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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들어갈 때 짐 검사에 몸수색도, 이 나라의 참혹한 현실

[넘버링 무비 184] EIDF 2020 상영작 <시네마 파미르>

20.08.27 14:52최종업데이트20.08.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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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EBS국제다큐영화제 메인타이틀 ⓒ EBS국제다큐영화제


01.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는 '시네마 파미르(Cinema Pameer)'라는 작은 극장이 있다. 사장인 누르 아카를 비롯해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하지만, 이 극장에는 다른 나라의 보통의 극장과는 조금 다른 규칙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영화관 입구에서 군 소속의 장군을 비롯한 인원들이 모든 관객의 짐을 검사하고 몸수색을 한다. 이 영화관을 찾을 관객이라면 예외없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규칙이다.

영화관을 사용하는 에티켓에 대한 안내 방송도 끊임없이 계속된다. 그 내용이 특별하지는 않다. 그저 바닥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것과 스크린을 향해 레이저와 같은 불빛을 비추지 말라는 것과 같이 아주 기본적인 행동에 관한 것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관객들의 모든 행동은 CCTV를 통해 관찰되며, 순찰조는 손전등을 들고 불이 꺼진 상영관 내부를 돌아다니며 일부 관객들의 행동을 제지한다.

같은 시대의 영화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이질적인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마틴 본 크로그 감독에게도 그 장면들은 강한 인상으로 남았던 것 같다. 그는 이 작품 <시네마 파미르>를 통해 카불이라는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에 대해 들여다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영화관을 찾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다큐멘터리 <시네마 파미르>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2.
중앙 아시아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은 40년이 넘게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 시작은 1979년의 구 소련 침공이었지만, 실제로 아프가니스탄 전역이 전쟁에 휘말리게 된 것은 소련군이 철수를 시작하고 난 뒤였다. 연이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인 탈레반과 정부군의 내전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새로운 세대는 문화나 교육 대신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에 던져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영화 산업도 그 힘을 잃어갔다.

실제로 과거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극장을 점잖고 긍정적이며 세련된 공간으로 여기며 사랑했다고 한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많았고 지금에 비해 충분한 교양도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최고의 직업군으로 추앙받던 시절이 있었을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지금은 술집이나 매춘업소같이 질 떨어지는 곳에 비교를 할 정도로 무시 받고 있다. 탈레반 조직이 정권을 잡았던 때에는 모든 영화관이 문을 닫기까지 했으니 탄압 아닌 탄압을 받은 셈이기도 하다.

여기에 지금의 젊은 세대는 대다수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로 전시 상태에서 평생을 살아 왔기 때문에 영화의 가치를 제대로 모른다. 그들은 극장에 앉아 있을 비용으로 제대로 된 끼니 한 번 더 챙겨 먹는 것을 귀하게 여길 정도다. 극장 앞에 선 직원이 목청이 떨어져 나가도록 호객을 해도 핀잔을 듣기 일쑤다.

그나마 영화관을 찾는 이들 역시 기본적인 에티켓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고 경고를 듣지 않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다. 바닥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고성을 내는 정도도 약과에 속한다. 해시시나 마리화나 등의 마약류를 극장에 반입하기도 하고 어둠을 틈타 성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들을 강하게 제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렇지 않아도 대중의 긍정적인 호응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 좋지 않은 이미지를 쌓을 수도 없다. 몸수색을 거부하는 노인 앞에 당혹스러워 하는 직원의 모습이 실제로 등장하기도 한다.

03.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극장의 입장에서 보면 영화 한 편을 수입하는 일에도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정이 있다. 특히, 주된 수입 루트 중 하나인 파키스탄과 같이 주변 국가들로부터 영화를 공수하는 과정에서 국경을 넘으며 많은 일이 일어난다. 이동 중에 어디에선가 날아든 총알에 맞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반란군에 붙잡히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경우에는 어떤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들의 의혹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어렵게 국내로 반입한 후에는 정보문화부로부터 허락을 구해야 한다. 검열이다. 주로 외설적으로 여겨지는 부분을 삭제하는 것이 주된 과제인데, 이는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 이들 문화 가운데 여성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문화와도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특히, 관련 작품을 선전하는 홍보물의 경우에는 여성의 팔이 드러나는 것조차 불경한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 위를 색이 포함된 필기구로 덧칠을 한다던가 다른 종이를 덧대는 방식을 이용해 어떻게든 지워내고자 한다.

그렇다고 이런 과정을 통해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작품들의 퀄리티가 좋은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제 겨우 70-80년대의 할리우드 영상을 따라갈 수 있을 법한, 어쩌면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조악한 형식이지만, '시네마 파미르'와 그 직원들은 그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이라도 더 상영하기 위해 이 모든 어려움을 감내해내고 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시네마 파미르>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4.
이처럼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시네마 파미르를 지켜나가고 있는 이들에게는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만이 가득하다. 그들 가운데는 내전 중에 끌려가 끓는 기름이 얼굴에 부어지는 고문을 당한 이도 있고, 전쟁으로 12명의 가족을 잃은 것도 모자라 자신의 다리까지 잘라내야만 했던 이도 있다. 전쟁으로 인한 참혹한 현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도시 카불에 시네마 파미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지금도 극장 가까이에서 폭탄이 폭발하는 일이 일어날 정도로 치안은 불안한 상태고, 반란군은 대중에 두려움을 심기 위해 언제나 공공장소만을 노려오기에 현실이 아수라장이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70명이나 되는 경찰도 탈레반 세력에 포위당하면 외국 군대에 의해 구출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하니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진 지는 오래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이런 참혹한 현실을 잊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시네마 파미르가 미치는 영향력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힘을 믿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공간은 사라지지 않고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
다큐멘터리 EBS EIDF 시네마파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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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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