가수왕을 차지하며 '둘리 전성시대'를 활짝 열었다.

이문세와 신승훈의 사이 잇는 발라드 황제
 

변진섭은 데뷔 30년을 훌쩍 넘긴 2020년에도 OST와 공연을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 KBS 화면 캡처

 
하지만 안타깝게도 변진섭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못했다. 변진섭이 3집을 발표하던 시기에 신승훈, 윤상, 심신 같은 대형 신인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대중들이 음악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변진섭의 앞을 가로막은 신인 가수 중 한 명이었던 윤상은 공교롭게도 변진섭 2집에 수록된 <로라>의 작곡가였다.

비록 2집 이후 다시 정상에 서지 못했지만 변진섭은 4집 <너와 함께 있는 이유>, 5집 <그대 내게 다시>, 6집 <니가 오는 날>, 7집 <에필로그>, 8집 <가장 슬픈 날의 왈츠> 같은 명곡들을 차례로 발표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그대 내게 다시>는 1997년 작곡가 김형석의 어쿠스틱 앨범 'Ace'에 수록된 김건모가 부른 버전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엄연히 5년 전 변진섭이 먼저 발매한 노래다. 

변진섭은 2000년대 이후 음반이나 방송 활동보다는 공연 위주로 활동 무대를 바꿨다. 전성기가 짧았던 대표적인 가수로 꼽히는 변진섭은 한 때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박중훈이 연기했던 최곤의 실제 모델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변진섭은 영화 속 최곤처럼 사고를 치기는커녕 나쁜 일로 구설에 오른 적도 없다.

지난 2015년 SBS <힐링캠프-이문세편>에서는 변진섭이 '초대손님의 초대손님'으로 출연했다. 그 자리에서 대한민국 발라드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이문세는 자신의 계보를 이은 첫 번째 가수로 변진섭을 지목했다. 훗날 어떤 위대한 발라드 가수가 나오더라도 대한민국의 발라드 역사에 변진섭이라는 걸출한 보컬리스트가 크게 한 획을 그었다는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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