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극단적인 설정, 충격적 내용의 영화... 내겐 힐링이었던 이유

[리뷰] 내가 가장 사랑했던 '라스 폰 트리에'의 특별전을 기념하며...

20.07.04 12:37최종업데이트20.07.04 12:37
원고료로 응원

<님포매니악 볼륨2> 수입사:엣나인필름 ⓒ 이준한

 
어느새, 영화의 계절이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얼마 전 전주국제영화제가 무관객영화제로 막을 내린 상황에서 '영화의 계절'이라는 표현이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렇게 표현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 7월 9일 <여고괴담 리부트: 모교>로 개막하는 부천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와 소규모, 독립영화상영기관 역시 코로나 19 여파 속에서 영화과 관객의 만남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속에서도 영화관람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마음에서 이번 지면을 쓴다.

조금 지난 시점이지만, 앳나인필름이 6월 25일부터 7월 7일까지 '현실과 상상, 그 경계에서'라는 주제로 라스 폰 트리에 특별전을 열었다. 코로나 19로 제작된 영화들이 개봉을 미루던 상황이다. 스크린과 멀어졌던 관객들을 다시 영화관으로 오게 만드는 가장 저렴한 방법은 예전 영화의 재상영이다. 이미 상영되었던 영화들이라 광고비용이 크게 들지 않아 가성비가 좋다. 앞서 <해리포터>시리즈가 재상영된 바 있다.

라스 폰 트리에는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감독이다. 누군가는 그의 영화를 쓰레기라 하고, 누군가는 몽환적이라 한다. 가장 최근 영화 <살인마 잭의 집>을 두고 말이 많았다.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던 도중 20분 만에 한 관객이 밖으로 뛰쳐나가 토를 하며 욕을 했다던데. <쏘우> 시리즈가 이미 대중 사이에서 자리를 잡고 미카엘 하네케의 <퍼니 게임>이 개봉한지 10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자리를 뛰쳐나갈 정도로 영화가 추악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살인마 잭의 집>은 산 속에서 조용히 살다가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잔혹성과 마주하게 되는 한 지질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남을 속이는 방법은 허술하기 짝이 없고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 역시 허술하기 짝이 없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 사이코패스가 뒤늦게 발견한 자기정체성의 과신과 과대망상. <살인마 잭의 집>의 스토리텔링은 이를 장면의 누락없이 천천히 보여주면서 관객의 불쾌감을 유발했다.

사실 바로 그것이 라스 폰 트리에의 가장 큰 특징이다. '도그마 95' 때문이다. 그는 같은 덴마크 출신의 젊은 감독 3명과 함께 이 법칙을 내세웠다. 인위적인 효과가 가득한 편집을 싫어했으며 영화는 카메라 렌즈가 바라보는 현재 그 곳에서만 이루어져야 했다. 필름의 인위적 광학처리나 필터 역시 사용을 금지했다. 할리우드 영화제작 시스템에 대한 강한 반감이었다. 또한 컴퓨터 그래픽을 배제하고 반드시 로케이션을 통해 촬영을 진행함으로써 현장감과 현실감을 살린다. 그 속에서 자신의 <백치들>과 도그마 95의 동지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셀레브레이션>이 탄생했다.

그러나 그의 영화들이 모두 쓰레기 취급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 중 <멜랑꼴리아>는 그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영화다. 몽환적인 미장센과 <스파이더맨>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커스틴 던스트의 존재는 국내에서도 여러 덕후들을 탄생시켰다. <어둠 속의 댄서> 역시 애절한 스토리 속 청각적 리듬과 시각적 리듬의 교묘한 배합, 그리고 복고적 감성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물론 영화에 음악을 삽입하지 않는다는 '도그마 95' 법칙을 스스로 깨뜨렸다는 비판을 받긴 했지만.

라스 폰 트리에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수위의 농도다. 나는 <브레이킹 더 웨이브>, <안티크라이스트>, <도그빌>은 절대 가족과 함께 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몇 년 내내 가족과 거실에서 마주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노출과 강간, 신체훼손은 모자이크 처리되었음에도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안티크라이스트>에서 자신의 성기를 가위로 잘라낼 때 나는 진심으로 혀를 깨물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출들이 선정성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단이었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그는 언제나 폐소공포증, 고소공포증, 대인기피증을 앓았다. 그것이 너무 심해 자신의 영화가 개봉하는 영화제에 참석조차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 때문인지, 라스 폰 트리에는 언제나 그의 영화에서 자기파괴와 자력구제를 다루었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는 보수적인 스코틀랜드에서 남편의 소원을 위해 자신을 성적으로 희생하면서 신에게 정화를 요청하던 여성을 다루고, <안티크라이스트>에서는 남편과 섹스하던 중 추락사한 자신의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남편과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여성을 다루며, <도그빌>에서는 폐쇄적인 집단에 입성하고 학대당하며 종반에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집단 구성원을 학살하는 한 여성을 다룬다. 자기희생에 대한 자력구제의 희망이 자신의 선택에 있음을 강조하는 영화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는 <님포매니악>이다. 이 영화는 볼륨 1과 볼륨 2로 나뉘어져 있다.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잘 분리되어 있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볼륨 1은 어릴 때부터 성적 쾌락을 알아버린 '조'의 탐닉의 여정을 그린다. <드래곤볼>에서 주인공들이 드래곤볼을 찾으러 다니듯, '조'는 더 짜릿한 쾌락을 느끼기 위해 모험한다. 성관계를 갖는 장면이 국내판에서는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지만 사실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은 감독판을 봐도 별 문제가 없다. 어차피 특수효과와 카메라 구도를 이용한 페이크샷이다. 해당 섹스 장면은 성적 흥분이 일어나게끔 조작되지 않았다.

이후 '조'는 '제롬'이라는 멋진 남자와 결혼한다. '조'와 섹스를 나눈 '제롬'이 지쳐 침대에 쓰러져 잘 때, '조'는 홀로 일어나 부엌으로 향한다. 거기에 쭈구려 앉아 자위를 한다. 퍽퍽퍽, 자위를 하며 흐느낀다. 괴성을 지른다. 이제 쾌락을 느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동안 존재의 이유였던 중추신경의 자극이 끊어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볼륨 1이 끝난다.

볼륨 2는 늙어버린 '조'의 성적 쾌락 찾기 대탐험이 그려진다. 그야말로 대탐험이다. 길거리에서 담배피던 흑인 두명에게 돈을 지불하고 2대 1 플레이를 요구하고, 'K'라는 SM 전문가를 찾아가 치료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 헛수고다. 친구들이 떠나가고 '제롬'마저 떠나간 상황에서 그는 철저히 혼자다. 결국 딴 살림을 차린 '제롬'에게 분노의 원인을 돌린다. 왜 나를 버려 이 지경까지 만들었냐고 원망한다. 그러나 '제롬'의 새 아내에게 구타를 당하고 그의 분뇨를 뒤집어 쓴 채 산에서 굴러 떨어진다.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무언가를 잃은 사람의 절망과 절규는 이토록 구차하고 고되며 수치스러운 것이다.

 볼륨 1과 볼륨 2는 모두 주인공 '조'의 내레이션이 이끌어나간다. '조'는 자신의 인생사를 그를 숲속에서 구조하고 간호해준 셀리그먼에게 털어놓는다. 그가 발기부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셀리그먼조차 발기된 음경을 조에게 내밀며 "어차피 당신이라면 해줄거잖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총성이 울려퍼진다.

<님포매니악>은 2014년에 감독판으로 봤다.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돌려보지 않았지만 너무 강렬해서 잊을 수가 없다.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무언가를 잃은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님포매니악(Nymphomaniac)은 색정증이라는 의미다. 분별없이 이성을 그리워하고 따르며 무분별한 성행위를 일삼는 성욕 항진증이다. 타인에게 그것은 비정상으로 보일지 몰라도 '조'에게 그것이 전체이자 전부였다. 내게 정상인 것들이 타인에겐 비정상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런 일은 종종 발생한다.

자기파괴가 반복되고 자력구제가 실패할 때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모두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겐 연인일테고, 돈일테고, 명예일테고, 가족일테고, 일일테고, 어떠한 물건일 테다. 누군가에게는 <님포매니악>마저 쓰레기같고 더럽고 추악한 영화로 기억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자기파괴의 반복과 자력구제의 실패에 빠져있던 나에게 이 영화는 힐링영화였다.
덧붙이는 글 제가 글을 썼음에도 <멜랑콜리아>, <브레이킹 더 웨이브>< <어둠 속의 댄서>에 대한 해석력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누군가 지적해주시거나 조언해주시면 달게 조언받겠습니다. 언제까지나 제 글을 화장실에서 일 볼 때 읽을 거 없으면 읽는, 그런 글입니다. 이번 글도 그렇게 소비해주세요. 여러분들의 소중한 몇 분을 저에게 투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글쓰는 사람입니다. 주로 영화글을 쓰고, 가끔 기사를 씁니다.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