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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연애? 이 드라마는 '틀렸다'

[리뷰] 상담자 윤리에 비춰본 KBS 드라마 <영혼수선공>

20.06.09 16:50최종업데이트20.06.0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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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연구된 모든 심리학 이론들에서 얻어낸 답은 매우 자명하다. 그건 바로 '관계'다. 상담심리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심리상담 현장에서 상담자와 내담자의 치료적 관계가 발휘하는 힘을 종종 경험하곤 한다. 

이런 내게 KBS 2TV 드라마 <영혼수선공>은 무척 반가운 드라마였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환자와 따뜻한 관계를 맺어 긍정적인 변화를 꾀하는 정신과 의사 이시준(신하균)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심리적 현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부분도 꽤 의미있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회가 거듭할수록 마음이 철렁하는 장면들이 늘어났다. 정신과 의사와 환자가 '썸타는' 듯한 느낌을 주더니 마침내 연인관계로 나아가는 설정은 명백하고 중대한 윤리위반으로 보였다. 게다가 이들의 관계에 대처하는 다른 인물들의 태도 역시 윤리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점점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영혼수선공>의 면면들을 살펴본다. 
 

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로맨스를 다루고 있는 KBS <영혼수선공> ⓒ KBS

 
'치료적 관계'에서의 윤리원칙 

상담자의 윤리에 대해 연구해온 학자들은 심리상담현장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근본적인 윤리원칙으로 '선을 행하고 해를 피할 것'을 들고 있다. 즉 내담자의 존엄을 보장하고 이들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하며 해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상담이나 치료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담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윤리조항인 '이중관계 금지' '성적 관계 금지', '사생활과 비밀보호' 등은 바로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항목들이다. 

물론, 정신과 의사와 상담자는 다르다. 주로 공공기관이나 학교, 사설센터에 근무하는 상담자는 '심리학'에 기반을 두고 내담자들이 스스로 심리적 불편함의 이유와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반면 정신과 의사는 '의학적' 훈련을 받고 보다 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약물치료, 입원치료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 이런 차이는 상담자는 상담에 오는 사람들을 '내담자'라 부르지만,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라 지칭한다는 점, 상담자는 내담자를 치료의 대상으로 보지 않지만, 정신과에서는 '치료한다'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는 점 등 언어에서의 차이로도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관계'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치료수단인 정신건강관련 종사자로서 내담자 혹은 환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상담자와 정신과 의사는 같은 윤리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선을 행하고 해를 피한다'는 윤리원칙은 그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다.

너무도 위험한 시준-우주의 로맨스 
 

정신과 의사 이시준은 환자 한우주와의 신체적 접촉도 마다하지 않는다. ⓒ KBS

 
이런 면에서 봤을 때 <영혼수선공>의 가장 큰 줄거리인 정신과 의사 시준과 경계선적 성격장애 환자 우주(정소민)의 연애는 명백한 윤리위반이다. 시준은 우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린 19회 우려를 표하는 정신과 과장(정해균)의 충고를 뒤로 하고 "그때랑은 다릅니다. 제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 거예요"라고 다짐한다.

우주의 병도 고치고, 자신의 트라우마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부분이었다. 드라마에서는 이런 시준의 다짐을 매우 헌신적이면서도 용기를 내는 의사의 모습으로 그린다. 하지만, 윤리의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시준의 이런 다짐은 헌신이 아니라 오만이다.

먼저 로맨틱한 관계는 내담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전이'는 과거에 중요 타인에게 느꼈던 내담자의 감정이나 태도가 무의식적으로 치료자에게 향하는 것을 말한다. 정신역동지향의 상담자들에게 전이는 내담자의 감정을 담아내고, 때로는 직면시키는 매우 중요한 치료수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담자가 자신의 사적인 감정과 욕구에 휘둘리지 않고, 내담자에게 공감하면서 동시에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때문에 심리치료 현장에서는 이를 방해하는 내담자와 상담자의 '이중관계(상담자-내담자 외의 다른 관계를 맺는 것)'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 속 시준은 우주의 주치의이면서 동시에 사적인 감정과 욕구를 가장 투사하기 쉬운 애인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윤리적으로도 치료 효과적으로도 납득하기 힘든 설정이다. 

게다가 시준은 우주를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도 극복하겠다'고 마음 먹는다. 이는 우주와의 관계를 통해 치료자인 자신의 이득을 꾀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환자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윤리 원칙에 위배되는 지점이다. 

윤리의 근본적 원칙이 손상됐을 때의 폐해는 이미 드라마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20회 시준은 진료시간에 늦은 우주를 다그친다. 진료시간에 늦은 환자에게 적당한 선을 알려주는 것은 필요하지만, 시준의 반응은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약속에 늦은 연인을 대하는 자세였다.

이런 불안정한 시준의 모습은 우주의 불안을 더욱 키울 뿐이다. 우주의 자해시도에 대한 시준의 과도한 불안과 성급한 대처 역시 의사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영원(박예진)의 "니가 지금 받아주면 이런 일이 수없이 반복돼"라는 직언이 없었더라면, 시준은 우주에게 달려가 우주의 건강하지 않은 패턴을 더욱 강화해주고 말았을 것이다.

환자보다 시준을 먼저 생각하는 동료 의사들

더 당황스러운 건 이런 시준과 우주의 관계를 바라보는 동료 의사들의 시선이었다. 윤리원칙을 알고 있는 의사들이었다면 시준과 우주의 관계를 알았을 때 환자인 우주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드라마 속 의사들은 시준만을 생각한다. 정신과 과장은 19회 시준과 우주의 '의사-환자' 관계를 정리하라 하는 게 아니라, 단지 우주를 연극치료에서 배제하는 엉뚱한 결론을 내린다. 심지어 동료의사 동혁(태인호)은 이렇게 말한다. "시준이가 극복하기 위해선 반드시 보더를 다시 경험해야 한다"고. 이는 시준을 위해 우주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다름없었다. 

환자 본인의 동의도 없이 우주를 시준에게 연결시켜준 영원의 태도도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영원은 우주와 시준을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연결되도록 한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른 의사에게 환자를 넘기는 행위는 명백히 환자의 존엄과 자율성을 무시한 행위였다.

15회엔 이를 알게 된 우주가 영원을 찾아가 "왜 저를 이시준에게 소개한 거냐구요?"라고 따지는 장면이 나온다. 진솔한 관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심리치료 장면에서 우주의 배신감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영원은 "그건 이 교수가 나보다 좋은 의사여서예요"라고 우주를 위하는 듯 답한다. 하지만 내담자인 우주의 복리보다 동료인 시준의 트라우마 치료를 먼저 생각했다는 측면에서 기본윤리원칙을 저버린 행위로 보였다.

존엄보다 치료만 우선하는 의사들 
 

<영혼수선공> 속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무척 헌신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치료에 집중한 나머지, 환자의 존엄이나 비밀유지같은 윤리적 문제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 KBS

 
다른 환자들과의 관계에서도 드라마 속 의사들은 오직 '치료'에만 집중해 환자의 존엄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치료자-환자의 관계에서 환자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비밀유지'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드라마 속 의사들은 '비밀유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들은 공공연히 '공밥집'에서 밥을 먹으며 환자에 대해 식당 주인에게 다 들리도록 이야기를 한다. 또한, 지하철 운전자들의 '공황장애'를 고친다는 명목으로 지하철에서 방송을 하며 운전자의 공황장애를 모든 승객들에게 알린다(15회). 드라마에서 이 사건은 언론에까지 보도되는 미담으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 환자 입장이라면 만천하에 자신의 정신적인 어려움이 알려지는 게 과연 좋은 일이었을까 의아한 장면이었다. '도둑촬영' 사건을 다룬 회에서도 같은 병원 동료 의사들의 주치의를 자처하는데 이는 '이중관계 금지'에도 위반되고, 비밀유지 측면에서도 매우 위험한 설정이었다. 

물론, 심리적인 문제가 숨겨야 하거나 창피해야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심리적인 문제에는 개인의 가족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내밀한 추억들이 많이 관여한다. 때문에 '비밀유지'는 환자뿐 아니라 그 가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윤리적 태도다. 환자에게 묻기 전에 가족 등 주변 인물들을 만나 환자가 '아픈 상태'임을 알리고 협조를 구하는 일을 반복하는 드라마 속 의사들의 모습은 헌신적이긴 하나 환자의 존엄은 잊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혼수선공>이 의미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시청자들이 자기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다양한 심리적 증상들을 다루고 있어 좋았고, 정신과 의사와 환자를 일방적인 관계로 그리지 않고 환자를 통해 변화하는 의사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도 신선했다. 또한 이해한다. 드라마이기에 윤리규정을 모두 준수하며 만들기는 어려웠을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지상파 드라마가 갖는 파급력을 생각했을 때 조금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시청자들이 '윤리적 관점'에서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이 드라마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가능하다면, 남은 방송 분량에서라도 윤리적 문제에 대해 다루어 준다면 지금까지의 오해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 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영혼수선공 윤리 신하균 정소민 이중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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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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