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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왔는지는 바꿀 수 없어도 어디로 갈지는 정할 수 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285] <월플라워>

20.11.22 14:03최종업데이트20.11.2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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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플라워 포스터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여행자들에게 통하는 오래된 격언이 있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어디로 갈지는 정할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여행의 책임은 오롯이 여행자가 진다는 것이다.

삶도 여행과 같다.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바꿀 수 없지만 어떤 일을 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삶도 살아가는 자의 몫이다.

여기 불행 가운데 놓인 한 소년이 있다.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찰리(로건 레먼 분)다. 마음 터놓을 친구 하나 없고 동급생에겐 무시당하기 일쑤, 입학 첫날부터 졸업까지 남은 날을 헤아린다.

찰리는 가장 가까웠던 친구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말한다. 그의 곁엔 가족뿐이지만 가까웠던 형은 다른 지역 대학교로 떠났고 누나는 연애에 여념이 없다. 부모님이 모든 걸 해줄 수 있는 나이도 이미 지나버렸다. 찰리는 외롭다.
 

▲ 월플라워 찰리가 새로 사귄 친구들은 스스로를 망가진 장난감이라고 표현하지만, 실은 상당히 개성있고 부유하며 출중하다.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망가진 장난감들의 섬에 온 걸 환영해"

<월플라워>는 성장영화다. 터널을 넘어 산 저편으로 나가듯 삶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옮겨가는 영화다.

성장은 아무 노력 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위기에 응전하고 극복하여 마침내 한마디가 자라는 것이다. 얼핏 아무 노력도 않고 훌쩍 큰 것처럼 보일지라도 돌아보면 성장 뒤엔 언제나 그만한 고통과 아픔이 있었단 걸 안다.

찰리는 꾸준히 도전한다. 친구 하나 없고 옆자리 여자애에게도 이유 없이 괴롭힘을 당하던 이 아이가 먼저 다가서고 먼저 털어놓는다. 살기 위해 내지르는 비명과도 같은 그 손을 패트릭(에즈라 밀러 분)과 샘(엠마 왓슨 분)이 붙잡는다.

패트릭과 샘은 스스로를 '망가진 장난감들의 섬'이라고 부르는 무리의 일원이다. 자칭 불량품인 이들은 개성 가득한 외모와 행동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눈총을 산다. 성적 지향이 다르고 내면에 어떤 상처를 감추고 있으며 취향과 행동이 독특한 이들에게 아이들은 그리 관대하지 않다.

찰리에겐 자칭 불량품들이 불량품일 수 없다. 불량품들이 이룬 섬은 그대로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어 육지의 어느 곳 못지않은 멋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홀로 있던 찰리에게 패트릭과 샘, 그 친구들은 안식처가 되어 준다. 찰리는 누구보다 관계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그렇지 않을까.
 

▲ 월플라워 찰리(로건 레먼 분)가 학업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급생 샘(엠마 왓슨 분)을 가르치는 장면.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비명처럼 내민 손을 친구들이 잡아줬다

영화가 매력적인 건 찰리의 성장이 그의 도전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 있다. 운동장에서 2년 선배인 패트릭에게 먼저 말을 붙인 것도 찰리였고, 첫 만남에서 패트릭과 샘에게 밥을 산 것도 찰리였다. 파티에선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둘에게 찰리가 먼저 다가선다. 순수한 동기가 아니었다곤 하지만 이들에게 제 아픔을 먼저 내보이는 것도 찰리다.

찰리의 전진은 비명처럼 절실하다. 어디에도 손을 내밀 수 없을 것 같은 처지의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이야기를 붙이고 다가가 함께 춤을 춘다. 이런 용기 없이 어떻게 성장을 기대하겠느냐고 영화가 묻는 듯하다. 하늘에서 특별한 계기가 뚝 떨어지는 듯한 여느 다른 성장기와 확연히 구분되는 부분이다.

성장통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아파보이는 구석도 없지는 않지만 영화는 이들이 저마다의 고통을 각자의 방식으로 마주하고 어떻게든 전진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그린다. 동성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편견어린 시선과 마주해야 했던 패트릭, 어릴적 당한 성적학대를 완전히 지우지 못한 샘처럼 모두가 제 아픔을 지고서 오늘을 산다.

이들이 각자의 상처를 이겨내는 원동력은 연대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그늘이 되고 그로부터 재출발할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영화의 끝에서 차가 터널을 지날 때 양팔을 벌리고 서서 해방감을 만끽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명장면으로 알려진 이 장면은 영화가 성장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대로 드러낸다. 산을 넘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이 장면은 극중 인물들이 저마다의 삶에서 한층 성숙했음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터널을 나온 이들 앞엔 다시 여러개의 표지판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나온 길은 되돌릴 수 없지만 나아갈 길은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제가 마음먹은 대로.
 

▲ 월플라워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장면. 달리는 자동차 위에서 양팔을 벌리는 모습이 한국영화 <비트>의 정우성을 떠올리게도 한다.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온전한 구원도, 완벽한 성장기도 아니지만

물론 <월플라워>가 그린 성장기가 그대로 완전했는지는 알 수 없다. 찰리와 다른 친구들 사이엔 2년의 격차가 있고, 이들이 떠난 자리에 찰리는 다시 홀로 남겨질 것이다. 이들과 단절을 겪은 찰리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장면 등은 찰리의 극복과 전진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란 사실을 암시한다. 비록 일시적인 해방감은 있을지라도.

아울러 영화 곳곳에서 암시된 여러 설정은 영화가 보편적인 공감대를 살만한 영화인지를 의심케 한다. 찰리는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지만 3학년 수험생을 가르쳐 주립대에 입학시킬 만큼 탁월한 실력을 가진 인물이다. 패트릭과 샘 역시 준수한 외모에 화끈한 성격으로 주변 친구들을 사로잡는다. 다른 친구들 역시 개성이 가득해 비주류라기보단 비주류를 자처한 이들로 그려진다.

심지어 이들이 입는 옷과 주고받는 선물, 사는 집 등을 보면 하나같이 깨나 잘 사는 집안 자제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설정은 소외되고 따돌림 받는 비주류라지만 실제 보이는 건 그 반대에 가깝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러한 설정이 <월플라워>의 성공을 이끌었다는 거다. 매력적인 인물들의 느낌 있는 일탈은 가난과 절망을 배경으론 그려내기 어려웠을 테니까. 영화는 결국 가짜 청춘영화와 진짜 성장기 사이 어느 지점에서 맴돈다. 이중 어느 쪽을 가려 취할지는 관객의 몫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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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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