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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함이 주변인도 바꿔" '야구소녀' 이주영의 당부

[인터뷰] <야구소녀>가 된 배우 이주영...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않길"

20.06.17 10:55최종업데이트20.06.1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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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야구소녀>에서 주수인 역을 맡은 배우 이주영. ⓒ 싸이더스

 
어떤 도전이든 최초는 위대한 법이다. 그것도 온갖 역경을 이겨낸 경우라면 더더욱. 만약 한국 프로야구계에 최초의 여성 선수가 등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화 <야구소녀>는 어쩌면 아주 간단한 상상에서 시작됐을지 모른다. 

영화는 리틀야구단 경험 이후 공을 놓지 않은, 남자 고등학교 특채로 산전수전 다 겪은 여성 고교 야구 선수 주수인의 프로 데뷔 도전기를 다루고 있다. 수인 역할은 배우 이주영이 맡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인 최윤태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하다. 

여성 차별, 그 너머

차별과 편견을 견딘 여성이 주인공이기에 <야구소녀>는 우선 여성 서사 중심의 영화로 이해할 수 있다. 주수인은 남고에 진학한 1호 여자 야구선수, 프로 트라이아웃을 준비하며 1호 프로야구선수를 노리는 선구자적 성격이 다분한 인물이다. 다만 이주영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큰 틀에서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로 해석하고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희망찬 기운까진 아니더라도 어떤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영화라 생각했다. 현실적인 부분까지 잘 담겨 있어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을 것 같았고, 표면적으로도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냥 판타지스러운 설정은 아니었다. 프로 선수는 여전히 없지만 국내 여자 야구선수 1호인 안향미, 최연소 여자 야구 국가대표로 뛴 김라경, 그리고 일본에서 여성 최초로 프로 무대에 진출한 요시다 에리 등 현실에선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을 향해 도전했고, 또 도전 중인 이들이 존재한다. 이주영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이런 현실성에 주수인 캐릭터를 덧대며 나름의 생동감을 찾아 나갔다.

"요시다 에리는 전 세계 통틀어 너클볼로 프로에 진출한 최초의 선수로 알고 있다. 너무도 고맙게 주수인의 현실 속 모습이었지. 여러 선수들 인터뷰를 찾아가며 그 분들의 삶을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어떻게 야구를 하고 있고, 무엇을 해나가고 싶은지를 들어봤던 것 같다. 물론 영화 속 주수인은 최초라는 타이틀이 있고 선구자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런 평가를 수인 스스로가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건 예측할 수 없는 거고, 바라는 바도 아니었겠지. 거창한 선구자까진 아니더라도 그냥 함께 포문을 여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저 역시 수인을 연기할 때 전율을 느끼곤 했다."

영화 <야구소녀>의 한 장면. ⓒ 싸이더스

 
수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체육에 자신 있다지만 야구 자체는 이주영에겐 생소한 스포츠였다. 기본 규칙부터 공부해나갔고, 촬영 전까지 주어진 1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매일 서너 시간씩 투구 연습을 했다고 한다. "몸을 특출나게 잘 쓰는 건 아니지만 몸을 쓰는 데에 두려움이 없는 것 같다"며 이주영은 주수인을 품고 받아들여 갔던 과정을 전했다.

"영화 속에서 수인은 옷 갈아입을 장소가 없어서 라커룸을 자기 공간으로 만들어놓고 사용하잖나. 저도 고교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그랬는데 남자 선수들과 운동하면 정말 그럴 수밖에 없더라. 잠깐 익혔던 제가 그랬는데 십수 년간 운동했던 선수라면 얼마나 소외감을 느꼈을까.

프로에 가겠다는 목표 이전에 소외돼 있다는 것 자체로 어떤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실제로 저도 훈련하면서 다른 선수들을 보며 어떻게 저만큼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고, 승부욕도 느꼈던 것 같다. 물론 그분들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지만, 조금이라도 비슷해지고 싶다.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연습하곤 했다." 


학교에서 분투하는 수인과 함께 영화는 가족 내에서 아빠와 엄마, 동생 사이에 있는 수인을 꽤 비중 있게 묘사한다. 프로야구 무대를 끝내 밟지 못한 채 공인중개사 시험을 전전긍긍하는 아빠(송영규)는 수인을 심적으로 지지하지만 경제 활동을 좀처럼 하지 못한다. 살림을 책임지며 억척스럽게 가정을 끌어온 엄마(염혜란)는 매번 수인을 나무라며 포기하라고 질타한다. 이런 환경에서 비뚤어질 만도 한데 수인은 위태롭게 중심을 잡으며 엄마와 아빠 모두를 이해해내려 한다.
 

영화 <야구소녀>의 한 장면. ⓒ 싸이더스

 
"엄마가 수인을 응원해주고 아빠가 현실적으로 접근하면 어떨지 현장에서 얘기하기도 했다. 결국 지금의 설정을 선택했는데, 감독님과 제가 주안점을 둔 게 엄마와 아빠 모두 수인을 향한 애정에서 어떤 갈등 양상이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엄마가 수인을 만류하는 모습에서 '같은 여자가 수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라고 보지 않으셨으면 한다. 단순하게 부딪히는 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애정이 기반이니 말이다. 

엄마, 아빠 외에도 영화에 다양한 인물이 나온다. 프로 무대에 먼저 진출한 정호(곽동연)와 수인의 친구 방글이(주해은) 등. 이 영화는 수인에 대입해도, 다른 인물에 대입해서 봐도 공감할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 주수인이 중심을 잡고 있지만, 다른 캐릭터와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프로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한문 선생님을 하게 된 김 선생님(이채은)이라든지. 그 사람들이 모두 수인의 현재이자 과거 혹은 미래기도 하거든. 모두가 그 나이대에 어떤 꿈을 꾸면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배우' 이주영과 주수인 사이에서

이주영에게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혹은 대사를 물었다. 수인의 뚝심과 심성을 나타내는 여러 명대사가 있는데 그중 이주영은 수인이 130km의 강속구를 던질 줄 안다며 치켜세우는 정호에게 '130 던지는 게 대단한 거냐? 왜 대단한 거냐' 되묻는 말을 꼽았다.  

"그 지점에서 수인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여자치고 빠른 구속인 130km가 중요한 게 아니었거든. 150은 던져야 프로에 수월하게 갈 수 있는 현실이었으니. 정호 딴엔 칭찬이었겠지만 수인 입장에선 프로에 가냐 마냐 뿐이었기에 그의 단단함을 보여주는 대사였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전 수인을 맡으면서 저와 공통점보다는 내가 수인의 상황이었다면 저렇게 해낼 수 있을까를 더 많이 생각했다. 그의 힘과 에너지가 저와 비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제가 그 나이 때 겪지 못했던 걸 (수인은) 10대 후반에 겪고 있고, 엄마가 원하는 걸 해내면서도 동시에 자기 길을 가려는 모습이 있다.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무모함이 결국 주위 사람들까지 변하게 한다.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거지."


외부의 압력에 반항하고 튕겨 나가는 게 아닌 속으로 쌓아두고 그걸 자신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모습. 이주영이 이해한 수인의 정체성이었다. 영화 속 수인과 달리 그는 대학에 진학한 뒤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프로야구선수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던 수인을 빗대 이주영에게 물었다. "뭔가 거창한 미래를 그려본 적은 없는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 연기가 좋아서 하고 있다. 지금도 너무 좋고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수인도 계속 야구를 하고 싶어 했을 뿐인 것 같고. 10년, 15년 뒤 다른 게 하고 싶어지면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때마다 제 욕구에 맞게 제가 즐거운 걸 하면서 살아가려 한다. 10대 때엔 수인과 달리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매년 장래희망을 써내라 할 때 대부분 지어냈다(웃음). 20대 들어 연기를 만난 건 우연히 들어맞은 좋은 타이밍이었던 것 같다.

결국 내 자신의 한계만 정해놓지 않으면 모든 걸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제가 출연해온 작품을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과거에 제가 이룬 것, 앞으로 할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중요하다. 조금씩 배우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날 부끄럽게 여기는 일을 미리 방지하자는 거랄까."

 
내면의 탄탄함, 그리고 이주영을 감싸고 있는 좋은 사람들이 건강한 삶의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다. 2020년, 그렇게 이주영은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내고 있었다. 
 

영화 <야구소녀>에서 주수인 역을 맡은 배우 이주영. ⓒ 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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