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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당신의 시간을 사겠다는 전당포가 있습니다

[넘버링 무비 179]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단편 상영작 <전당포> 외 2편

20.07.14 13:58최종업데이트20.07.1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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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기자말]

▲ 제 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전당포> 제 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전당포>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1.
<전당포>
12세 관람가 / 9분 / 월드 프리미어
감독 : 장샨거 / 미국, 중국


전당포가 하나 있다. 어떤 물건을 맡기더라도 기한은 없이 표만 들고 오면 언제든지 돌려주는 전당포. 주인공인 리공 역시 이 전당포를 찾은 손님이다. 생활이 어려운 끝에 자신의 물건을 담보로 돈을 빌리러 온 것이다. 하지만 리공이 느끼기에 이 전당포, 분위기가 조금 묘하다. 이 곳을 찾는 고객들의 연령대가 서로 맞지 않아 보이기도 하고, 전당포를 찾기엔 절박함보다 여유로움이 넘쳐 보이는 이들도 있다. 아무튼, 자신과는 처지가 많이 달라 보인다는 뜻이다. 보통 이런 곳은 돈이 급하게 필요하거나 궁핍한 이들이 찾아오지 않나. 내놓을 것이라고는 오래된 핸드폰 하나와 출처를 알기 어려운 낡은 보석 하나뿐인 자신처럼 말이다.

생각보다 적은 금액을 제시 받고 낙담한 리공에게 전당포 주인은 시간을 팔지 않겠느냐는 다소 어이없는 제안을 한다. 하루의 시간을 담보로 하면 1000달러를 빌려주겠다는 주인. 처음에는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의 리공이지만, 잠깐의 어지러움 뒤에 주어지는 진짜 달러 다발에 홀린 듯이 계속해서 자신의 시간을 팔아 넘긴다. 담보로 지정한 시간은 이미 지나버린 후지만 기억은 하지 못하기에 크게 와 닿지 않는다. 하루, 1년, 10년, 그렇게 계속해서 자신의 시간을 팔아 치우는 리공과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그의 제안을 계속해서 수락하는 전당포 주인. 이 거래의 끝은 과연 어떻게 될까?

중국 출생인 장샨거 감독의 단편 영화 <전당포>는 교환과 거래의 속성으로부터 삶의 가장 기본적인 교훈을 이끌어내는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다. 상식적으로 교환이 불가능한 시간을 거래하자는 전당포 주인의 속을 알 수 없는 제안과 그 거래의 성공적 결과로 아주 쉽게 부를 획득할 수 있게 된 남자. 거래 과정에서 보여지는 두 사람의 태도와 영화의 결말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끝은 '세상에 공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격언과 '어떤 누구도 자신의 시간이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의 처음에서 늙은 남자와 젊은 여인의 재회와 두 사람이 누리고 있던 부유한 삶을 이 작품의 끝에서 다시 한 번 떠올려 보기를 바란다.
 

▲ 제 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배터리 수명> 제 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배터리 수명>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2.
<배터리 수명>
12세 관람가 / 6분 / 월드 프리미어
감독 : 휴고 카이저 / 네덜란드


한 여자가 지하철에 앉아 SNS를 한다. 게시물에 달리는 반응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자신도 다른 사람들의 사진에 좋아한다는 표시를 보내느라 정신이 없다. 역에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중에도 앞을 바라볼 시간이 없을 정도.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발을 딛고 있는 여기가 아니라 핸드폰 안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그렇게 미소가 지워질 줄 모르던 여자의 표정이 조금씩 딱딱해지기 시작한다. 어떤 문제가 생기기라도 한 모양. 그 순간, 화면 위에 빨간색 표시등이 깜박거리기 시작한다. 5%. 그녀의 핸드폰 배터리가 바닥이 난 것이다.

이 때부터 영화는 급박해지기 시작한다. 배터리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자 호흡까지 곤란해지며 힘들어 하는 여자. 이제 곧 꺼지기라도 할 듯이 핸드폰의 경고음은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하고 여자는 당장 충전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골목을 빠르게 뛰어다닌다. 영화 <인타임> 속 설정처럼 이 세상 속 모든 사람이 그런 상태인가 싶다가도 그런 그녀를 스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전부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지털 기기에 대한 높은 의존성과 중독. 그녀의 모습은 현재 젊은 세대들이 보이는 온라인에 대한 병적인 집착 증세를 대표한다.

네덜란드 감독의 손에서 만들어진 한국을 배경으로 한 한국인 배우 출연의 이 작품은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를 방문했던 감독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촬영된 영화다. 핸드폰의 배터리에 좌우되는 현대인들의 불안과 중독 증세를 다소 과장된 표현을 통해 재치 있게 표현함으로써 관객들이 이야기에 대한 흥미로움과 제기된 문제에 대한 고찰을 함께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다소 어둡고 사이킥한 분위기를 통해 영화의 바깥으로부터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게 만든 부분 역시 몰입을 유도한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핸드폰이 켜지자 눈을 뜨는 여자의 마지막 모습보다는 쓰러진 그녀를 발견한 뒤 굳이 이끌고 가 직접 충전을 시켜주는 행인의 모습이 훨씬 더 기억에 오래 남는데, 이 역시 현대 사회가 가진 단절성과 고립성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 제 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제 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3.
<Them>
전체 관람가 / 15분 / 코리안 프리미어
로빈 로흐만 / 독일, 아일랜드


회색 인간의 도시에 온 몸에 금을 칠 한 회색 인간이 등장한다. 남들과 달리 온 몸이 번쩍거리는 남자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연단에 올라 거만하고 위압적인 태도로 선동하기 시작한다. 금칠처럼 화려한 그의 언변에 하나 둘 동요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이내 곧 무언가 쌓아 올리기 위해 다른 회색 인간들이 동원되고 전에 없던 이상한 기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사람들의 머리에 금을 칠해주는 기계다.

그는 이 기계로 마을 사람들의 머리를 금색으로 칠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조금씩 두려움을 느끼던 사람들도 하나 둘 변해가는 이웃의 모습을 보면서 함께 동참하기 시작한다. 머리가 금색으로 바뀐 사람들은 기존의 회색 인간이던 때의 모습은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자신의 새 모습에 우쭐함을 느끼게 되고, 아직 회색 인간인 사람들을 조금씩 업신여기기 시작한다. 아니, 금색으로 칠한 사람들끼리 그룹을 형성하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폭력적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변화를 거부하고 회색 인간으로 남은 이들을 내쫓고 죽이기 시작한다.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다양한 영상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로빈 로흐만 감독의 단편 < Them >은 단순한 외형과 직관적인 움직임을 통해 최대한 간결한 방식으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이다. 특히, 이번 작품은 전체주의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 우유(愚喩)적으로 그려내며 외적인 구별이 사회의 분열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보여준다. 특히, 마을을 찾아온 금색 인간이 회색 인간들에게 자신과 유사한 금색을 칠하도록 선동하는 부분에서 자신과 완전히 같은 모습이 아닌, 차이를 두는 지점의 이야기는 – 온몸이 아닌 머리만 칠하도록 만든다. –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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