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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즐기자는 '숨듣명 콘서트'... 시청자는 왜 환호할까

[TV리뷰] 밀레니얼 세대가 과거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

20.10.11 14:48최종업데이트20.10.1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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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황' 나훈아가 전국을 강타했던 지난 추석 연휴, 나의 또래(20대 중후반) 친구들 사이에서는 소소한 화제거리가 있었다. SBS 추석 특집 프로그램인 <문명특급-숨듣명 콘서트>(숨어듣는 명곡 콘서트)이었다.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 콘텐츠가 처음으로 TV 시청자들을 만난 것이다. 심야에 방송된 이 프로그램은 2.3%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유쾌한 추억 여행이었다.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 사이, 가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케이팝 가수들이 한 데에 모였다. 유키스는 '시끄러'와 '만만하니'를 , 틴탑은 '향수 뿌리지마'를 불렀다. 티아라는 2011년 대한민국 최고의 히트곡이었던 '롤리폴리'와 'Sexy Love'를 다시 불렀다. 2000년대 중반을 대표하는 보이 그룹이었던 SS501의 김규종과 허영생도 얼굴을 비췄다. 발매 당시 난해한 컨셉으로 화제를 모았던 나르샤의 '삐리빠빠' 역시 울려퍼졌다. 나는 이 곡들이 인기를 끌 때 학창 시절을 보냈다. 90년대생의 학창 시절을 함께 했던 이들의 노래는, 모두 유튜브를 중심으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그리고 이 때아닌 인기의 중심에는, 1990년대생들이 만든 콘텐츠 <문명특급>이 있다. '글로벌 신문물 전파 프로젝트'를 슬로건으로 한 <문명특급>은 2018년, '스브스뉴스' 채널에서 시작된 콘텐츠다. 이 콘텐츠가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 이후, 유튜브에 독립 채널을 개설했고 85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진행자 재재(이은재)를 비롯한 제작진은 스스로를 밀레니얼 세대로 정체화한다. 이효리의 '유고걸'을 패러디한 '유교걸'을 유행시키며 가부장제를 비판한다. 이들은 밀레니얼 세대가 겪는 고충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데 능하다.  

'연반인'(연예인과 일반인 사이의 준말)으로 알려진 진행자 재재는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돌 그룹, 배우 등 명사들을 만났다. 그는 천편일률적인 진행과 거리를 둔다. 그는 '애교'를 보여달라고 보채지 않는다. 굳이 연애와 결혼에 대해 묻지 않는다. 인터뷰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시키지 않는다. 그는 젊은 시청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질문을 한다. 또래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와 유머 감각을 바탕으로 판을 짠다.
 
 

추석 연휴 방송된 SBS <문명특급-숨듣명 콘서트>의 한 장면. ⓒ SBS

 
부끄러움의 미학, 그럼에도
 

명곡이면 명곡이지, 숨어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요'로 즐겁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이지만, 이어폰을 넘어 누군가에게 들려주기에는 낯부끄러운 곡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포문을 연 파이브돌스의 '이러쿵 저러쿵'부터, 제국의 아이들의 데뷔곡 '마젤토브(Mazeltov)', 유키스의 '시끄러'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
 
과거의 노래를 현재로 소환하는 프로그램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문명특급을  '레트로'라는 맥락에서만 바라본다면, 이 현상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로 진출하고 있다. 1990년대에 태어나, 2010년대에 성장한 이들이 향유했던 문화, 꽤 가까운 과거가 추억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절의 댄스 가요 스타일이 '요즘 가수'에 의해 재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현재 절정의 위상을 자랑하고 있는 케이팝이 거쳐 온 '과거'이며,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존경의 대상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데, 나는 운동을 하면서 '마젤토브(제국의 아이들)'를 종종 듣는다. 학창 시절 mp3 플레이어로 듣던 이 곡들은, 지금 스마트폰과 무선 이어폰으로 들어도 신난다. 그러나 발매 당시 예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곡들도 아니었다. '후크(Hook)'에 집중한 조악한 구성, 과하게 사용된 오토튠과 맥락없는 가사는 이 노래들을 대놓고 듣기 부담스럽게 만든다.

'숨어 듣는 명곡' 컨텐츠를 고안하던 2018년 말, 재재가 '누가 mp3 보면 에드 시런으로 돌려야지'라며 농담을 했다. 이처럼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나의 문화적 취향'을 보여주는 플레이리스트로 소개하기 민망할 것이다. 그래서 이 곡들은 강제적인 망각의 영역으로 유배를 떠났다. 이것은 오늘날 박문치나 기린이 재구성한 90년대 가요, 혹은 두아 리파(Dua Lipa)나 위켄드(The Weeknd)가 재구성한 80년대 디스코처럼 멋지다고 여겨지는 과거가 아니다.
 
말하자면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다. 문명특급은 길티 플레져의 영역에 있던 이들을 다시 현재로 소환한 것이다. 과거 MBC <무한도전>의 토토가, JTBC <슈가맨>과 같은 프로그램이 '우리들의 그립고 찬란한 과거'를 상찬했다면, 문명특급은 '더 이상 이 노래들을 숨어 듣지 말자'라며 자조적인 웃음을 짓는다.
 
재재는 마젤토브의 작사가 한상원을 찾아 왜 그런 가사를 썼느냐 묻는다. 티아라 앞에서 '뽕필'을 거론하고, 티아라 멤버들은 당황스러웠던 구 기획사의 방침과을 이야기하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오빠는 네가 정말 싫다'(유키스의 '시끄러' 중)는 유키스의 가사는 'OPPA'라는 유행어로 재탄생한다. 그러면서도 원곡자에게 무안을 안겨 주지 않는다. 부끄러움의 정서는 진행자뿐 아니라, 당사자인 가수와 팬 역시 유쾌하게 공유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명특급은 오늘날의 기준에서 다소 세련되지 못한 과거, 공장화된 아이돌 산업의 비애를 인정한다. 거기서 유쾌한 웃음이 시작된다. 이들이 과거를 소비하는 방식은 기존의 주류 미디어가 담아내지 못한 세계다. 밀레니얼 세대는 그들의 추억을 이렇게 대면하고 있다.
 
재재 문명특급 숨듣명 티아라 유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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