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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칠순잔치에 갔는데, 아빠가 치매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신작 영화 리뷰] <조금씩, 천천히 안녕>

20.06.23 14:32최종업데이트20.06.2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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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 포스터. ⓒ ?디스테이션

 
'가족영화'의 전형성을 탈피하는 건 정말 어렵다. 특히, 가족의 중요성이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는 동양에선 더욱 그렇다. 공통적으로, 가족구성원 중 한 명의 큰 일로 인해 가족이 다시 모이지만 이런저런 우여곡절 생기며 결국 남는 건 가족밖에 없다는 식으로 끝난다. 다만, 한중일로 대표되는 동양의 가족영화는 각국마다 특징이 있다. 결합 상태에서의 해체 후 재결합, 해체 상태에서의 결합, 해체와 결합이라는 상태의 고찰 등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은 너무 신파적이고, 일본은 너무 정석적이며, 중국이나 대만이 가장 볼 만하다. 

그럼에도,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동양적 가족영화의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뭐라 규정짓기 힘든, 굳이 말하자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식 가족영화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여기, '포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즈'로 불리는 나카노 료타 감독이 있다. 2013년 <캡처링 대디>, 2016년 <행복 목욕탕>, 그리고 2019년 <조금씩, 천천히 안녕>의 세 작품으로 말이다. 단 세 작품뿐이지만, 연출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 

어릴 때 집을 떠난 아빠가 병에 걸려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로부터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오라는 미션을 받은 자매의 성장 여정기 <캡처링 대디>, 아내가 시한부 인생이 되어 가출한 남편한테 가업인 목욕탕을 잇게 하고 딸은 홀로 서게 하며 비밀까지 밝히며 고구분투를 다룬 <행복 목욕탕>. '죽음' '가족' '막장' 키워드가 눈에 띈다. <조금씩, 천천히 안녕>도 비슷한 맥락일까. 

아버지와의 마지막을 조금씩, 천천히 준비하다

아버지의 70세 생일에 맞춰 어머니는 두 딸 마리와 후미를 부른다. 마리는 연구원 남편, 아들과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고 후미는 아버지의 바람이었던 선생님을 뒤로 하고 음식 장사를 하고자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두 딸이 집에 와서 보니 아버지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어머니의 말을 들어 보니, '치매'라는 것이었다.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교장 선생님 출신의 아버지는, 정신이 오가는 상황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뇌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퇴화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마리는 아들과 함께 잠시나마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고향을 찾고 후미는 푸드트럭 장사를 시작했지만 장사가 잘되지 않아 속상한 찰나에 뜻밖에도 아버지께 칭찬을 받는다. 

속절없이 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버지가 무너지는 속도도 가파른 것이다. 가족들은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와중에도 아버지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함께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점점 더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 물론 스스로의 몸도 가누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도 가족들은, 천천히나마 단단하게 아버지와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가족의 소중함과 위대함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은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치매' 즉 알츠하이머병의 과정과 깊은 연관이 있다. 급성으로 병이 진행되거나 한순간에 절명하여 제대로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헤어지는 게 아니라, 인지하듯 하지 않듯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며 천천히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얼핏 괜찮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상 그만큼 무시무시하고 안타까운 게 아니다. 

하여, 이 영화의 관건은 무시무시하고 안타깝기까지 한 치매의 과정 그리고 치매와의 전쟁 양상을 얼마나 유려하게 풀어내는가에 있겠다. 구성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좋지 않게 변해가는 아버지의 상태와 좋게 변해가는 두 딸의 상태가 묘하게 대조되기 때문이다. 그 경계에서, 대조가 대조로 끝나지 않고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테다. 자칫하면, 전형적인 일본 가족영화로만 끝나 버릴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었을 텐데, 영화에서 최소한의 전형성은 가져가되 중심을 잡으려 한 티가 역력하다. 좋게만 변해가야 할 두 딸이, 오히려 좋지 않게만 변해가는 아버지한테 도움을 받는 또는 도움을 받으려는 구도를 형성한 것이다. 아버지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된다. 비단, 그건 아버지뿐만 아니겠지만 말이다. 가족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다. 

각자의 삶을 헤쳐나가는 가족구성원

이 영화가 좋았던 건, 가족구성원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보여 주려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가족구성원들은 엄연히 한 개인으로 각각의 삶을 살아가기에, 가족이 가장 중요한 일부분임엔 분명하겠지만 전부는 아닌 것이다. 두 딸 마리와 후미는, 녹록치 않지만 최선을 다해 각자의 삶을 헤쳐나간다. 아버지의 옆은 어머니가 단단하게 지키고 있다. 

각자의 삶에서 힘들어 하고 상처받고 외로워진 영혼을 가족의 품에서 위로받고 치유받고 힘을 얻는 모습이, 오버스럽지 않기에 오히려 굉장히 와닿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극도의 감정이입이 가능하게 한다. 한편으론, 이 시대에 실제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물론 그걸 큰 위화감 없이 그려낸 것만으로도 영화를 칭찬하기에 충분하다. 

가족의 해체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선 가족이 아니라 공동체의 와해와 붕괴가 현실화될 위기이다. 말뿐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연대'의 목소리와 가깝다.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는 느낌으로. 그 시작은 '가족'일 수밖에 없다. 멀리 돌고 돌아,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연대가 시작되려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와 <프리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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