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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차문 열고 몸 던진 소녀... 엄마와 갈등 때문이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281] <레이디 버드>

20.10.19 11:59최종업데이트20.10.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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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이디 버드> 포스터 ⓒ 유니버설 픽쳐스

 
"어디서 왔어?"
"새크라멘토."
"어디라고?"
"샌프란시스코."
"아~ 샌프란시스코? 거기 멋진 도시지."


'새크라멘토'란 도시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주도지만 LA나 인근의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에 비해선 훨씬 덜 알려졌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에겐 NBA 농구팀 '킹스' 연고지로 지명도가 있지만 그나마도 유명하진 않다. 킹스의 상징인 미치 리치먼드나 블라디 디박 같은 선수도 농구팬이 아니라면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새크라멘토는 캘리포니아 여러 도시가 그렇듯 농산물 생산이 주력이다. 강을 낀 요충지인 탓에 군부대도 다수 배치돼 있다. 그밖엔 내세울 게 많지 않은데 세계적인 명사도 딱히 없어서 "새크라멘토 출신 유명인이 필요하다"는 구호가 선거 때 자주 등장할 정도다.

생각해보면 미국 영화나 드라마, 소설의 배경도 대도시인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제일가는 도시 뉴욕이나 할리우드가 있는 LA 같은 곳 말이다. 어쩌다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같은 도시가 배경인 경우도 있지만 새크라멘토는? 글쎄, 기억에 없다.

그레타 거윅이 제가 나고 자란 도시를 찍은 데는 이런 배경이 자리한다. 화려하진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꾸려가는 도시, 모두가 행복하진 않을지라도 제 삶을 지키며 꿋꿋이 살아가는 땅을 무대로 삼은 것이다.
 

영화 <레이디 버드> 스틸 컷. 단짝친구 크리스틴(시얼샤 로넌 분)과 줄리(비니 펠드스타인 분). ⓒ 유니버설 픽쳐스

 
"안녕, 내 이름은 '레이디 버드'야."

새크라멘토에 사는 열일곱 고등학생 크리스틴(시얼샤 로넌 분)은 일상이 시시하다. 이제 곧 대학교에 지원해야 하지만 가고픈 학교는 저 멀리 동부에 있다. 사실 학교보다는 새크라멘토와 캘리포니아를 떠나 다른 곳에 가고 싶은 게 그녀의 진심이다.

크리스틴의 일상은 답답함의 연속이다. 주변에 비해 풍족하지 않은 집안 형편과 어떻게 보아도 특별하지 않은 제 외모며 재능이 그녀를 갑갑하게 한다. 사사건건 참견인 엄마 매리언(로리 멧칼프 분)도 크리스틴을 옥죈다. 얼마나 답답하고 힘이 들었던지 달리는 차 문을 열고 몸을 던질 정도다.

크리스틴과 엄마는 서로를 아끼고 취향까지 꼭 맞지만 함께 있으면 싸우기 일쑤다. 방 정리부터 귀가시간, 몸매 관리와 학업성적까지 부딪치는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여기에 대학입학 문제까지 겹치니 갈등은 점입가경이다.

어떻게든 동부로 가겠다는 크리스틴에게 엄마는 형편에 맞춰 가까운 주립대학에 가라고 강요한다. 서로가 서로의 주장만 반복하니 관계는 비틀리고 나아질 기미가 없다.

<레이디 버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었음에 분명한 특정한 시기를 다룬다. 부모 품에서 자란 아이가 성년이 돼 독립하기까지의 이야기로, 둥지가 답답한 아이 새와 여전히 부리에 먹이를 넣어주고픈 어미 새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주요한 관심사다.

애정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대부분 거리조절 실패에서 비롯된다. 저마다 필요한 거리가 있는데 한 쪽이 자신의 거리를 강요해 다른 쪽이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다. 너무 가까우면 치이고 멀면 슬퍼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지만 쉽지가 않다. 커버린 아이도 앳되게만 보이는 게 부모의 눈이라 더욱 그렇다.
 

영화 <레이디 버드> 스틸 컷. 어머니와 딸은 원래 애증의 관계인 것일까. 영화 속 시종일관 부딪히던 어머니와 딸. ⓒ 유니버설 픽쳐스

 
성장은 영화만큼 쉽지 않겠지만

"엄마가 날 좋아해줬으면 좋겠어"라는 딸에게 "널 사랑하는 걸 알잖아"하고 답하는 매리언에게서 둘 사이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난다. 딸이 언제나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엄마에게 크리스틴은 늘 기대에 닿지 못하는 자식이다.

비단 어느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다.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던 아이가 자라 독립을 준비하기까지 부모가 겪었을 고난은 단 몇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는 대개 실제보다 많이 기대하고 자주 실망하며 거듭 요구하는 사람이 된다. 그로부터 받은 애정에도 불구하고 해소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낀다면 이제 독립할 때가 된 것이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더 이상 다른 누구의 일방적 요구를 허용하지 않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조건적인 사랑 만큼이나 있는 그대로의 인정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동등한 성인으로서.

영화 속 크리스틴이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 부르는 건 상징적이다. 머리가 새 모양이든, 몸통이 새 모양이든 상관없지만, 새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던 크리스틴은 영화의 끝에서 훨훨 날아 동부로 떠난다. 어쩌면 부모의 마음에 차지 않는 아이였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문제투성이 청춘일 수도 있겠지만, 크리스틴이 스스로 둥지를 꾸리고 어엿한 '레이디 버드'로 살아가길 바라는 게 그레타 거윅과 영화를 보는 관객의 일치된 기대가 아닐까 싶다.

어떤 관객은 성장인 듯 보였던 영화의 끝에서 다시 출생을 부인하는 크리스틴에게 일종의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하도록 하자. 저 베드로 역시 예수를 부인하였으나 끝내 가장 훌륭한 제자로 남았음을 말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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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 https://brunch.co.kr/@goldstar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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