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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게 늙을 권리마저 박탈당한 그녀의 삶

[리뷰] 넷플릭스 영화 <죽여주는 여자>

20.07.01 13:43최종업데이트20.07.0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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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 종로의 공원은 오늘도 오갈 데 없는 처지의 노인들로 넘쳐난다. 때맞춰 출퇴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유쾌하게 놀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 마음을 터 넣고 이야기를 나눌만한 친구나 가족이 없는 외로운 노인들이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고 있는 그곳에, 그 마음의 허술한 틈을 노리고 슬그머니 말을 걸어오는 여자 '소영'이 있다.
 
소영은 일명 '바카스 할머니'라 불리는 노인 대상 성매매 여성이다. 남들 눈에는 살 만큼 살았다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기에 생에 대한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노인들의 허전한 마음 한구석을 비집고 들어가 소영은 오늘도 부지런히 묻는다.

"나랑 연애 할래요?" 
 

▲ 죽여주는 여자 포스터 이 영화에서 배우 윤여정은 연기 고수에서 나아가 '장인'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호연을 펼친다. ⓒ 조하나

 
고령화 시대의 어두운 단면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2017년 제26회 부일 영화제에서 배우 윤여정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고, 메가폰을 잡은 이재용 감독은 이 영화로 제20회 판타지아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검증받은 탄탄한 각본과 일흔이 넘은 나이로 쉬지 않고 한 길을 향해 달려온, 이제는 '장인'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릴 법한 연기 고수가 함께한 결과,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한 늙은 창녀의 삶을 담담히 따라가는 내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젊은 시절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팔며 소위 '양공주'라 불리던 소영은 세월이 흘러, 이제는 자신만의 노하우로 공원 일대 단골손님 사이에서 '죽여주는 여자'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바카스 할머니'가 됐다. 
 
돌봐줄 가족 한 명 없이 하루의 밥값을 벌기 위해 공원이나 등산로를 오가며 직접 호객행위를 하고 여관비를 포함한 단돈 삼만 원에 몸을 파는 처지의 소영은 오늘날, 품위 있게 늙어 갈 권리마저 박탈당한 고령화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대변하는 이름이다.
 
영화는 성병에 걸린 소영이 병원을 찾았다가 우연히 엄마를 따라온 필리핀 코피노 소년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생부이면서 그 병원 의사이기도 한 남자에게 양육비를 요구하지만, 남자는 이를 거절한다. 홧김에 남자를 가위로 찌른 여자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고, 병원 바깥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에게 도망치라고 절규한다.
 
소영은, 엄마가 시키는 대로 냅다 도망쳐 어두운 골목에 숨어 있던 아이(민호)를 찾아내고, 무슨 이유에서 인지 민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서 보살피기로 마음먹는다. 소영이 짧은 영어와 손짓을 섞어 아이에게 말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다. 많이 먹으라는 것. 배고프지 않게, 앞으로의 삶이 허기질 테니 지금 네 뱃속만은 든든할 수 있도록.
 
그러나 소영의 집은 아이에게 결코 안전 하거나 아늑한 곳이 못 된다. 집주인인 '티나'는 밤무대 가수인 트랜스 젠더이고, 앞집에 세 들어 사는 총각 '도훈'은 한쪽 다리가 뭉텅 잘려나가 의족을 달고 사는 처지로 집안에 틀어박혀 성인용 피규어를 만들며 겨우 밥벌이를 하고 있다. 이쯤 되면 영화가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한층 더 분명해진다.
 
소외당한 이들의 아픔은 그 누구도 선뜻 위로해 주지 않는다는 것. 그저 같은 편인 그들끼리, 약하고 부서지기 쉽고, 보통의 선량한 사람들에 의해서 경멸의 대상으로 낙인찍혀 버리는 그들끼리 서로를 보듬고 다독이는 수밖에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티나는 틈만 나면 자신이 정말 여자처럼 보이느냐고 묻고, 도훈은 걸핏하면 의족을 벗으며 몸이 이러니 살기가 고달프다고 투덜거린다. 구치소에 갇힌 민호의 엄마는 아이를 생면부지 소영에게 부탁하며 어설픈 한국말로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그리고 소영은 그 모두를 끌어안는다. 그것이 소영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선인 것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인 소영은 일을 쉴 수가 없기에 급기야 아이를 데리고 함께 공원을 헤매며 손님을 물색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손님을 가장해서 소영을 찾아온, 바카스 할머니의 삶을 영화로 찍고 싶다는 젊은 남자를 만난다. 소영이 진실을 숨긴 채, 남자에게 가볍게 던지는 농담 한마디가 어쩐지 내 가슴 한편에 찡하게 와 닿았다.
 
"야! 돈 되는 거 해. 늙어서 나처럼 개고생하지 말고."
 
 

▲ 나랑 연애할래요? 공원에서 바카스를 들이밀며 "나랑 연애할래요?" 묻는 일명 '바카스 할머니' 역의 윤여정과 그 뒤를 홀린 듯 따라가는 손님. ⓒ 조하나

 
소영에게 자신을 죽여달라 간청하는 노인

영화는 소영이 한때 자신의 단골손님이었던 노인이 쓰러져서 요양원에 누워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병든 육체에 대한 수치심으로 삶의 의지를 잃은 지 오래지만, 이제 자신의 손으로는 죽음조차 마음대로 이루어낼 수 없는 노인은 소영에게 자신을 죽여달라 간청한다.
 
"사는 게, 창피해. 죽고 싶어."
 
영화를 보는 내내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세상에 불필요한 짐짝처럼 취급받는 노인의 서글픈 마지막이 섬뜩하게 다가온 이유는 그것이 나의,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당신의 멀지 않은 어느 날의 이야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는 소영과 다르게, 혹은 병상에서 자신을 죽여달라 간청하는 노인과도 전혀 무관하게, 정말 인간답고 품위 있게 그렇게 늙어 갈 수 있을까?
 
'죽여주는 여자'는 관객에게 이제부터라도 조금 더 '늙음'에 대해 관대해 질 것을 요구하는 영화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죄다 결국 생의 끝자락을 향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외면하거나 경멸하기엔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틀림없이 언젠가는 늙는다. 그것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소영의 가벼운 농담 뒤에 숨겨진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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