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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똥 따는 병원장, 오지라퍼 의사들... '슬의'엔 이것이 없었다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11]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힐링이 되는 이유

20.05.17 14:00최종업데이트20.05.1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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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기자말]
내게 목요일이 특별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목요일은 언제나 금요일부터 시작되는 '주말스런' 느낌을 가로막고 있는 일주일 중 가장 지치고,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그런 날일 뿐이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목요일을 기다린다.

바로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지적대로 비현실적으로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때로는 낯간지럽고, 90년대 추억을 자극하는 장면들이 조금 식상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이 드라마를 기다린다. 시청 후에는 어김없이 '세상 참 살 만해'라는 생각과 함께 따스함이 마음을 감싸 안는다. 주변을 돌아보니 목요일을 기다리는 게 나 뿐 만은 아닌 것 같다. 

왜 우리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힐링을 얻는 걸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드라마 속 주인공 5인방의 성격적 특성 그리고 이들이 맺어가는 '평등한' 관계에 그 답이 있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열등감 없는 사람들이 평등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이상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 tvN

 
우리 안의 열등감
 
'열등감은 연약한 인간에게 자연이 준 축복이다'

개인심리학의 창시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열등감'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는 인간은 무척이나 연약한 육체로 태어나기에 필연적으로 열등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게다가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기개념을 형성해간다. 때문에 아들러는 열등감을 인간의 기본적인 조건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우월감을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심리적으로 성숙해져 간다고 했다.

하지만 종종 열등감은 '나는 남보다 못한 존재다'라는 자신에 대한 전반적인 신념으로 우리를 침범해 오기도 한다. 이럴 때 사람들은 부적절감에 시달리게 되고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타인과 진실하게 관계 맺지 못하게 된다.

친구에게 좋은 일이 생겨도 자꾸만 나의 처지와 비교가 되어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하고, 나의 잘못임이 명확한데도 사과하거나 미안하다 말하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는 것.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편견을 갖고 깎아 내리려 하는 것, 권위, 돈, 지식에 의존해 타인에게 군림하고자 하는 행동 뒤에는 '열등감'이 숨어있다. 때로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현실 속 사람들이 열등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건 불가능한 일이다. 나 역시 매사에 실수를 인정하기 힘들고, 친한 친구가 이룬 성취에 때로는 질투가 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괜히 만들어졌겠는가.

실수와 상처를 자신과 분리하기

그런데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주인공 5인방은 이런 열등감에서 거의 완전히 자유롭다. 이들은 자신의 실수나 상처를 자존감과 연결시키지 않으며, 권력이나 돈이 아닌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고, 매사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다. 이런 모습들은 내면에 열등감이 거의 없는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이 보이는 대표적인 특징들이다. 

9회엔 송화(전미도)와 함께 일하는 인턴이 실수로 환자를 삭발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 사실을 안 레지던트들은 "환자분에겐 향후 수술할 수도 있어서 한 것"이라고 둘러대겠다고 말한다. 자칫 의사로서의 권위와 신뢰를 잃을 수도 있는 실수에 대해 레지던트의 이런 반응은 지극히 자연스런 것이었다. 하지만, 송화는 자연스런 수준을 넘어선다. 잠시 고민을 한 송화는 직접 환자를 찾아가 상황을 솔직히 설명한다. 이런 실수 정도로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익준(조정석)은 환자를 위해 자신의 경험을 스스럼없이 개방한다. 드라마 초반 익준은 아내의 외도로 이혼을 한다. 이혼은 우리 사회에서 치부로 여겨져 쉽게 드러내기 힘든 경험이다. 그런데 익준은 간이식을 해준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안 환자가 삶을 포기하자, 환자를 찾아가 자신의 이혼 경험을 들려준다(7회). 이런 용기는 이혼한 자신의 처지를 열등하다 느끼지 않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석형(김대명)은 아버지의 외도로 인한 상처가 있는 인물이다. 저명인사이기도 한 석형의 아버지는 외도 뿐 아니라 탈세, 장기매매 등 각종 불법을 저지른다. 석형은 이에 분노하지만, 이런 아버지 때문에 자신이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아버지를 '양회장'이라고 부르며. 친구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 놓는다. 아버지의 잘못과 자신을 분리해 냈기에 석형은 자기 자신의 이런 상황에 솔직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본질을 추구하고, 자신에게 솔직하기
 

드라마 속 의사들은 환자에게도 자신들의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며 사과할 줄 안다. ⓒ tvN

 
정원(유연석) 역시 열등감이 없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재벌 아들이지만, 돈이나 권력으로 군림할 생각이 전혀 없다.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사로서의 본질적 의지만이 그를 움직인다. 그는 환자들의 처지에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며, 자신의 월급을 털어 수술비가 부족한 환자들을 돕는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자처한다. 이는 물질과 권력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려는 마음이 없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준완(정경호)은 그야말로 솔직하다. 수술방에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도 내고, 레지던트에게 종종 화도 낸다. 하지만, 그의 솔직함에는 꼼수가 없다. 그는 그 순간 상황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지,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폄하하거나 비하하지 않는다. 때문에 그는 뒤끝이 없다. 화를 내고 과도하게 사과하며 미안해하지도 않고, 이를 이용해 타인을 통제하려 들지도 않는다. 이 역시 그가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주인공 5인방 뿐만이 아니다. 각성수술 도중 환자에게 자신의 꿈이 좌절된 경험을 털어놓는 신경외과 레지던트 치홍(7회, 김준한), 거절당할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석형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민하(10회, 안은진) 역시 열등감 없이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자존감 높은 사람들의 특징을 보여준다.

편견없이 평등한 인간관계

열등감의 지배를 받지 않는 이들은 소위 '꼬인 마음'이 없다. 때문에 편견을 갖지 않고 보다 열린 마음을 사람을 대하고 누구와도 '평등한 관계'를 맺는다. 먼저, 성별에 따른 편견이 없다. 홍일점 송화와 다른 4명의 친구들은 이성보다는 사람으로서 서로 교류한다. 송화를 둘러싼 애틋한 감정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들은 송화를 여자이기 이전에 사람으로 대한다.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성역할에 갇히지 않고 진솔하며 평등하다.

환자를 대할 때도 '인간 대 인간'으로 교류한다. 실수가 생겼을 땐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때로는 자기 개방도 한다. 자신을 환자가 아닌 동등한 사람으로 대해주는 이들의 모습에 환자들은 스스로를 더욱 소중히 여기며 병을 이겨내려는 의지를 더욱 확고히 다진다. 또한 이들은 환자들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9회 딸의 이식수술을 앞두고 나타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익준은 "개인의 선택이니까 비난은 못하죠"라고 말한다. 이처럼 환자들의 다양한 처지를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이들에게 몸을 맡기고 픈 마음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아가 병원이라는 조직 내에서도 평등한 관계를 추구한다. 병원의 경영진인 소위 윗분들과도 자유롭게 소통하며,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 간호사, 수련의 등과의 관계에서는 교수라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각자의 다른 역할들을 존중하고, 이들의 노력과 수고를 늘 기억한다. 행여 후배들을 심하게 다그친 후에는 '미안하다'말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 뿐 만이 아니다. 드라마 속 '높은 사람'들인 병원장(조승연)과 이사장(김갑수) 역시 권력과 부를 과시하기보다는 멸치똥을 따며 수다를 떠는(5회) 인간으로 그려진다.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해주는 의사들의 마음에 환자들 역시 스스로를 더욱 소중히 대한다. ⓒ tvN

 
이처럼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인물들은 참으로 이상적이다. 열등감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누구와도 편견없이 평등한 관계를 맺으며 서로를 사람과 사람으로 대하는 사람들. 아마도 이는 현실에는 없는 '판타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에이 저런 의사들이 어디있어' 하면서도 이 드라마에 흠뻑 빠져들고 힐링을 얻는다. 아마도 이는 드라마 속 인물들의 모습이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내면에 이들처럼 열등감 없이, 누구나와 평등하게 관계 맺고, 서로를 보살피고 존중하며 살아가고픈 욕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이런 우리 내면의 이상향을 보여주기에 매력적인 것일 테다. 판타지면 어떤가. 드라마를 보면서 현실에서 잊고 있던 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픈 욕구가 일깨워진다면, 조금이라도 더 진실하게 살아가며 서로를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만으로도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주는 힐링은 충분히 의미있다 하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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