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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도 '코로나 블루'는 어쩔 수 없었다

펜데믹 시대의 청각적 기록, 방탄소년단 신보 < BE >

20.11.22 15:38최종업데이트20.11.2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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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의 신보 < BE > ⓒ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코로나19가 지구를 휩쓴 가운데에도, 좋은 음악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가 'lockdown(봉쇄)' 기간 동안 만든 < Folklore >는 올해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처럼 음악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아티스트들은 무대를 잃어 버렸다. 굵직한 공연들이 취소되었고, 오랜 시간 홍대 앞을 지켜왔던 공연장들도 문을 닫았다. 우리는 이런 시대를 전에 만난 적이 없다.
 
지난 20일,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이 새 앨범 < BE >를 발표했다. 2월 발표되었던 정규 앨범 < MAP OF THE SOUL 7 > 이후 약 9개월 만이다. 어쿠스틱한 기타 사운드가 곡 전반에 깔린 타이틀곡 'Life Goes On'은 지금까지 방탄소년단이 발표한 곡 중 가장 차분한 곡이다. '봄날' 정도를 제외하면 방탄소년단은 늘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곡들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워왔다. 그러니 'Life Goes On'도 평소 같았다면 타이틀곡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여름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오른 'Dynamite'가 펜데믹 시대를 위로하기 위해 디스코 사운드를 선택했다면, 'Life Goes On'은 '코로나 블루'를 더욱 솔직하게 마주하고 있는 편이다.
 
'어느 날 세상이 멈췄어 아무런 예고도 하나 없이
봄은 기다림을 몰라서 눈치 없이 와버렸어'
- 'Life Goes On' 중


방탄소년단에게 2020년은 단연 최고의 한 해였다. 그래미 어워드 무대에서 릴 나스 엑스와 함께 공연했고,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전무후무한 역사를 쌓은 이들 역시 펜데믹 시대의 피해자였다. 'MAP OF THE SOUL' 투어를 비롯한 모든 오프라인 공연이 취소되었고, 공들여 준비한 퍼포먼스를 팬들에게 직접 보여줄 수 없었다. 지난 달 온라인 콘서트 'BTS MAP OF THE SOUL ON:E'에서 멤버 지민은 '왜 이런 것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멤버들, 그리고 팬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노는 것이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하릴없이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원망은 가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얼마 전 소설가 김훈이 한 방송에 출연해 '지금보다 사람들은 더 가난하고 더 불편하고 덜 신바람 나고 덜 재미있는 또 더 고통스러운 세계를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방탄소년단 역시 '덜 재미있는 세계'에 익숙해지려고 하는 것으로 세계에 익숙해지려 노력하는 듯 하다.

호주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코스모스 미드나잇(Cosmo's Midnight)이 프로듀싱한 '내 방을 여행하는 법'에서 방탄소년단은 방 안에서 홀로 즐기는 시간들을 만끽해보자고 노래한다.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져야 한다면 작은 행복(소확행)들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단순하고 뻔한 해법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과거에 놓고 온 것
 

▲ '방탄소년단'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 방탄소년단(BTS. 뷔, 슈가, 진, 정국, RM, 지민, 제이홉)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행사장에서 열린 새 앨범 'BE (Deluxe Edition)' 글로벌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슈가는 어깨 수술로 인해 신곡 활동에 불참한다. 'BE'는 방탄소년단이 지금까지 선보인 정규 시리즈 앨범과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담은 앨범으로, "지금 이 순간에 느끼는 솔직한 감정과 생각, 나아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우리'라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 이정민

 
앨범 발매에 앞서 멤버들이 예고했듯, 이번 앨범은 그 어느 때보다 멤버들의 참여도가 높다. 제이홉이 참여한 '병', 뷔의 'Blue & Grey', 슈가의 '잠시' 등 멤버들의 자작곡이 앨범의 주를 이루고 있다. 음악적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물론, 멤버들의 고민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연초에 발표된 정규 앨범 < Map Of The Soul 7 >이 거대한 성공과 부담감을 고백했다면, < BE >는 펜데믹 시대가 바꿔놓은 그들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Skit' 속에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Dynamite'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날 서로를 축하하며 대화한다(이날은 막내 정국의 생일이기도 했다). 멤버들은 놀라운 성취에 기뻐한다. 그러나 '공연 진짜 하고 싶다'고 말하는 지민의 목소리에는 결핍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이어지는 디스코 넘버 '잠시' 역시 팬들을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별일은 없지 아픈 곳은 없겠지
난 요즘에 글쎄 붕 떠 버린 것 같아'
- '잠시' 중

 
비교적 차분한 앨범의 온도에 맞춰, 타이틀곡 'Life Goes On'의 뮤직비디오는 화려한 장치 대신 멤버들의 표정에 집중하고 있다(막내 정국이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뷔는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잠실주경기장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잠실주경기장은 펜데믹이 아니었다면 올해 그들의 단독 콘서트가 열렸을 곳이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팬들은 이것이 가수와 팬이 똑같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노래'임을 직감했을 것이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 위험 단계가 더욱 심각해졌다. 백신 개발 소식이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멈춰 있다. 이 상황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2020년의 가혹한 특수성을 기록하는 아티스트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방탄소년단의 < BE > 역시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작품이다.

아마도 < BE >는 '코로나 블루'를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케이팝 앨범일 것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역동적인 퓨처 하우스 'stay'와 히트곡 'Dynamite'로 문을 닫으면서 흐릿한 희망을 암시한다. 무기력과 좌절, 그리고 작은 긍정을 충실히 기록한 결과물이다. 훗날 코로나가 종식되고 펜데믹 시대가 머나먼 과거로 기억될 때, '이런 앨범이 있었다'며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인간의 삶은 계속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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