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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받던 아들의 극단적 선택, 그 후 가족의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아호, 나의 아들>

20.02.06 17:36최종업데이트20.10.2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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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대만 영화 <아호, 나의 아들> 포스터 ⓒ 넷플릭스

 
친숙한 듯 친숙하지 않은 듯, 대만영화는 알게 모르게 우리를 찾아오곤 했다. 대만을 넘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거듭난 지 오래인 이안 감독은 차치하고라도 에드워드 양, 허우샤오셴, 차이밍량 감독으로 대표되는 대만예술영화와 2000년대 <말할 수 없는 비밀>과 2010년대 <안녕, 나의 소녀>로 대표되는 대만청춘영화가 탄탄하다. 개인적으로 대만영화의 두 대표 장르를 모두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다. 

지난해 대만영화는 청춘영화보다 예술영화 쪽이 활발했다. 2018년까지의 기조와는 사뭇 달랐다. 그중 스릴러 <반교: 디텐션>은 신인 감독의 작품이었고, 드라마 <아호, 나의 아들>은 현 대만예술영화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청몽홍 감독의 신작이다. 이 두 작품이 56회 금마장 영화제를 양분했는데, 장편영화상과 감독상과 남우주연·조연상과 편집상과 관객상 등 주요 부문을 독식하다시피 한 <아호, 나의 아들>의 압도적 승리(?)였다.

영화 <아호, 나의 아들>은 대만 국내 개봉은 극장을 택했지만 해외 개봉은 넷플릭스를 택했다. 작품성과 화려한 영화제 수상 결과와는 정반대로 대만 국내 극장 개봉 흥행에서 처참한 결과를 도출했기에, 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본다. 하여, 좋은 영화임에도 접하기 힘들었을 해외 관객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자세히 후술하겠지만, 원제인 <陽光普照(A sun)>과 번역 제목인 <아호, 나의 아들>은 따로 또 같은 상징성을 내포한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가족

비오는 어느 날, 아호와 무는 친구 오뎅의 손을 잘라버린다. 재판을 거쳐 아호는 소년원 3년형을, 무는 150만 위안의 벌금형을 받는다. 아호 아빠는 선처를 호소하기는커녕 매정하게 아호를 소년원으로 보낸다. 운전강사로 일하는 아호 아빠에게 오뎅 아빠가 찾아와선 합의금을 보태라고 협박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한편 유흥업소 미용실에서 일하는 아호 엄마에게 아호 여자친구 샤오위가 찾아와선 아호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한다. 아호 엄마는 샤오위를 받아준다. 

난장판 같은 가족에겐 빛과 같은 존재 첫째 아들 아호아가 있다. 그는 의대를 목표로 재수 생활을 하고 있는, 훤칠하고 잘생기고 착하고 배려심 많은 완벽한 존재다. 가족들은 그를 당연시 여기며 그에게 많은 걸 바라지만 챙기지 않는 반면,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둘째 아들 아호에겐 많은 걸 챙겨주면서도 바라는 게 없다. 오죽하면 아빠가 남들에게 말할 때 아들 한 명만 있다고 하겠는가. 

일이 터진다. 터질 일이었을지 모른다. 둘째가 소년원에 있을 때 첫째가 자살하고 만 것이다. 울음조차 나오지 않은 황망한 죽음 앞에, 가족들은 죽지 못해 살아가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서서히 봉합된다. 비로소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다시 합치려 하는 것이다. 아호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감은 어느 때보다 커져 있다. 과연 이 가족에게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 올까.

하지만 가족이다. 그래도 아들이다.

영화는 2시간 30분에 이르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의 초중반을 한 템포 느린 듯한 대화와 장면 전환으로 끌고 간다. 그래서 아호아의 갑작스러운 자살이 믿기지 않았다. 영화 속 인물들과 영화 밖 관객 모두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덕분에 영화 전체의 분위기 일신에 성공한다. 단연코 주인공이 둘째 아호인 줄 알았는데, 첫째 아호아도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극중 아호아의 말을 빌리자면, 햇볕은 모두에게 공평해서 동물원의 동물들조차 햇볕을 피할 수 있지만 자신은 햇볕을 피할 수 없었거니와 자신이 햇볕 같은 존재여야 했기에 죽는 것만이 햇볕을 피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면서 한없이 고운 심성으로 피하지 못하고 오롯이 받아들이는 한편, 모두가 부러워하는 햇볕의 대리인으로 어둠의 둘째 아호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한없이 빛을 선사해야 했던 아호아. 아호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걸 다 갖췄다시피 한 형을 부러워도 해봤지만 결국 싫어하게 되었다. 뭘 하든, 완벽한 형과 비교되어 어둠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형만 아니었으면 이런 인생을 살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치가 떨린다.

아호 아빠와 엄마에겐 이제 아들이 진짜로 한 명만 남았다. 누가 봐도 그들이 원하는 모양새는 아니었을 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가족이다. 그래도, 아들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가족이, 아빠와 엄마가 책임져야 할 대상이다. 아호아의 죽음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대상을 찾으라면 부모가 아니겠는가. 아호의 삶 만큼은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한다. 비록 죽음보다 어려울 삶일지라도 말이다. 

고전적이고 진득한 가족 이야기

가족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요즘이다. 가족의 경계를 혈연으로만 두었던 과거와 달리, 그 범위가 굉장히 넓어졌다. 결혼해 사랑하고 아이를 낳는 전통적 가족 형태에서 나아가, '막장'이라고 일컫는 수많은 관계의 결과까지. 막장의 결과가 아닐지라도, 느슨한 연대 또는 우연한 만남의 형태까지도 가족이라고 지칭한다. 하여, 요즘 영화들은 '가족'이라는 소재와 주제를 내보일 때 파격의 모습을 보이곤 한다. 

<아호, 나의 아들>은 이와는 거리가 좀 멀다. 아호의 미성년자 아내 샤오위와 자식을 끌어안는 점이나, 샤오위의 보호자가 부모 아닌 미혼의 이모인 점이 파격일지 모르겠지만, 약한 편이다. 반면, 아호 때문에 흩어졌다시피 한 가족이 아호아의 자살로 뭉치는 모습이 고전적이다. 이 영화의 미덕이 그 지점에 있는데, 세련미도 없고 신파도 없고 파격도 없지만 진득하고 잔잔한 드라마가 있다. 

리얼리티와 아티피셔널리티의 경계에서 줄타기 또는 밀고 당기기를 열심히 수행하는 느낌이다. 살짝만 빗나가도 너무 현실적이거나 너무 인위적일 것인데, 현실 위의 인위 또는 인위 위의 현실에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내보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흥미를 갖고 재밌고 즐겁게 즐기지는 못했지만, 가족의 의미를 영화로 들여다보는 데 적합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ingenv.tistory.com)와 <프리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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