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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기록' 혜준-정하 이별하게 한 "미안해"에 담긴 위력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22] tvN <청춘기록>두 사람이 헤어진 이유

20.10.28 09:35최종업데이트20.10.2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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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tvN 드라마 <청춘기록>을 보는 동안 나는 자꾸만 마음이 조마조마해져 왔다. 혜준(박보검)-정하(박소담) 커플의 해피엔딩을 보기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이 극 중반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혜준이 배우로서 승승장구하고 정하가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소외감을 느끼는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내 마음에 걸린 건 혜준이 간간이 정하를 만날 때마다 반복하는 "미안해"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 예감이 적중했다. 15회 정하는 혜준에게 "헤어지자"며 이렇게 이유를 설명한다. 

"사랑하면 미안하단 말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말 기억해? 나 만나면서 미안하다고 몇 번 말한 줄 알아? (…) 난 니가 그 말 할 때마다 난 왜 니가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지 모르겠어. 내가 아는 사혜준은 자기가 한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니까. 니 감정까지 고스란히 내가 받는 거 이제 안 할래."

도대체 왜 정하는 혜준의 '미안해'라는 말에 이별을 결심했을까? 타인을 배려하고 사과할 때 주로 쓰는 말, 그래서 대인관계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말, '미안해'. 이 말이 이별을 불러온 이유를 살펴본다. 
 

혜준과 정하는 연애 초기, 서로의 독립과 자율을 응원해주며 예쁜 추억들을 쌓아간다. ⓒ tvN

 
사랑이 두려웠던 정하

정하는 부모에게 존중받아 본 경험이 별로 없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 정하의 아빠는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정하 앞에서 마구 비난하곤 했다. 정하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아빠를 좋아했지만, 엄마는 이마저도 못마땅하게 여긴다. 아마도 정하는 어린 시절을 부모 중 한 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지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부모의 이혼을 목격한다. 다툼과 갈등이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는 것을 경험한 정하에게 '갈등'은 피해야 할 것이 된다. 동시에 남자에게 의존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탓만 하는 엄마를 보며 '의존'은 나쁜 것이라는 신념을 형성했을 것이다. 정하에게 독립과 자율은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된다. 

이런 정하는 자신의 덕질 상대였던 혜준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조차 자신이 팬임을 밝히지 못한다. 아마도 이는 어린 시절 감정을 수용받아 보지 못한 정하가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심리적 방어였을 것이다. 정하는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혼자서 조용히 좋아함으로써 갈등 따위는 없는 '덕질'로만 사랑을 이어가려 한다. 

하지만 혜준의 따뜻하고 일관된 언행에 정하는 조금씩 마음을 연다. 혜준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팬'이 아닌, 실체를 사랑하는 '연인'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 정하는 견고했던 마음의 방어를 조금씩 허물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혜준으로부터 어릴 적 받아보지 못한 '있는 그대로의 존중과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갈망했을 것이다. 

잦아진 '미안해'라는 말

드라마 중반까지 정하의 이런 욕구는 잘 충족되는 듯했다. 혜준은 진실되게 정하와 소통했고, 키스를 할 때도 허락을 구할 만큼 정하의 욕구를 존중한다. 이들은 친밀하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독립과 자율을 지켜준다. 

하지만, 혜준이 지나치게 바빠진 후부터 원치 않는 상황들이 자꾸만 벌어진다. 악의성 스캔들과 기사들이 사실과 다르게 퍼져나가고 혜준은 이런 것들로 정하가 상처를 받을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는 정하에게 자신의 힘든 상황을 털어놓기 보다 '미안해'라고 말한다. 

바로 이 지점이었다. '미안해'라는 말은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는 일을 했을 때 그 당사자에게 용서를 청하는 말이다. 그런데 혜준은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자꾸만 정하에게 '미안해'라고 말한다. 아마도 혜준은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기를 원치 않는 '배려하는' 마음 때문에 정하에게 자신의 힘겨움을 털어놓지 못한 채 '미안해'만 반복했을 것이다. 
 

혜준은 스타가 된 뒤 정하를 만나면 "미안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정하에게 여러 감정들을 불러온다. ⓒ tvN

 
하지만 사랑을 통해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싶었던 정하는 해준 역시 자신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을 것이다. 힘들면 힘들다고, 이런 일이 생겨서 너무 속상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주기를 말이다. 이런 정하에게 늘 뒤늦게 나타나 "미안해"라고만 하는 혜준. 정하는 아마도 혜준이 자신을 신뢰하지 못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때문에 '미안해'라는 말은 정하에게 '배려'가 아닌 '서운함'이 된다. 

12회 정하는 혜준에게 이런 마음을 들려준다. "넌 왜 이런 일들이 생겼을 때 나한테 먼저 의논 안 해? 왜 나 혼자 여러 가지 생각하게 만들어?"라고. 그리고 이에 "너한테 좋은 거만 보여주고 싶다"고 답하는 해준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니 자식이니. 부모님들이 자식한테 하는 대사다 그거." 

'미안해'가 위협하는 평등한 '상호의존' 

정하가 무심한 듯 내뱉은 이 대사는 사실은 무척이나 뼈있는 말이었다. 한쪽에서 '좋은 것'을 주지 못했다고 '미안해'하는 관계는 상호성을 잃어간다. 즉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사람'에게 상대방은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어려움을 의논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 부모-자식처럼 한쪽에서 다른 쪽을 책임지는 관계로 변질되어 버리는 것이다. 

정신의학자 스캇 펙 박사는 사랑의 본질은 평등한 '상호의존'에 있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각자의 독립성을 유지한 채 상호의존할 때 사랑하는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겪는 '힘든 일'을 연인에게 털어 놓는 것 대신 '미안해'라고 말하는 것은 '미안해'하는 쪽이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책임지거나 보살펴야 하는 관계로 본다는 의미가 된다. "넌 날 지켜주고 보호해줘야 한다는 전근대적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14회)"는 정하의 대사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배려받는 받는다는 기분은 정하에게 의존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시켰을 것이다. '미안해'라는 말 속에 혜준의 힘겨움이 느껴지는데 함께 아파해줄 수 없는 것은 연인으로서 오히려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이었을테다. 게다가 매번 미안하다고 하는 혜준에게 정하가 어떻게 자신이 겪는 어려움이나 힘든 일들을 마음 놓고 털어 놓을 수 있었겠는가. 결국 정하는 이제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대신 "잠깐 보는데 편하게 해줘야지. 잠깐 보는데 기쁘게 해줘야지. 잠깐 보는데 밝은 모습 보여줘야지(13회)"라고 다짐하게 된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하는 게 더 좋은 거 같아요. 받는다는 거 좋은데 고마우니까 계속 눈치를 보게 돼요. 그래서 제가 연애 안 하려고 했거든요." 

14회 정하는 이렇게 말한다. '눈치'를 보게되었다는 정하의 이 말은 이들의 관계가 건강한 상호의존 관계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독립심 강한 정하는 이런 평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자신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때문에 여전히 사랑하지만 아픔을 각오하고 이별을 선택했을 것이다. 
 

의존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정하는 결국 혜준의 눈치를 보게 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별을 결심한다. ⓒ tvN

 
아마도 혜준은 억울했을 것이다. 혜준의 '미안함'에 대한 정화의 반응에는 의존성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정하의 심리적 역동도 크게 작용한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정하는 혜준에 대한 의존성이 커져갈수록 남자들에게 의존적이었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다. 16회 "기대는 삶에 대해 엄청 부정적이야. 엄마가 떠오르거든. 좀 더 시간이 필요해"라고 스스로 밝히듯 어쩌면 정하에겐 아직 혜준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혜준-정하는 사랑을 통해서 조금씩 달라졌다. 정하는 "안정적인 걸 좋아하지만 불안정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혜준은 배려하고 책임지려는 마음보다 솔직하게 함께 나누려는 태도가 사랑하는 관계에서 중요함을 깨달았을 것이다.  

"모든 사랑은 성장하게 하는 것 같아."

14회 혜준의 대사다. 비록 끝은 이별이었지만, 두 사람이 각자 한 뼘 성장할 수 있었다면 이 사랑은 분명 의미 있었을 것이다. 정말로 16회 마지막 장면, 2년 만에 다시 조우한 이들의 모습은 이전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달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별 여부와 관계없이 이들의 '청춘기록'은 진정한 해피엔딩이 아니었나 싶다.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켰으니 말이다. 아마도 이들이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면(그 대상이 서로가 됐든 아니든 간에 상관없이) 자율과 독립을 지켜주면서 서로 의지하는 진정으로 평등한 '상호의존'에 기반을 둔 멋진 사랑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청춘기록 박보검 박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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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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