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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잃었지만... 신자의 고해성사 모른척 할 수 없는 신부

[넘버링 무비 180]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끝없음에 관하여>

20.07.15 10:33최종업데이트20.07.1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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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끝없음에 관하여> 제 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끝없음에 관하여>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1.
한 사람의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하나의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장소와 시간이 상이한 에피소드들이 짧은 형태도 계속해서 등장한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한 남자를 보았다', '한 여자를 보았다', '어떤 부모를 보았다'와 같은 독백으로 시작된다.

장면을 설명하는 듯 하지만 최소한의 정보만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느낌이 전해진다. 그나마 들려오는 설명들 역시, 건조한 톤의 장면과 톤 다운된 배경 소리와 더불어 어두운 느낌을 형성한다. 시작점에서는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 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 기묘한 기분마저 느끼게 된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잘 알려진 로이 앤더슨 감독의 영화 <끝없음에 관하여>는 제목 그대로 '끝나지 않는 이야기'와 '끝을 낼 수 없는 이야기'의 단편들을 이어낸 작품이다. 자신의 전작들에서 보여줬듯이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하나의 통일된 흐름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밑그림을 그려놓은 뒤 그 위에 작은 이야기를 덧붙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5분을 채 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장 극단적인 방식이 이번 영화에서 차용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나, 감독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에 다가가는 것에는 조금도 무리가 없다.
 

▲ 제 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끝없음에 관하여> 제 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끝없음에 관하여>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2.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명확한 구획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룹을 이루고 있는 에피소드들의 유사성은 그 경계를 유추할 수 있게끔 한다. 처음의 지점에서 등장하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부모의 이야기. 지뢰를 밞아 두 다리를 잃은 남자의 삶. 자신의 신앙을 잃어버린 신부의 방황. 모두 이미 망가지고 일그러진 현재를 어찌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절망이 전이되는 듯 싶지만 그들의 삶은 이어지고 있다. 다리를 잃은 남자는 악기를 연주하고, 아들을 잃은 부모는 자식의 무덤을 돌본다. 신앙을 잃어버린 신부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다.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앞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만족할 수는 없지만 자신에게 남은 것이 있고, 주어진 것을 모른 척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악기를 연주한다고 해서 남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안쓰러운 시선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자식의 무덤에 꽃을 피운다고 해서 아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며, 신앙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신자들의 고해성사를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끝없음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다.

03.
두 번째 지점에서는 아무도 자신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어디로 가야할 지 알지 못한 채 길을 잃은 남자, 총살이 결정된 직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샴페인을 미치도록 사랑한 여자와 구두에 문제가 생긴 여자도.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는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모두 '어떤 시도를 이어갈 수 밖에 없는 상태'다. 직전의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긍정적인 상황에 대한 기대를 하기는 어려운 상태이지만 현재의 행동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결과가 긍정적이었는지 부정적이었는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홀로 된 플랫폼에서 누군가 기다릴 수밖에 없고,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지만 계속해서 나아갈 수밖에 없고, 이 삶을 이어갈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애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었던가. 감독은 기대되는 결과와는 무관하게 행동을 이어가야만 발생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이 이야기들을 통해 이끌어낸다. 끝없음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다.

첫 번째 그룹의 이야기와 두 번째 그룹의 이야기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시점과 주체의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가야만 하는 끝없음의 시점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있으며 그 위치가 개인에게 존재하지만, 어떤 시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의 끝없음이란 지금인 현재의 문제임과 동시에 결말을 위한 방점이 타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 제 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끝없음에 관하여> 제 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끝없음에 관하여>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4.
마지막에서는 조금 더 근본적인 상황들이 제시된다. 슬픔과 분노, 복종과 맹세와 같은 순수하고 맹목적인, 감정과 같은 요소들이 에피소드를 통해 그려지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배반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커플과 단단한 복종과 맹세로 일궈낸 죽음, 지키고 싶었지만 제 손으로 없앨 수밖에 없었던 존재와 같은 것들이다. 버려야 하는 상황을 마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끝낼 수 없도록 이미 단단히 망울져 버린 것들. 끝없음에 관한 세 번째 이야기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룹에서 등장한 이야기들이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로 선택하거나 지속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렇지 못한 것들을 통해 끝없음에 대해 생각한다. 모순이 존재하고 그 끝의 결말을 알 수 없을지언정 현재의 상황과 선택 두 가지 모두를 이끌고 갈 수 있었던 이야기들과 달리, 이번에 제시되는 에피소드 속 이야기들은 반드시 하나를 포기하거나 이미 끝나 버린 상황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05.
끝이 없다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전체가 끝나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한 편의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일은 그렇게 익숙한 경험이 아닐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로이 앤더슨 감독은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이해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사유를 가능하게끔 유도하는 쪽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 커플을 보았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도시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아름답기로 유명했지만 이제는 폐허가 된 도시다.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화가인 샤갈의 작품을 차용한 듯 보이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감독의 전작들이 그러했듯이, 이번 작품에서도 그렇다. 그의 작품 속에서 버려지는 장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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