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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호소,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주장] 유명인들의 극단적 선택이 가져올 부작용 우려된다

20.08.10 11:17최종업데이트20.08.1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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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예인-스포츠 선수 등 유명인들이 연이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여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저마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지려고 했던 비극의 이면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나서야 뒤늦게 그들의 절박한 호소가 그나마 반응을 얻는 부조리한 현실, 약자에 대한 안전장치가 부족한 우리 사회의 구멍난 시스템에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걸그룹 AOA 출신 배우 권민아는 최근 또다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대중에게 충격을 줬다. 권민아는 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해한 손목 사진과 함께 전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 대표 한성호와 AOA 일부 멤버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공개 저격했다. 권민아의 현 소속사 우리액터스에 따르면 다행히 권민아는 응급실로 이송되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민아는 2012년 FNC에서 걸그룹 AOA로 데뷔해 활동을 하다가 2019년 팀에서 탈퇴하고 소속사를 옮긴 상태였다. 지난 7월에는 SNS를 통해 AOA 활동 시절 전 리더였던 신지민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초기에는 권민아와 신지민의 개인적 불화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소속사 FNC가 팀내 갈등을 알면서도 이를 사실상 묵인해 온 것을 넘어서 멤버들을 차별대우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며 논란이 더 크게 확산됐다.

권민아의 폭로가 처음 제기되었을때만 해도 '소설'이라고 주장했던 신지민은 논란이 점점 커지자 사실을 인정하고 끝내 사과문과 AOA 탈퇴-연예활동 전면중단 등을 선언했다. 이렇게 일단 상황이 정리되는 듯 했으나 권민아는 최근 다시 SNS에 연이어 글을 올리며 저격을 이어갔다. AOA 다른 멤버들을 거론하며 "방관자"라고 비판하기도 했고, 전소속사인 FNC 엔터테인먼트와 한성호 대표을 거론하며 "여러번 도움을 요청했지만 무시당했다" "정산도 제대로 안 해주고 8년 계약에 불법 연습생, 30억 빚도 내역이 없다" "재계약 시에도 아티스트의 안위보다 위약금을 운운했다"등의 폭로를 이어가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이러한 권민아의 불안정한 행보에는 최근까지 일부 악플러들에게 지속적인 비난과 사실관계에 대한 해명 의혹을 받아온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권민아는 이미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자해 시도를 한 사실을 고백했을 만큼 현재 정신상태가 극도로 불안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의 초점은 이제 멤버들 개인간의 사적인 문제를 떠나, 아티스트를 대하는 거대 기획사의 '부당 대우'와 '갑질' 문제로 옮겨간 모양새다. 현재 AOA의 소속사인 FNC는 많은 대중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소속사에서 애초에 멤버 관리나 초기 대응만 잘했더라도 이렇게까지 악화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FNC는 권민아의 폭로가 나온 이후에도 초기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뒤늦게 신지민의 활동중단을 발표하면서 팬들에게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인 권민아 본인에 대해서는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을 뿐아니라, 구체적인 개선 방안이나 대책도 들어있지 않은 그저 형식적인 사과문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FNC는 9일 다시 보도자료를 통해 사과문을 발표했다. "AOA와 관련한 여러 불미스러운 일들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많은 걱정과 불편함을 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무엇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권민아 양이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하길 바라며 깊은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FNC가 지난 한달간 AOA 사태에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불과 두 번, 그나마 권민아에게 공식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권민아가 직접 가해자로 지목한 한성호 대표나 AOA 타 멤버들의 입장표명은 전혀 들어가있지 않았다. 결국 이번에도 여론의 눈치만 보며 회사 뒤에 숨어 사태를 회피시키기에 급급한 억지춘향식 사과문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한류'라는 허울좋은 환상에만 가려져서 아티스트의 인권 보호나 투명한 회사운영과 거리가 먼 국내의 수많은 연예기획사들에게 앞으로도 언제든 공통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연예인 개인과 대형 회사간의 갈등이 발생했을 때 약자 편에서 법적이나 제도적으로 이를 적절히 중재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도 연예계의 현실이다. 피해자의 시각에서 보면, 충분히 절망과 무력감을 느낄수 있는 상황이었다.

최근 유명 스포츠인이었던 트라이애슬론 선수 최숙현과 배구선수 고유민은 최근 연이어 안타까운 선택으로 세상을 등진 바 있다. 이들은 각각 팀내의 가혹행위 혹은 안티들의 악플 등으로 많은 고통에 시달리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누구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전까지는 그들의 호소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권민아의 사례와도 비슷하다.

최숙현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사건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면서 체육계와 정치계까지 나서서 뒤늦은 진상조사가 시작됐다. 가해자들이 잇달아 체육계에서 영구제명되거나 구속 수사를 받게되면서 고인의 한이 늦게나마 풀릴 수 있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진작에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고 억울한 사연을 호소할수 있는 제도적 창구가 마련되었더라면, 꽃다운 청춘이 삶을 포기해야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한다.

고유민이 세상을 떠나자 그 영향으로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들에서는 최근 연이어 스포츠 관련 댓글 기능의 중단이라는 큰 변화를 불러왔다. 고유민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에는 누리꾼들의 과도한 악플이 있다는 지적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지난해 설리-구하라 등 유명연예인들의 사망이 연예 부문의 댓글폐지로 이어진데 이어, 스포츠에서도 악플로부터 선수들의 인격을 보호해야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베르테르 효과(Copycat suicide effect)처럼 유명인들의 연이은 극단적인 선택이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목숨을 함부로 내던지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한다.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평생 남겨진 상처도 고려해야 한다. 극단적인 방식을 통해서만 자신의 목적을 이루거나 관심을 받으려는 행동이 여기저기 만연해서도 곤란하다.

하지만 대중들은 한편으로 당사자들이 그렇게 밖에는 세상에 호소할 방법이 없었던 안타까운 상황에 더 공감하고 있다. 권민아를 비롯하여 세상을 떠난 최숙현이나 고유민도 그녀들이 속해있던 시스템내에서 철저한 '약자'의 위치에 놓여 있었고, 오랜 세월에 걸쳐 지속적으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만일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그녀들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기면서까지 안타까운 선택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냉정히 말하면 그녀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고 나서야 겨우 여론의 반응을 불어일으켜 작게나마 변화의 계기가 마련된 것도 씁쓸하지만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약자들이 굳이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주는 사회가 되어야만, 거듭된 비극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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