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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버티면서..." 데뷔 33년 차 박미선의 '별난' 생존법

[리뷰] SBS <선미네 비디오가게> 박미선 편

20.06.08 15:33최종업데이트20.06.0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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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방송한 SBS ⓒ SBS

 
"그건 말이죠. 여자를 무시하는 데서 시작한 선입견이라고요. 여자라고 왜 순발력이 떨어지고 왜 운동신경이 떨어집니까? 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습니다." (박미선) 

올해 데뷔 33년을 맞은 개그우먼 박미선의 신인시절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별난 여자'였다. "여자가 감히?"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1980년대 말, 비교적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도 거슬림 없이 다가왔던 박미선은 예나 지금이나 자기 할 말 다하는 '별난 여자' 였다. 

지난 7일 방영한 SBS <SBS 스페셜-선미네 비디오가게>(이하 <선미네 비디오가게>)의 첫번째 게스트는 여성 방송인으로서 33년을 꿋꿋이 버텨온 박미선이었다. 다큐멘터리와 토크쇼가 결합한 '아카이브 휴먼 다큐 토크쇼'를 지향하는 <선미네 비디오가게>는 아이돌그룹에 이어 솔로까지 연이어 성공을 거둔 가수 선미가 진행을 맡았다. 

'감탄고토(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는 말이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쓰고 버리고'가 일상인 방송국 세계에서 아득바득 살아남은 여성 방송인과 앞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싶은 여성 아티스트가 만나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지 모르겠지만, 박미선은 떡잎부터 남달랐다. 데뷔 때부터 주목받은 박미선은 신인 개그우먼임에도 불구하고 굵직한 방송을 꿰차기 시작했다. 당대 주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남성 중심적 사회를 향해 일갈했던 박미선은 여러모로 돋보일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요새는 여성들의 강한 개성이 인정받는 세상이지만, (과거 박미선을 볼 때) 아주 놀라웠죠.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죠." (양희은) 

젊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에게 '언니'로 추앙받는 이유
 

지난 7일 방송한 SBS ⓒ SBS

 
신인 시절 남성 방송인의 전유물이라고 과언이 아니었던 개그 토크쇼에서, 꽃받침 역할로 기용된 박미선은 그녀를 섭외한 남성 제작진들의 바람처럼 꽃으로만 머물지 않았다.

가장 단적인 사례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운동신경이 떨어진다"는 남성 진행자의 성차별적인 발언에, "여자를 무시하는 데서 시작한 선입견"이라고 응수한 박미선은 이후 특유의 기지를 발휘하여 생존에는 운동신경보다 두뇌회전이 더 중요하다는 통쾌한 복수를 감행한다. 

지금도 TV, 유튜브 등을 틀면 은밀히 남아있는 성차별적인 발언, 선입견에 바로 일침을 가할 수 있는 여성 방송인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박미선이 50대 중반 나이임에도 불구, 20, 30대 젊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에게 '언니'로 추앙받을 수 있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는 '별난 여자' 캐릭터를 줄곧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박미선의 방송 인생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별난 여자 박미선에게도 당대 여성에게 줄기차게 강요되어 왔던 결혼, 출산, 육아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90년대 초 여성 개그우먼으로 주목받았던 박미선에게 쏟아지는 질문은 향후 방송인으로서 미래, 비전이 아닌 결혼 계획이었고, 동료 개그맨 이봉원과의 결혼 이후 박미선에게 요구된 대답 또한 여성으로서 가정에 충실하는 삶이었다. 

결혼 초기만 해도 기혼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은퇴라는 사회적 통념에 따라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이 급격히 줄었던 박미선은 어느 순간 살아남기 위해 어떤 역할이건 가리지 않고 맡았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박미선을 버티게 한 원동력이 됐다. 

<선미네 비디오가게>는 박미선에게 끊임없이 찾아온 부침과 위기를 두고 시대의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흐름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이름이 잊혀진다 싶을 때마다, <순풍산부인과>, <세바퀴>, <해피투게더>로 녹슬지 않은 저력과 존재감을 과시 했던 여성 방송인이 개편 때마다 살아남지 못한 것은 그녀의 능력 부족으로 치환될 수 없다.
 

지난 7일 방송한 SBS ⓒ SBS

 

지난 7일 방송한 SBS ⓒ SBS

 
<선미네 비디오가게-박미선 편>에도 드러난 것처럼, 박미선은 누구보다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방송인이었고, 연예계에서 무려 33년 이상 버티며 여성 엔터테이너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박미선은 이제야 비로소 자기가 원하는대로 판을 깔 수 있고 마음껏 놀 수 있는 자신만의 채널 '미선 임파서블'을 가졌다. 박미선은 후배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강한 사람이 아닐까?" 

숱한 위기가 찾아와도 굴러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하에 버티며 안간힘을 써 왔던 박미선처럼 그녀의 뒤를 이은 또 다른 별난 여자들을 오래오래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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