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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와 적폐 다룬 범죄물? 이 영화가 세월호 추모하는 방법

[리뷰] 이정범 감독이 영화 <악질경찰>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

20.04.17 11:12최종업데이트20.04.1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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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영화 <악질경찰> 메인포스터 영화 <악질경찰> 메인포스터 ⓒ 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


'야 작업 하나만 더 하자. 진짜 큰 걸로.'

필호(이선균 분)는 경찰이다. 자신의 오른팔과도 같은 기철(정가람 분)을 앞세워 범죄를 저지르는 그의 뒤를 봐주고 뒷돈을 챙기는 경찰. 경찰이 무서워서 경찰이 된 사람이라 스스로를 소개하는 그는 자신의 신분을 앞세워 온갖 비리를 저지른다.

범죄가 넘쳐나는 이 세상에 자신의 범죄 하나가 더해진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하는 그의 다음 목표는 경찰 압수 창고. 출장 ATM 영업소나 털던 평소와 달리 위험을 감수해가면서까지 경찰 압수 창고를 털고자 했던 것은 갑자기 필요해진 목돈 때문이었다.

그러나 필호의 사주를 받은 기철이 창고에 잠입하는 순간, 의문의 폭발 사고가 일어나고 만다. 현장에서 즉사하고 만 기철과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되는 필호, 그리고 창고와 함께 타버린 대기업 태성그룹의 비자금 7800억에 대한 비밀까지. 사건은 생각보다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 영화 <악질경찰> 스틸컷 영화 <악질경찰>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


"너희 같은 것도 어른이라고" 미나의 일갈

이정범 감독의 2019년 연출작 <악질경찰>은 비리 경찰 필호가 예상하지 못했던 범죄에 휘말리고 자신을 옥죄어 오는 거대 악에 맞서게 되며 변화해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그의 전작들이 그랬듯이,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누군가를 만나 선(善)의 방향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이번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앞장 서서 범죄를 저지르던 경찰 필호가 어떤 사고로 인해 삶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미나(전소니 분)를 만나 그의 삶에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내용.

그의 전작이었던 <아저씨>와 거의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이정범 감독은 영화 <악질경찰>에 대기업의 부조리와 횡포, 공권력의 적폐와 같은 내용을 더하며 관객들이 실제에 더욱 가깝게 느낄 법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개봉 당시 이 작품은 하위 소재로 삼고 있는 사건이 2014년 세월호 참사였다는 이유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이종언 감독의 <생일>(2019)이 세월호 참사를 핵심 소재로 삼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영화 <생일>이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바라봤다면, <악질경찰>에서는 한 걸음 비켜난 지점에서 영화의 배경적 소재 및 하위 소재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굳이 이 작품에 세월호 이야기를 가져다 써야 했는지 비판하기도 했다. 관객들의 감정적 호응을 획득하기 위한 얄팍한 상술로 국민의 아픔을 가져다 쓴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정범 감독은 극 중에서 참사 사건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미나의 입을 통해 '너희 같은 것도 어른이라고'라며 일갈(一喝)한다. 떳떳하게 고개를 들 수 없는 어른들의 얼룩진 지점을 공통의 분모로 이끌어내고자 한 것이다.
 

▲ 영화 <악질경찰> 스틸컷 영화 <악질경찰>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

 
영화 속 '세월호 참사' 이야기

영화 <악질경찰>이 대한민국의 부조리와 적폐를 다루며 기존 범죄물과 다를 바 없는 형식을 가져다 쓰고 부도덕한 인간이 변해가는 모습을 그리는 동안, 그 배경에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는 소스들을 넣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그 중 첫 번째는 이정범 감독 본인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방식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떠올리고 그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진정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이번 작품 속 필호 역시 기철의 약점을 쥐고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그릇된 어른이었지만 미나와의 만남을 통해 극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비열한 삶을 이어온 그가 더 높은 곳에서부터 쏟아져 오는 비리와 부패에 맞서고자 하는 모습은 영화의 배경에 놓인 사건과 결합하며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던 과거에 대한 미안함으로 치환된다.

두 번째는 앞서 언급한 어른들의 얼룩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세월호 참사는 이 사회를 만들어 온 어른들의 모든 과오가 총체적으로 집약돼 일어난 것이나 다름없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러 어른들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아프다.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을 계도하기는커녕 더 큰 범죄를 사주하는 어른, 목적을 위해서는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어른,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소녀의 삶을 780원짜리로 치부하는 어른. 그런 어른들이 모두 함께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 온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현실이라고 다를 수 있을까? 사고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극의 시점이 그렇듯이,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이 사회를 구성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 영화 <악질경찰> 스틸컷 영화 <악질경찰>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


영화의 마지막에서 호송되던 필호의 시선을 따라 안산문화광장이 보인다. 무리를 지어 시간을 보내는 여고생들 뒤로 노란 리본(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상징 이미지)도 스쳐 지나간다. 필호는 무리 속에서 불현듯 미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렇게 외친다.

'야 잘 지내지, 잘 지내야 돼. 거기서 잘 지내라고.'

그의 외침을 듣기라도 한 걸까. 잠시 두리번거리던 미나는 관객들을 가만히 응시하다 옅은 미소와 함께 환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영화의 시작에서 ATM 기계를 털던 기철 옆으로 떨어져 산산 조각이 나던 액자 하나가 생각난다. '행복한 도시 안산'이라고 선명히 적혀 있던 액자. 가장 처음에서 박살 나 버린 액자와 가장 마지막에서 환히 지어지는 웃음.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진짜는 여기에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월호 참사 6주기. 우리는 여전히 깨진 액자만 들고 있을 뿐, 그들의 미소를 안을 자격은 가지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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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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