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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변화? 피해자 다 죽어가", '성범죄' 취재 PD의 일침

[이영광의 '온에어' 39] < PD수첩 > '판사님은 관대하다-성범죄의 무게' 취재한 성기연 PD

20.06.30 16:49최종업데이트20.06.3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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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한 장면 ⓒ MBC

 
최근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란에선 성범죄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에 실망감을 드러내는 내용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상황 등 범죄 사실 등에비춰볼 때 형량이 터무니 없이 낮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하물며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많은 이들은 '이런 판결이 어떻게 나올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 < PD수첩 >이 나섰다.

지난 23일 방송된 < PD 수첩 > '판사님은 관대하다-성범죄의 무게 편'은 고 구하라씨 사건과 배우 강지환씨 성폭행 사건 등을 통해 판사들의 성인지 감수성 문제를 다루었다. 취재 뒷이야기가 궁금해 24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이를 취재하고 연출한 성기연 PD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 지난 23일 방송된 < PD수첩 > '판사님은 관대하다-성범죄의 무게'편을 취재 연출 하셨는데 소회가 궁금합니다. 
"잘했어야 하는데  잘 못해서 미련이 엄청 많이 남아요. 모든 PD가 다 그렇겠지만 유난히 아쉬움이 많이 있습니다."

- 어떤 점이 가장 아쉽나요?
"방송 시간에 비해 너무 많은 내용을 말하려고 하다 보니 깊이가 얕았던 점이 아쉽습니다. 평소 성범죄 판결 뉴스를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낮은 판결이 나오지?'란 의문이 들었고, 그래서 시작했어요. 실제로 취재를 하다 보니 이유가 생각보다 여러 가지였던 거죠. 그중에 '양형'과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부분을 다루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각각 한 꼭지로 다루기에는 너무 큰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 양형 부분에 집중해야 했을까요.
"저는 '양형'과 '성인지 감수성'이 서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성범죄라는 게 다른 범죄와 달라서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잖아요. 재판에 오는 많은 경우가 합의 하에 한 성관계인지 아닌지, 만취였는지 아닌지, 서로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가지고 다툽니다. 그럼 판사들이 듣고 진술의 구체성, 일관성, 신뢰성 여부 등으로 유무죄 여부를 판단하게 됩니다.

다른 범죄에 비해서 유독 판사의 주관이 크게 작용하는 게 성범죄라고 하더라고요. 유무죄뿐 아니라 감형에 대한 판단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요? 동일 범죄를 두고 판사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나쁜 놈이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피해자 고통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감형을 해 줬겠죠. 어쨌든 한 주제를 더 깊게 팠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성범죄 양형 기준에 대한 지적이 줄곧 이어지고 있어요.
"N번방 사태가 그 문제를 제대로 보여줬죠. 그래서 급하게 법도 많이 개정되고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도 양형기준을 새로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전문가들은 '법은 많이 올라왔다. 법도 법이지만 가장 결정적으로는 판사들의 의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면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제작에 대한 법정형은 5년~무기징역입니다. 그런데 지난 3월 668명 판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211명(31.6%)이 3년 형이 가장 적절하다고 답했다고 해요. 법정형보다도 낮은 셈인데요. 그래서 기존 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선고했다면 이런 사태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비난이 많았습니다."

- 우리나라 법원에서 판례가 갖는 의미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요. 성범죄 관련 판례들은 어떤가요?
"저희가 만났던 대부분의 전문가는 한결같이 '판사들은 튀는 판례를 싫어한다'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씀이죠. 법은 기본적으로 일관성과 형평성이 중요하잖아요. 판사에 따라 판결이 달리 나오면 안 되니까요. 또 작년에 1년 형 나왔던 게 갑자기 올해 3년 형... 이런 식으로 올라가는 것도 상식적으로 안 맞죠. 그래서 판사님들이 판례들을 엄청 보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성범죄에 대한 이 사회의 의식이 지난 10년간 정말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잖아요. 바깥에서 우리가 보는 거랑 이분들이 보시는 과거의 판례랑 거리가 있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기준' 자체가 낮으니까 계속 바깥세상보다 낮은 판결이 나오는 것 같아요.

판례에 '성 인지 감수성'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게 2018년에 대학교수 성추행 사건 때였어요. 나름 획기적인 판례고, 이게 대법원 판례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재인용 되겠죠. 지금은 어찌 보면 과도기 같고요.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성기연 MBC PD ⓒ 이영광

 
- 앞서 성범죄 형량에 의문을 갖다가 이 취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그 계기가 뭔지 알 수 있을까요?
"평소에도 < PD수첩 >에서 성범죄를 많이 다뤄서 법 감정과 다른 판결에 의문이 있었는데요. 마침 저희 방송 촬영 기간 내에 강지환씨하고 구하라씨 2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강지환씨 같은 경우는 부적절한 '합의=집행유예'에 대한 예가 되는 것 같았고, 구하라씨 같은 경우는 굉장히 종합판 같은 거였어요."

- 종합판이요?
"성인지 감수성 종합판이요. 논란이 됐던 요소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실은 집행유예 몇 년 나온 걸 (가지고 그게) 높은지 낮은지 저희가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근데 불법 촬영 무죄 부분이 있잖아요. 본인에게 허락받지 않고 찍은 거라는 건 인정하면서도 판결을 할 때 무죄로든 이유가 6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먼저 좋아한 점, 먼저 동거하자고 한 점 이런 것들이 들어있는 거예요. 그 요소를 판결의 근거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무죄 이유에 판시할 이유가 없잖아요."

- 먼저 좋아했다는 점을 촬영 정당성의 근거로 들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리고 구하라씨가 분명히 본인은 수치스러움을 느꼈고 바로 지우지 못한 사정이 있었다고 말했단 말이에요. 이분은 연예인이잖아요. 이게 일부라도 밖에 나가는 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고 재판장에서도 그렇게 말했는데 판사님께서 구하라씨의 진술은 인정하지 않고 그렇게 판결하신 게 하나의 쟁점이었죠.

그리고 선고할 때 기자들이 다 있잖아요. 비공개 법정이라지만 출입 기자들은 있잖아요. 근데 거기서 판사님이 만남 계기, 동거 사실, 성관계 관련 내용 등 엄청 자세한 개인적인 부분을 다 읽으셨어요. 그러면 사생활이 다 노출되는 거잖아요. 어느 정도 공개할지 판사님 재량이라던데, 이 부분도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비판이 있었죠."

- 합의하면 감형되기 때문에 가해자는 합의하려고 노력한다는 내용이 주요하게 다뤄졌어요. 
"사실 합의가 나쁘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합의에도 분명히 좋은 기능도 있습니다. 피해에 대한 빠른 회복을 돕는다는 것일 텐데요. 그런데 성범죄는 다른 범죄와 달리 피해의 원상복구라는 의미가 다르다고 합니다. 예컨대 폭행과 비교하면 상처는 아물잖아요. 그럼 어느 정도 피해 복구라는 게 보이는 거예요. 금전으로 100만 원 사기를 당했으면 '아 미안해 120만 원 돌려줄게'라면 금전적인 피해복구가 돼요. 근데 성범죄는 피해 복구라는 게 다른 범죄와 다르죠. 평생 갈 수도 있고, 그 트라우마가 언제 어떻게 완치될지 알겠어요.

제가 '합의'에 대해 문제제기했던 부분은 기계적으로 '합의=집행유예' 해주는 걸 말하는 거였습니다. 예를 들어 김준기 회장은 가사 도우미 13회 폭행 추행, 비서 29회 추행하고 해외로 도피했어요. 처음에는 죄를 부인하면서 '나랑 연인 같은 사람이었는데 돈 달라고 저러는 거다'라고 했고 그 다음에 미국으로 도망가 2년 살면서 인터폴 수배 되고 들어오자마자 바로 구속된 거예요. 일반인 관점에서 봤을 때 죄가 엄청난데 합의했으니까 집행유예인 거예요. 오선희 변호사님 인터뷰에 나온 부분인데, 법원은 대신 돈 받아주는 기관 아니잖아요. 형벌이라는 건 우리 보통의 가치관을 반영해서 우리 사회에서 하지 말아야 될 걸 제재해야 하는 건데, '진짜 심한 죄를 지었어도 돈 주면 나올 수 있다?'는 건 안 된다는 거죠.

게다가 성범죄에 대한 국민 인식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 범죄의 죄질, 피해자들의 피해 정도와 상관없이 '합의=집행유예' 이렇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성범죄 케이스들 보면 너무 많더라고요. 윤간하거나 협박해서 성관계 영상을 찍고 유포까지 했는데 합의하면 집행유예 나오는 케이스 등등 너무 많았어요."

- 취재했지만 방송에 담지 못한 것 중 소개할 만한 게 있나요. 
"저는 그런 생각도 좀 들었어요. 판사는 누군가의 권리,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엄청 큰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법관은 흔히 공부를 제일 많이, 제일 잘하신 분이 하는 거였고, 이 사회에서 무조건적인 존경을 받아왔었죠.

그런데 이번 취재 때 느낀 건, 사람들이 판사들에 대해 말을 못 한다는 점이었어요. 제가 구하라씨 재판을 취재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판사에 대한 인터뷰를 받을 수가 없었던 거였어요. 법조계 전문가분들께서 카메라 밖에서는 문제점이라든가 의견을 얘기해 주시지만 인터뷰는 대부분 거절하셨어요. 모든 분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으신 거예요. 하지만 인터뷰 못 받아낸 개인적 아쉬움을 넘어서, 이렇게 판결에 대해 우려와 문제 제기도 할 수도 없는 분위기가 과연 옳은가 싶었어요."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을 것 같아요.
"세상이 바뀌고 있잖아요. 특히 판사 교체 청와대 국민청원이 생겼다는 게 너무 놀라웠고, 동의하는 청원 수가 하루 만에 30만 명이 넘고 최종 46만 명 넘었다는 사실도 놀라웠어요. 사실 이것이 무조건적 옳으냐면 그건 아니겠죠. 왜냐면 판사들이 여론에 휩쓸리면 그게 옳겠어요? 어쨌든 이제 지켜보는 눈과 말하는 입이 많아졌다는 거죠.
요 몇 주간 진행되는 판결들 보면 확 달라진 점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재판 분위기나 판결도 이전과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지금은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과도기라고 몇 번 말씀드렸는데요. 그렇게 천천히 변화가 오는 사이에 피해자들이 다 죽어가니, 이게 빨리 변화돼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성범죄에 있어서 사법부 불신이 좀 사라질 것 같아요."

- 시청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많이 바뀌었다고,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진 거라고 들었습니다. 아직 멀었다고 봅니다. 10세 아이가 반항이 크지 않아서 강간이 아니라고 했던 판결이나 감자탕집에서 고기를 남자 접시에 덜어준 행동 등이 성관계에 대한 동의로 오해할 수 있다는 판결은 불과 작년에 내려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올해에도 전북의대생 성폭행 집행유예 (2심에선 법정구속), 강간 상황극 사건에서 강간한 사람 무죄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판결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몰랐을 땐 안 보이던 것들이 알면 더 보인다고 하잖아요? 지금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이런 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이 국민 최후의 보루'라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사법부가 국민 법 감정과 괴리가 없는 판결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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