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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혀버린 경기장이 아쉽다면, 이 영화를 보세요

[오늘날의 영화읽기] 코로나19의 우울감을 한 방에 날릴, <92년의 여름>

20.08.29 12:43최종업데이트20.08.29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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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1992년 여름은 어땠나요? 여기, 어느 해보다 더 뜨거웠던 1992년을 보낸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북유럽의 작은 나라 '덴마크'입니다. 인구 500만 명의 작은 나라인데,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불리는 곳이기도 하죠. 그 나라의 1992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바로 1992년 유럽 축구 선수권대회 (이하, 유로 1992)의 우승 팀이 된 것입니다. 세계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는 국가들이 모여서 유럽 대륙 내에서의 최강자를 뽑는 대회에서, 덴마크가 최고의 자리에 오른 거예요. 이 놀라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기에, 오늘은 그 영화 <92년의 여름>(2015)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1992년의 유로를 준비하는 덴마크 국가대표 축구팀이고, 그중에서도 덴마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리샤르 묄러 닐센의 시선입니다. 전임 감독이었던 셉 (조세프 피온텍) 아래에서, 대표팀 수석 코치였던 리샤르는 자신이 당연히 덴마크 국가대표 팀을 맡게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덴마크 축구 협회는 독일인이었던 셉의 뒤를 이을 또 다른 외국인 감독을 찾고자 했어요. '외국인 감독 찾기'라는 우리나라 축구팀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일이니 그리 어색하지는 않더라고요. 다만,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구나, 하는 '위안'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협회의 논리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다스리기에는 국내 감독으로는 어렵다,는 것이었지요. 당시 덴마크 대표팀에는 유명한 라우드롭 형제도 있었고, 골키퍼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슈마이헬 선수도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전임 감독이 덴마크의 최초 월드컵 본선 진출을 성공시키는 등 굵직한 성과가 있었으니, 후임을 결정하는 게 쉽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을 찾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 리샤르는 '절대 수락하지 말라'라는 부인의 충고를 무시하고 덴마크 대표팀의 감독직을 수락하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맞이한 첫 대회가 유로 1992의 예선이었는데, 선수들과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팀은 결국 예선에서 탈락하고야 말죠.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한 영화이니 유로 1992의 결과가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덴마크는 끝내 유럽 챔피언이 됩니다.

예선에서 탈락한 팀이, 그것도 감독과의 갈등을 그대로 품었던 팀이, 어떻게 월드컵 우승보다 어렵다는 유럽 챔피언이 되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코로나19로 스포츠 이벤트 금단현상에 시달리신다면, 한 번 꼭 찾아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덴마크 팀을 응원하는 관중의 입장으로 보신다면, 충분히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들은 축구를, 아니, 스포츠를 어떻게 즐기고 계시나요? 저는 직접 경기장에서 그들의 경기를 같이 관람하며 응원하면서 '참여'를 통한 환희를 느낍니다. 훌륭한 경기장에서 깔끔한 카메라워크에 기반한 축구 중계를 보더라도, 경기장에서 직접 뛰며 응원을 하는 것에는 비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게는 <92년의 여름>이 '2002년의 여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살던 우리 모두가 똑같지 않을까요?

축구를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 세계 안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스무 살 즈음에는 축구하는 친구들 틈에 끼어서 같이 뛰어보기도 했는데, 겨우 중간 휴식시간의 승부차기밖에는 참여할 수가 없었어요. 인정합니다. 남자애들과 함께 뛸 만큼의 체력은 되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아쉬워서, 스물다섯 즈음에는 축구 심판에 도전하겠다며 지도 교수님께 여름휴가까지 받아 가며 심판 교육을 받았는데, 12분 달리기인 '쿠퍼 테스트'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 2002년 월드컵, 16강전을 준비하며! 대전시티즌 서포터로써 2002년 6월 18일의 월드컵 16강전, 이태리와의 일전을 준비하던 풍경이예요. 이태리를 분노하게했던 카드섹션을 설치해놓고, 뿌듯했던 것도 잠시, 연습하던 이태리 선수단이 항의하여 부랴부랴 다시 숨겨야했던 추억의 카드섹션입니다. ⓒ 이창희

 
결국, 저는 선수로도 심판으로도 그들의 세계에 끼어들 수 없었어요. 그렇게 겨우 남은 것이, 경기장의 그들과 함께 뛰는 '열두 번째 선수'인 서포터였습니다. 매주 주말이면 단관 버스의 땀 냄새, 한숨, 환희와 함께 전국을 헤매고 다녔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도 그때의 제가 제일 짜릿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전국의 축구장을 떠돌던 제게 2002년은, 문득 다시 떠올려보아도 '믿어지지 않는' 여름이에요. 축구팬으로서 월드컵을 나의 나라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꿈만 같은데, 우리 팀의 모든 경기를 경기장에서 즐길 수 있었던 그 시간은 '비현실적'이었으니까요. 게다가, 2002년 월드컵에 출전했던 덴마크의 경기를 예매했던 추억까지 연결되니, <92년의 여름>이 전혀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었답니다.

코로나19의 위협으로 경기장이 다시 닫혀버린 요즘, 제가 가장 그리운 것도 경기장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함성이에요. 대리만족으로 선택한 <92년의 여름>이 허락한 것은 그런 '함성'이 전해주는 뜨거움이었답니다. 1992년 여름, 북구 유럽의 스웨덴에서 열린 유럽 최고의 국가대항전에서, 경기장을 가득 채운 수만의 관중이 덴마크의 국가를 한목소리로 불러내는 장면에서, 전율이 느껴지는 것 어쩔 수 없습니다.

축구라는 것은 경기장의 선수들과 코치진, 심판이나 운영진들만으로 이뤄지지 않으니까요. 저는 '경기의 감동'을 완성하는 것은 경기장을 가득 채운 우리들 '관중'이라고 믿거든요. 게다가, 영화는 열광의 현장감을 그대로 살려내기 위해, 절묘한 편집으로 당시의 경기 장면과 영화 촬영분을 섞어냅니다. 덕분에 배우들의 연기도 자연스럽게 당시의 것으로 이어지고요. 비어버린 관중석이 아쉬운 2020년을 살다 보니, 언제쯤 이런 열광을 다시 함께할 수 있을지도 안타까웠습니다.

"브리안"
"…"
"이것 좀 보게. 내가 메모 좋아하는 건 알지? 수학을 좀 했는데, 9살 이후로 교회에 안 가고 우리 팀 경기를 본 이후 일주일에 최소 3경기는 봤다네. 매주 말이야. 지금 55살이니 9살을 빼면 46년 동안이지. 2,392주 동안 주 3경기씩이야. 직접 현장에서, TV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지. 7,176경기니까 내 평생에 60만 분 동안 축구를 본 거야. 몇 년 동안 엄청난 시간을 들인 거야. 그런데도, 자네가 내가 아는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해. 네 형보다도 낫고 다른 누구보다도 훌륭해. 그렇지만 자넬 교체한 것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자넨 지쳐있었고 그게 팀에겐 최선이었으니까 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약속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왜 그런지 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준결승에서는 본인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뛰어라. 오늘은 자네가 지배하는 거야 알았지?
"네."


유로 1992에서 덴마크의 준결승 상대는 반 바스텐과 베르캄프가 버티던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였습니다. 그 경기를 준비하며 리샤르 감독은 '가장 우아한 공격수'인 베르캄프를 상대해야 하는 브리안 라우드롭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힘들게 팀을 만들어온 '차선책'으로써 감독에겐, 어쩌면 가장 놀라운 성취일지 모르겠어요. 자신의 뜻에 맞게 만들어낸 하나의 팀으로써의 덴마크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는 장면이니까요. 조심스럽게 이 말을 나누는 브리안과 리샤르의 표정과 함께, 이 순간을 느껴주셨으면 합니다.

코로나19는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순식간에,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아마, 여러분들께도 이런 상황이 있을 거예요. 그것이 혹시라도 '축구장의 함성'인 분이 있으시다면, 영화 <92년의 여름>를 추천합니다. 그리고, 열성적인 '축구팀 서포터'의 관점으로 지금의 우울감을 벗어나고 싶으시면, <죽어도 선덜랜드>를 이어서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나의 팀을 결정하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대로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언제이든, 골을 넣고 싶다면 '신발 끈을 보고' 힘껏 차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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