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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 김희애 아들의 '도벽', 이런 의미였다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JTBC <부부의 세계> 준영의 심리 뜯어봤더니

20.05.07 13:27최종업데이트20.05.07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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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기자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비록 부모가 이혼했다 할지라도 JTBC 금토 드라마 <부부의 세계> 속 준영(전진서)은 꽤 괜찮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전문직 엄마 선우(김희애)는 홀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고, 영화제작자로 성공한 아빠 태오(박해준) 역시 준영에겐 마음을 쏟는다.

게다가 선우는 힘든 상황에서도 준영 앞에서만은 밝은 모습을 하려 애쓰며 준영의 기분을 살핀다. 아들을 조심스레 대하는 선우의 모습을 보다 보면 엄마를 위해서라도 건실하게 자라주는 게 준영의 도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준영이 물건을 훔친다. 물건이 탐나서도, 경제적인 결핍이 있어서도 아닌데 자꾸만 친구들의 물건에 손을 댄다. 일부러 빈 교실에 들어갈 구실을 만들어 친구들의 사물함에서 작은 물건들을 슬쩍한다. "요즘 우리 반에서 물건이 자주 없어져"라는 수군거림을 듣고도 모르는 척하고, 노을(신수연)의 진심 어린 조언도 가볍게 무시해버린다. 뿐만 아니다. 남의 차를 못으로 긋기도 하고(10회), 학원을 빼먹고 잠수를 타기도 한다.

도대체 왜 준영은 남의 물건을 훔치고, 스스로의 일상을 망치는 일탈행위들을 하는 걸까?

이혼이 준영에게 의미하는 것 
 

준영은 부모의 이혼을 끝까지 막아보려하지만,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는 부모앞에서 배신감과 공포를 느낀다. ⓒ JTBC

 
준영은 무척이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이혼 전 집에 걸려있던 리웨딩 사진 속 해맑은 미소는 부족함 없었던 어린 시절을 상징한다. 물질적 풍요, 빈틈없는 엄마,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아빠.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준영의 삶은 드라마의 첫 대사처럼 '완벽'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장한 준영이 아빠의 외도 장면을 목격한다. 극 중 당시 준영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아빠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결과가 '이혼'일 수도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나이다. 준영은 직감적으로 '완벽했던' 자신의 삶이 위협받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이에 준영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아빠의 외도 사실을 숨기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선우와 태오의 관계는 극단으로 치닫고 만다.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부모의 모습은 준영에겐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외도의 증거를 더 잘 숨기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양부모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까지 더해져 준영은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을 게 분명하다.

부모의 이혼은 준영에게 무엇을 의미했을까. 8회 정신과 의사 윤기(이무생)는 선우에게 "준영에게도 이혼은 애정 상실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이 말처럼 부모의 이혼은 아이들에게 부모 중 한 명을 잃는 '상실'의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준영의 상실은 한쪽 부모를 잃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혼 과정에서 선우와 태오가 보여주었던 모습은 부모에 대한 신뢰를 잃게 했을 것이다. 즉, 준영은 따로 살게 된 아빠 뿐 아니라 이전에 알고 있던 '좋은 엄마'까지 잃은 셈이다. 게다가 이는 너무나 행복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상실로도 이어진다. 준영은 아빠의 외도를 안 후부터 불안과 두려움, 분노와 죄책감이라는 힘든 감정들을 두루 경험하다 결국 부모는 물론, 행복했던 자신의 삶을 모두 잃은 깊은 상실감에 빠져들고 만다.

준영이 물건을 훔치는 이유

상실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인-분노-슬픔-좌절/후회-수용의 5단계를 거치며 서서히 회복되어간다. 상실을 극복해내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각 단계의 감정에 충분히 머무르고 표현하며 이를 수용받는 경험이다. 지금 나는 힘든 게 정상이며 그래도 나는 괜찮다는 지지를 받을 때 사람들은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런데 준영은 어떤가. 드라마 속 그 어떤 인물도 준영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선우는 준영이 조금만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면 무척이나 놀라며 안절부절 못한다. 8회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던 준영이 이를 알고 달려온 선우에게 "엄마가 이럴 때마다 숨막힌단 말이야"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년 만에 나타난 아빠 태오 역시 마찬가지다. 태오는 아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해주지만, 아들의 기분이나 감정은 물어 봐주지 않는다. 분노와 슬픔 따위는 가당치 않은 것처럼 즐겁게 지내기만을 바란다. 이런 분위기에서 준영이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수용하고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제 준영은 분노와 슬픔을 억누른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감정을 억압한다는 것은 엄청난 긴장감을 유발한다. 많은 경우 성인은 술이나 다른 오락거리에 의지해 긴장감을 해소한다. 하지만 아직 학생인 준영은 긴장감을 해소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아이들이 줄곧 택하는 것이 바로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다. 훔치기 위해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묘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그리고 훔치는 데 성공했을 땐 긴장감이 일시에 사라지는 쾌감을 느낀다. 아마도 준영은 이 쾌감을 통해 정서적 긴장감을 해소하고, 상실로 인한 심리적 공허를 달래왔을 것이다. 

준영이 바라는 것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감정들을 모두 억압한 준영은 친구들의 물건을 훔치며 긴장감과 공허감을 해소한다. ⓒ JTBC

 
그렇다면 준영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청소년 비행을 연구해 온 헤일리(Haley)는 이혼가정의 청소년이 저지른 비행에는 부모에게 그만 싸우고 나를 위해 협력해달라는 무의식적인 메시지가 숨어 있다고 했다. 10회 준영이 말도 없이 사라졌던 날 태오와 선우가 함께 준영을 찾아 나서는 모습은 이런 무의식적 메시지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었다. 아마도 준영은 부부로서는 갈라서더라도, 부모로서는 힘을 모아 나를 좀 봐달라고 간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준영은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갈망하고 있을 것이다. 준영이 엄마와 상의도 없이 정신과 의사 윤기를 만났던 것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이를 이해해주는 상대가 필요해서 였을 것이다. 하지만, 윤기마저 엄마와 '썸타는 듯'한 장면을 목격한 준영(9회)은 마음을 털어놓을 곳을 완전히 잃고 만다.

이런 면에서 11회 준영이 태오와 선우에게 자신의 속 마음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무척 반가웠다. 준영은 태오에게 "바람나서 집 나간 것도 아빠고 맘대로 돌아온 것도 아빠잖아. 다 아빠가 반칙한 거잖아. 두 사람 문제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해"라고 못박는다. 또한, 선우에게 "나는 왜 이러고 살아야 하는데?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엄마 아빠가 이혼한 것도 아빠가 딴 여자랑 결혼한 것도 다 내가 그러라고 한 거 아니잖아"라고 항변한다.

이는 준영이 처음으로 이혼과 관련한 자신의 분노와 슬픔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장면이었다.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는 건 치유가 시작되는 사인이기도 했다. 준영의 이 메시지에 부모들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적절하게 조치해주었다면, 준영은 비행을 멈추고, 상처를 건강하게 극복해 나갈 힘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우와 태오가 부모로서 자신들의 태도를 점검하는 동안 이번엔 다경(한소희)이 준영을 이용한다. 12회 다경은 "엄만 너 때문에 그 모든 걸 참고 견디는 거야"라며 준영의 죄책감을 부추긴다. 이에 준영은 또다시 자책하기 시작하고, 결국 태오와 함께 살며 자신을 해외로 보내려는 다경의 계획까지 알게 된다. 이는 준영의 마음에 '나는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무가치감을 심어줄 만한 사건이었다.
 
준영도 노을처럼 될 수 있기를

"너 같이 이상한 애들 때문에 나까지 욕먹는 거라고. 꼭 그렇게 티를 내야 겠니?"

준영보다 먼저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노을은 10회 준영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노을의 말은 사실이다.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 모두 비행을 저지르거나 정서적 어려움을 오랫동안 겪는 것은 아니다. 노을처럼 열심히 살아가며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아이들도 많다. 문제는 이혼 자체가 아니라 어른들의 태도다. 노을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었던 건, 이혼에 대해 솔직한 감정을 나누고, 부모가 이혼하더라도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잊지 않도록 어른들이 노력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나는 두렵다. 이혼으로 인한 상실감을 아직 극복하지 못한 준영이 '무가치감'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아마도 준영은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제발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그만 싸우고 나를 좀 봐달라고,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해달라고 계속해서 사인을 보낼 것이다. 앞으로 준영이 어디까지 무너져내릴지 생각만해도 두렵다.

이젠 제발 준영이 비행을 하면서까지 보내는 메시지를 어른들이 읽어냈음 좋겠다. 자신의 이득이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준영의 마음을 알아줄 때, 그래서 부모의 이혼과 상관없이 자신은 사랑받을 만한 존재임을 알게 될 때, 준영의 비행은 멈출 것이다.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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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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