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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하는 예능인? 그를 조롱하던 이들에 추천하는 이 노래

[리뷰] 넉살의 앨범 < 1Q87 >, 깊이있는 가사 돋보여

20.10.30 08:38최종업데이트20.10.30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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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살의 정규 2집 앨범 < 1Q87 > ⓒ VMC

 

내가 넉살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5년 전, 군대 '사지방'(사이버지식정보방) 컴퓨터였다. 딥플로우의 노래 '작두'의 라이브 영상을 보다가, 스냅백을 거꾸로 쓴 장발의 래퍼를 보았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접신'을 소재로 한 노래와 그의 타격감 있는 랩은 궁합이 잘 맞았다.

그 이듬해 발표된 <작은 것들의 신>(2016)은 넉살의 문법이 빛난 작품이었다. 동명의 소설로부터 이름을 따온 이 앨범에서, 넉살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평범한 풍경들을 제재로 삼아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한 솥 가득 해 논 카레와 젓갈'('밥값' 중)이라는 노랫말처럼 정겨움이 있는 앨범이었다.
 
"누군 사무실 누군가는 밖 혹은 학교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건 중요치 않아
열심히 사는 너와 난 하나 여긴"

- '작은 것들의 신'(2016)


넉살을 둘러싼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는 가사를 잘 쓰는 리릭시스트인 동시에, 화려한 기술을 가진 퍼포머이기도 했다. <쇼미더머니 6>(2017)의 결승 무대에 섰고, 그 다음 해에는 <쇼미더머니 777>의 프로듀서가 되어 쟁쟁한 래퍼들을 심사했다.

매주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하는 연예인이 되었다. 넉살이 연예인으로서의 성공을 거둘수록 그의 인지도는 높아졌으나, 동시에 그에게 의문 부호를 던지는 시각도 많아졌다. 대표곡 '팔지 않아'의 가사를 거론하면서, '결국 그 정신을 팔아넘기지 않았느냐'며 조롱하는 이들이 있었다.
 
4년만의 신보, 그에게 무슨 일이?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함박웃음을 짓더라도, 그는 언제나 래퍼였다. 까데호, 가리온 등 많은 뮤지션과 함께 작업했고, 2018년 저스디스와의 디스전에서는 모처럼 날선 랩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새 앨범의 발매가 늦춰질수록, 넉살을 보채는 여론은 커졌다.

그리고 지난 9월 30일, 넉살의 두 번째 정규 앨범 < 1Q87 >이 발표되었다. 4년 8개월 만에 발표된 이 앨범은 그를 둘러싼 변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 1Q84 >에서 앨범의 제목을 따 왔다. <작은 것들의 신>에 삶의 고난 한 가운데에서도 서정성과 익살스러움이 묻어 있었다면, < 1Q87 >은 보다 어두운 감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매일 심각한 일이 터지는 것 같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다들 미쳐가는 것 같아도 그저 변화의 진통일거야
Apocalypse now 여기 적응할래"
- 'AKIRA' 중
 

신보에서는 음악적인 변화에 대한 의지가 감지된다. 오랜 음악적 동반자인 코드 쿤스트를 비롯, 레이블 VMC(비스메이저 컴퍼니)의 버기(Buggy), 홀리데이(HOLYDAY) 등 다양한 프로듀서들과 빚은 호흡이 흥미롭다.

전작이 둔탁한 붐뱁 사운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신보에서는 냉소적이며 일그러진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사운드가 그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애니메이션 '아키라'에서 제목을 따 온 타이틀곡 'AKIRA'에서는 사이버펑크 작품들의 등장 인물들처럼 혼란스러운 모습을 노래한다.

넉살은 'AM I A SLAVE'에서는 '나는 노예인가'라고 공격적으로 물으면서, 뮤지션으로서의 신념을 노래한다. '연희동 BADASS'에서도 그의 속내는 꽤 복잡해 보인다. VMC의 수장 딥플로우가 '양화(2015)'에서 과거와 현재를 매개했다면, 넉살은 '연희동 BADASS'에서 연희동을 매개로 과거의 넉살과 오늘의 넉살을 연결하고 있다. 세속적인 성공을 거뒀으나, 그 성공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신발 벗고 비행기를 탈 뻔 한 게 5년 전
촌티 팍팍 내다 이젠 의자가 뒤집어져
쇳덩이가 나는 걸 타기 전까진 알 수 없지'
 
- '연희동 BADASS' 중
 

앨범 초반에서 넉살이 자신의 오늘을 두고 고뇌했다면, 앨범 후반에서는 긍정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기도 한다. 소울 그룹 에이스 스펙트럼(Ace Spectrum)의 'I Don't Want To Play Around'를 샘플링한 'Brother(Feat. 던밀스, 로스)'가 대표적인 노래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은 devita가 피쳐링한 마지막 곡 'The Fall'에서 다시 두려움으로 바뀌기도 한다.

성공과 좌절, 공허감과 두려움, 중압감, 사랑에 대한 희망까지, < 1Q87 >은 넉살의 복잡한 내면을 훌륭하게 청각화하고 있는 앨범이다. 당신이 예능인 넉살의 본업이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혹은 넉살에게 실망했던 사람이라면, 이 앨범을 느린 호흡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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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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