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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노래가 불쾌했어?" 빌보드 휩쓴 여성의 날카로운 질문

[리뷰] 두아 리파, 레트로와 페미니즘 내세운 새 앨범 <퓨처 노스탤지어>

20.04.07 14:36최종업데이트20.04.0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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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 리파 <퓨처 노스탤지어> 앨범 커버 이미지 ⓒ 워너뮤직코리아

 
영국의 팝스타 두아 리파(Dua Lipa)가 두 번째 정규 앨범 <퓨처 노스탤지어(Future Nostalgia)>를 발표했다. '돈 스타트 나우(Don't Start Now)'는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올랐다. '뉴 룰즈(New Rules)'가 거뒀던 순위(6위)를 갱신한 것이다. 그러나 차트 순위보다 더 중요한 성취가 있다. 그래미 '올해의 신인상'을 안긴 전작의 성공에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더 멋진 앨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두아 리파는 한국의 음악 팬들에게도 친숙한 팝스타다. '뉴 룰즈', 'IDGAF' 등의 노래가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두 번의 내한 공연을 펼친 바 있다.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에서 마마무의 화사를 만난 이후, '피지컬(Physical)'의 리믹스 버전을 공개하기도 했다.
 
2020년이 부른 1980년대의 소리
 
'미래(Future)'와 '향수(Nostalgia)'라는 단어의 조합은, 서로 전혀 호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제목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데뷔 앨범 <두아 리파>가 '다크 팝'을 지향했다면, 이 앨범은 노골적으로 과거를 지향한다. 1980년대를 풍미한 디스코와 신스팝이 앨범의 중심을 세게 잡고 있다. 두아 리파는 그웬 스테파니, 마돈나, 밴드 블론디(Blondie) 등 자신이 좋아했던 음악들을 교재로 삼았다. 음악팬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팝 음악들을 자신의 색에 맞게 재조합한 '뉴트로'다.
 
인기곡 '돈 스타트 나우'는 흡입력 있는 멜로디를 갖춘 디스코 팝이다. "지나간 남자 따위에게 얽매이지 말라!"고 말했던 '뉴 룰즈'의 기조를 이어가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렛츠 겟 피지컬(Let's Get Physical)"이라는 가사를 그대로 차용한 '피지컬'은 올리비아 뉴튼 존의 '피지컬(1981)'에 대한 헌사인 동시에, 마돈나의 '헝 업(Hung Up)'을 소환한다. 베이스와 클랩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레비테이팅(Levitating)', 인엑시스(INXS)의 '니드 유 투나잇(Need You Tonight)'을 샘플링한 '브레이크 마이 허트(Break My Heart)'의 펑키 베이스 리듬도 인상적이다. 이 곡에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드러머 채드 스미스가 연주를 보태기도 했다. <퓨처 노스탤지어>에서는 데뷔 앨범의 '홈식(Homesick)'과 같은 발라드를 찾아볼 수 없다. 펑키한 베이스 리프와 리듬 기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두아 리파가 꿈꾸는 진보
 

두아 리파 ⓒ AP/연합뉴스

 
"더 많은 무대 위 여성을 위해, 더 많은 여성 수상자를 위해, 세상을 이끌어 갈 여성들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 2018 브릿 어워즈 수상 소감 중

두아 리파는 데뷔 후 줄곧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해왔다. SNS 라이브에서 팬의 질문을 받을 때도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대답했다. 브릿 어워즈와 그래미 어워즈 등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거머쥘 때마다 여성으로서의 연대를 외쳤다. 두아 리파는 이번 앨범에서도 그 가치관을 음악 속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앨범의 타이틀이자, 첫 트랙인 '퓨처 노스탤지어'에서는 '피메일 알파' 예술가로서의 자신감을 한껏 과시하며, '굿 인 베드(Good In Bed)'와 '할루시네이트(Hallucinate)'에서는 적극적으로 섹슈얼리티를 노래한다.

<퓨처 노스탤지어>의 마지막 트랙인 '보이즈 윌 비 보이즈(Boys Will Be Boys)'는 장중한 스트링 사운드와 함께, 단호한 목소리를 낸다. '보이즈 윌 비 보이즈'는 오래된 영어 속담이다. 그대로 해석하면 "사내아이들은 어쩔 수 없어", "남자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의미다. 이런 발화가 통용되어 온 세상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은 과소평가되곤 했다. 어린 시절 여학생의 치마를 들쳐 올리는 '아이스께끼'가 귀여운 장난인 것처럼 묘사된 학습 만화를 읽은 기억이 난다. 한국 사회를 뒤흔들어 놓은 성착취 범죄 역시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두아 리파는 자신의 과거를 톺아 보는 한편, 자라나는 여성들을 생각하면서 이 노래를 썼다고 밝혔다.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솔직하게 공유하면서, 변화에 대한 희망을 고백한 것이다. 두아 리파가 꿈꾸는 세상에 "남자는 그럴수도 있다"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이 불쾌한 상황을 웃음으로 애써 모면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가는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It's second nature to walk home before the sun goes down.
(다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어. 해가 지기 전에 집에 가는 것도)
And put your keys between your knuckles when there's boys around 
(길거리에서 남자 아이들이 보이면 손가락 사이로 열쇠를 집어넣는 것도 말이야.)"
-'Boys Will Be Boys' 중에서.


노래의 후반부에서 두아 리파는 "내 노래 때문에 불쾌했어? 그렇다면 네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거야"라고 말한다. 그 순간 '보이즈 윌 비 보이즈'는 단순히 스피커 속을 맴도는 소리가 아니라, 현실에 공명하는 하나의 선언으로 탈바꿈한다. 두아 리파는 '우먼 임파워먼트(Women Empowerment)'의 메시지를 앨범의 클라이맥스에 놓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청각적인 즐거움과 그루브는 물론, 우리가 '아티스트'에게 기대하는 메시지를 확고히 세웠다. 두아 리파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두아 리파의 <퓨처 노스탤지어>는 레트로와 페미니즘의 세례를 고스란히 받아 탄생한 '작품'이자, 댄스 파티다. 두아 리파는 어떤 측면에서 보나, 성공적으로 2020년대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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