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안동 김씨 가문엔 없고, 김일성 가문엔 있는 '이것'

[사극으로 역사읽기]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20.05.31 11:57최종업데이트20.05.31 11:58
원고료로 응원
사극을 시청하다 보면 '김'자 '병'자 쓰는 사람들이 유독 많이 등장할 때가 있다. 조선 철종시대나 고종시대 초반부를 다룬 사극에서 그런 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대 배경인 드라마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장면이다.
 
지난 17일 첫 방송된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도 그런 드라마다. 이 작품에도 김병운(김승수 분), 김병학(한재영 분) 같은 이름이 가문 수장인 김좌근(차광수 분)이란 이름과 더불어 등장한다.
 
안동 김씨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바람과 구름과 비>는 이 가문의 세도로 인해 운명이 굴절된 두 연인, 이봉련(고성희 분)과 최천중(박시후 분)의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안동 김씨 가문의 탐욕 때문에 이봉련은 무녀의 능력을 숨기고 살다가 안동 김씨를 위한 무녀의 삶을 억지로 살게 되고, 최천중은 17세에 장원급제했지만 이 집안과의 악연 때문에 우연찮게 역술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한 장면. ⓒ TV조선

 
집권당 역할 한 안동 김씨 가문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안동 김씨가 장동 김씨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안동 김씨는 구 안동 김씨와 신 안동 김씨로 나뉜다. 신 안동 김씨는 고려 왕건의 통일전쟁에 협력한 공으로 김씨 성을 하사받은 김선평의 후손들이다. 이들이 장동 김씨로도 불려왔다.
 
정조가 죽은 1800년에 개막돼 순조·헌종·철종 재위기를 풍미한 세도정치시대의 3대 가문은 안동 김씨, 풍양 조씨, 경주 김씨다. 이들은 각각의 시기에 왕실을 무력화시키며 왕실 겸 집권당 역할을 겸했다. 1863년까지 계속된 이 시대에 안동 김씨는 대략 48년간, 풍양 조씨는 12년간, 경주 김씨는 3년간 집권했다.
 
1800년부터 3년간 집권한 경주 김씨가 퇴장한 뒤로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정권을 주고받았다. 안동 김씨는 3차례, 풍양 조씨는 2차례 집권했다. 횟수로는 별 차이가 나지 않지만, 매 시기의 집권기간은 안동 김씨 쪽이 훨씬 길었다. 그래서 48년 대 12년이 된 것이다. 이랬기 때문에 19세기 전반기에는 안동 김씨가 사실상의 왕실이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씨 왕실은 권위만 가졌을 뿐, 허수아비나 다를 바 없었다.
 
조선 초기부터 이씨 왕실이 유별나게 경계한 가문이 바로 김씨였다. 여기에는 철학적 이유가 작동했다. 한자 이(李)에 나무 목(木)이 있다. 나무한테 가장 위험한 것은 도끼다. '금도끼 은도끼' 설화에서는 나무꾼이 쇠도끼를 선택하자 산신령이 감동을 받지만, 나무꾼을 두려워하는 나무들의 입장에서는 쇠도끼를 선택했다는 것이 오히려 무서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金)씨는 '쇠'를 뜻하는 한자를 쓰는 가문이다. 이 때문에 이씨 왕실은 '김씨는 이씨를 베는 성씨'라고 경계했다. 음력으로 선조 10년 5월 1일자(양력 1577년 5월 18일자) <선조수정실록>에 "원래 궁중에서는 옛 임금들 때부터 '김이라는 성은 목(木)을 가진 성에 해롭다 말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을 정도다.
 
이렇게 김씨를 경계했는데도, 추존 왕후를 제외한 36명의 왕후 중에서 10명이 김씨 가문에서 배출됐다. 거기다가 1800년 이후에는 안동 김씨가 48년간이나 왕실을 억눌렀다. 19세기 전반기 조선 왕족들의 뇌리에 위의 <선조수정실록> 이야기가 자주 스쳤을지도 모른다.
 
안동 김씨는 이처럼 막강한 세도가문이었지만, 이 '막강'이란 것은 세도정치시대에 국한된 것이고, 나아가 조선시대에 국한된 것이었다. 관점을 확장하면, 공식 왕실이 아니면서도 이 가문보다 훨씬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가문들을 다른 시대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최충헌 가문과 오늘날의 김일성 가문을 그 일례로 들 수 있다.
 

TV조선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관련 이미지. ⓒ TV조선

 
안동 김씨와 두 가문을 가르는 '본질적 차이'

무신정권 수립 26년 뒤인 1196년 등장한 최씨 정권은 4대 62년간 고려왕조를 이끌었다. 1945년 집권한 김일성 가문은 현재까지 3대 72년간 북한을 이끌고 있다. 이들에 비하면, 안동 김씨의 48년 세도는 상대적으로 약했다고 볼 수 있다.
 
안동 김씨가 최충헌·김일성 가문보다 약했던 것은 이들이 직할 부대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최충헌 가문은 사병부대를 갖고 있었지만, 김일성 가문은 그렇지 않다. 김일성 가문은 공식 루트를 통해 군대를 지휘하고 있다. 따라서 '직할 군사력을 갖고 안 갖고'는 본질적 차이라고 볼 수 없다.
 
안동 김씨와 두 가문을 가르는 본질적 차이는 다른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는 외세의 압력이다. 최씨 정권이 4대까지 이어질 수 있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몽골 침략으로 인한 국가적 단결의 분위기였다. 최충헌 아들인 최우 때 시작된 몽골과의 전쟁은 이 집안이 강화도 천도를 단행하고 거기서 권력을 한층 더 공고히 하는데 기여했다. 
 
김일성 가문도 1950년 시작된 미국과의 3년 전쟁 그리고 그 후 70년간 이어져 온 미국의 경제제재 속에서 오히려 권력을 강화해 왔다. 미국과의 극단적인 대결은 북한 사회가 김일성 가문을 중심으로 한층 더 공고히 뭉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그에 비해 안동 김씨 시대에는 그런 요인이 없었다. 서세동점으로 불리는 서양세력의 동아시아 침략이 있기는 했지만, 안동 김씨 집권기에는 서양이 조선을 직접 위협하지 않았다. 1840년 아편전쟁 및 1853년 페리함대 침공에서 보여진 것처럼 안동 김씨 시대에는 서양의 압박이 청나라와 일본에 집중됐다. 서양이 조선에 대한 공세를 본격화한 것은 고종과 흥선대원군이 등장한 이후였다.
 
그래서 안동 김씨 시대는 상대적으로 평화로웠고, 이는 안동 김씨를 중심으로 하는 단결의 필요성을 떨어트렸다. 만약 이 시기에 서양의 침략이 조선에도 집중됐다면, 안동 김씨의 세도도 분명히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만약 안동 김씨가 그 침략을 막지 못했다면 이들의 세도는 훨씬 이전에 끝났을 것이다. 정반대 경우에는 이들의 세도가 오히려 공고해져 48년을 넘어 오래 집권했을 수도 있다. 

두 번째 요소는 신념체계와 관련이 있다. 제정일치사회건 제정분리사회건, 국교가 있건 없건, 어느 시대나 하나 혹은 둘 이상의 신념체계가 사회를 지탱한다. 그것은 불교나 유교 같은 종교의 형식을 취할 수도 있고, 공산주의나 주체사상 같은 이데올로기의 형식을 취할 수도 있다. 정치권력이 특정 가문에서 세습되려면 그 가문이 신격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종교나 이데올로기 같은 신념체계는 그 같은 신격화를 도와준다.
 
최충헌 가문은 불교와 적극 제휴해 세상 민심을 잡았다. 몽골 침략기에는 불교와 함께 팔만대장경 사업도 벌였다. 이 사업은 전시에 이반되기 쉬운 민심을 불교의 힘으로 붙들어두는 효과를 발휘했다.
 
김일성 가문이 활용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다. 이들은 소련식 공산주의를 북한 상황에 맞는 주체사상으로 변형하고, 이를 기반으로 가문의 정치권력에 정당성과 합리성을 부여했다. 이 같은 신념체계의 활용은 최충헌·김일성 가문이 덜 폭력적인 방법으로 지배권을 유지하고 권력을 세습하는 데 도움이 됐다.
 
반면, 안동 김씨 시대에는 그런 현상이 없었다. 이 때문에 안동 김씨는 최충헌·김일성 가문보다 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이들은 왕실과의 결혼동맹에 더욱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왕실 인척이라는 명분을 활용해 조정을 장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왕실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왕실과의 인연을 활용하면서도 왕실을 억압해야 하는 모순적 구조 속에서 정권을 지탱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세도정치는 취약성을 안고 있었다. 왕실을 억누르되 지나치게 억눌러서는 안 됐다. 또 왕실과의 인연이 끊어지거나 왕실을 제대로 억압하지 못할 경우, 하루아침에 권세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경쟁 가문인 풍양 조씨가 흥선대원군과 손잡고 고종을 옹립하는 바람에 안동 김씨의 세도가 순식간에 몰락한 것도 세도정치의 그 같은 취약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안동 김씨는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의 세도를 누렸다. 하지만, 이들은 최충헌·김일성 가문이 가진 '2가지'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이 가문은 나는 새는 떨어트릴 수 있어도 최충헌·김일성 가문처럼 하늘을 날아다닐 수는 없었다.
댓글2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kimjongsung.com저서: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신라왕실의 비밀,왕의 여자 등.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