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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 조재범 코치 사태 1년... 한 스포츠 기자의 '일갈'

[이영광의 '온에어' 23] 정재용 KBS 스포츠국 기자

19.12.31 17:59최종업데이트19.12.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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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나오는 단어 중 하나는 '다사다난'이다. 2019년 또한 마찬가지다.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던 올해 공교롭게도 일본의 경제 보복이 진행되었는가 하면 '버닝썬 사건'으로 연예계가 발칵 뒤집어졌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 촉발된 이른바 '조국 대전'과 검찰 개혁 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중 하나를 꼽자면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초 한국 쇼트트랙 간판이자 국가대표인 심석희 선수가 17살 때부터 4년간 조재범 코치에게 폭력과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해 사회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이후 국회의원들은 앞다퉈 스포츠 성폭력 방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조재범 코치 사태 이후 1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 올해 초 인터뷰한 정재용 KBS 스포츠국 기자를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KBS 사옥 근처 커피숍에서 다시 만났다. 다음은 정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정재용 KBS 스포츠국 기자 ⓒ 이영광

 
- 스포츠계 성폭력 사실이 충격을 준 지 곧 1년이 되어가는데요. 그동안 변화가 있었나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아요. 눈에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건 사실이에요."

-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했나요. 
"스포츠계가 우리 사회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큰 틀에서는 우리 사회와 맥을 같이하잖아요. 특히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는 미투운동이 스포츠계로 번진 거죠. 스포츠계는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이나 인식이 떨어져 있다기보단, 폐쇄적이고 구조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더라는 거죠. 지도자가 절대적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든지 대학 진학에 얽혀 있어서 학부모 등이 지도자들에게 감히 도전 못하는 구조라는 이야기입니다. 또 합숙소 환경이나 공부를 상당히 등한시하게 되는 관행이 문제죠. 스포츠계 성 의식이 (사회 다른 분야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고 그걸 바꾸는 게 굉장히 어렵다는 걸 우리 사회가 많이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측면에서 진전이 있었다고 봅니다."

- 그럼 10년 전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을 때와 지금이 다르다고 생각하나요. 
"10여 년 전 KBS에서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를 고발하고 다뤘을 때 엘리트 체육계에서 나온 반응은 똑같아요. 그때도 우리 사회가 반응은 했지만, 굉장히 짧았고 금방 식었죠. 하지만 이번엔 그런 느낌이 아니에요. 예를 들면 연초에 스포츠계 성폭력이 굉장한 파문을 가져온 이후 정종선 감독 사태 또는 폭력 등 지도자의 갑질 관련해서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가 됐습니다. (예전에는) 스포츠 기자들이 다루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지금은 대다수 (일반)언론에서 스포츠계 갑질 문제,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습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가장 결정적인 건 문재인 대통령 스포츠계 패러다임을 바꾸자고 언급한 것입니다. 금메달도 중요하지만, 인권을 중요시하는 패러다임을 스포츠에 도입하자고 했고 그 결과 정부 부처가 나서서 '스포츠 혁신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문체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 3개 부처 장관이 모여 만든 혁신위원회라서 과거 나온 지엽적인 개혁안보다 상당히 구조적으로 잘 짜여진 진보된 권고안이란 점은 확실합니다. 다만 거기서 나온 권고안 중에 속도 조절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어떤 권고안도 디테일까지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부분적 문제를 해결해야죠. 그런데 좀 안타까운 건 대한체육회 등 엘리츠 체육인들의 반응입니다. (권고안은) 내년부터 가능하면 주말리그를 하자는 건데, (사실) 모든 종목마다 현실이 다르고 어려움이 있죠. 그걸 '현실을 모르는 안'이라고 하거나 '엘리트 체육계를 무시했다'는 논리로 마치 전쟁하듯 전선을 형성해서 그걸 무력화하려 하죠.

어떤 개혁을 위한 청사진이 나왔을 때 학자들이 달려들어서 '이게 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있고 이론적 배경은 어떻고 이런 지점들은 어떻게 수정해야 한다'라고 해줘야 합니다. 그 다음 언론에서도 그걸 심도 있게 분석해야 해요. 근데 이 권고안이 나온 후의 반응은 현실을 모른다거나 체육계를 모른다는 거였어요. 혁신위 권고안과 대한 체육회 자체 안이 있거든요. 내용상 상당 부분이 겹쳐요. 근데 이걸 마치 전혀 다른 두 개의 진영이 전쟁하는 것처럼 하고 있어요. 언론도 한쪽 진영에 서고 학자들도 진영에 서요. 

정부는 어느 방향으로 갈지를 정하고 밀고 가야 하는데, 정부 특히 여당은 이게 총선에 도움 될 건지 말 건지만 생각하며 스포츠 개혁 문제에 접근하고 스포츠 학자분들은 개혁파와 반 개혁파로 나뉘어서 싸움만 해요. 사실 KBS는 일관되게 '싸움으로 가지 말고 혁신위가 안을 냈으니 대한 체육회도 안을 내자. 안을 놓고 양쪽이 만나서 대화와 타협을 해야 한다'라고 끊임없이 얘기했지만 진영 논리에 묻히는 느낌이에요.

스포츠 혁신위원장이 문경란씨입니다. 이분은 제가 2008년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를 다큐로 만들었을 때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었어요. 이 분이 당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때 인권위에서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를 심도 깊게 다뤘습니다. 이분은 스포츠계를 모르는 분이 아니에요. 그 당시 내놓은 대책이 이번에 나온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남편이 조 전 장관 멘토로 알려진 서울대학교 법대 한인섭 교수세요.

사실 스포츠 혁신안은 여야 막론하고 지지를 받았습니다. 특히 그중에도 학교 체육 등 복잡한 문제를 빼고 스포츠계 성폭력 방지법은 말 그대로 여야 이견이 1%도 없던 안이에요. 그러나 그 안조차 통과 못 했습니다. 왜냐면 조국 법무 장관 사태가 터지고 문경란 위원장이 조 전 장관 추천으로 위원장 됐다고 소문이 퍼진 거예요. 그 순간 야당은 100% 반대로 돌아섰죠."

- 그 법이 통과될 경우 스포츠 성폭력은 막을 수 있나요?
"저는 구조적 본질적 문제(해결)까지는 기대하지 않고요. 스포츠계 성폭력을 더 많이 걸러내고 방지하는 데는 기여할 겁니다. 그 다음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처리할 수 있는 기구를 그 법과 내용이 만들 겁니다. 스포츠계 인권 개선에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학교 스포츠의 구조적 문제는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도록 하는 건가요?
"그렇죠. 스포츠 혁신위에서 내놓은 개혁안의 모든 핵심은 거기에 있습니다. 일본이나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선진국처럼 공부와 운동을 병행한다는 게 공부와 운동을 똑같이 하라는 게 절대 아니고요. 최소한의 사회생활 할 수 있을 정도로 정규수업은 들어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우리가 지원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반대파에서는 이걸 공격하죠. '우리가 올림픽 나가 서양 친구들과 경쟁하려면 밥만 먹고 운동만 해도 금메달 못 따는 데 일반 학생과 똑같이 공부하라는 게 말 안되고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라고 하죠. 그런 말 한 적 없는데도요."

 

정재용 KBS 스포츠국 기자 ⓒ 이영광



- 그럼 그 질문에는 뭐라고 답변하세요?
"올림픽 금메달 중요합니다. 저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프로로 갈 연령대가 되면 공부보다 운동에 훨씬 집중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폭력과 폭력적 구조, 또 대학입시 부정에 노출되는 등 위험한 상황이 오더라도, 학생들이 경기력 강화와 금메달을 위해서 (모든 걸) 감내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지금까지 대한민국 스포츠는 운동 100 공부 0에 가까운 상황이기 때문에 그걸 80 대 20이건 90 대 10이건 최소한의 사회생활은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어야지 않느냐고 얘기하는 거죠. 양쪽을 병행하는 건 하고자만 하면 어렵지 않아요. 이미 수많은 나라가 그렇게 하고요."

- 그렇게 하면 세계 1등이 안 나온다는 주장이 있죠.
"그 말이야 말로 가장 비현실적인 이야기죠.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면 더 많은 이강인, 손흥민, 김연아가 나올 거예요.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정말 잘못하는 게 뭐냐면 김연아, 이강인, 손흥민 선수는 대한민국 스포츠 시스템에서 나온 선수가 아니에요

이강인 선수는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에서 자란 선수가 아니에요. 유럽 가서 우리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공부와 운동 병행 시스템에서 자란 선수예요. 손흥민 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강인 선수는 중학교 때까지 학교 수업 매일 다하고 프로팀 산하 유스팀에서 하루 운동 2시간 한 게 다예요.

유럽은 17~18세가 되어 프로에 갈 선수가 되면 수업 안 합니다. 인생의 진로 정한 거죠. 그러나 그 정도 선수는 만 명의 한두 명이겠죠. 나머지 유럽 선수들은 고등학교도 다닙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아니죠. 물론 과거에 비하면 수업에 많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근본적 시스템 자체가 공부 병행하고 있는 건 아닌 거예요."

- 조재범 전 코치의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제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는 폭력 문제는 최종적으로 선고 받았고요. 복역 중이에요. 그러나 성폭력 문제는 별도 재판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조 전 코치가 성폭력 문제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압니다."

- 국가인권위원회가 1월 '스포츠 인권 특별 조사단'을 꾸려 전수조사한다고 했잖아요. 결과 나온 게 있나요?
"국가인권위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는 가장 체계화된 조사인 것 같고요. 국가인권위도 1년간 성과를 많이 냈습니다. 최근엔 스포츠 인권 존중 캠패인도 하고 있고요. 스포츠 인권이 개선되는 분위기는 조금씩 무르익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수로 꿈도 이어가고 동시에 사회로 진출할 수 있는 두 가지가 병행되지 않는 이상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예들 들어 볼게요. 제가 축구선수를 했으니 실제 겪은 일입니다. 축구선수 시작한 그날로 학교 수업을 아예 들어가지 않았어요. 전 그전까지 공부 못하는 학생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담임 선생님이 매일 저희집 찾아와서 어머니에게 '운동시키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제가 워낙 축구 좋아했죠. 수업은 아예 안 들어가고 방학엔 하루 네 탕 운동하고 밤에 몽둥이 맞고 잡니다. 그러면 공부하는 건 불가능해요. 딱 1년 하면 바닥으로 갑니다. 그리고 교실 친구 관계도 다 끊어집니다. 그런 상황이 3~4년 됐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제가 대학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운동입니다. 근데 운동선수로 성공하려면 경기 출전해야죠. 그럼 100% 권한 가진 사람은 코치예요. 경기 이겨야 대학 갈 수 있거든요. 이게 대한민국 운동선수 진학 시스템이에요.

언남고 사태가 있을 수 없는 이야기 같지만, 지도자가 학부모를 성폭행해도 저항할 수 없다고 하잖아요. 시스템이 걸러주지 않으니 코치 몇 명이 짜서 누군 여기 보내고 재쟤는 저기 보내는 거거든요. (지도자가) 하느님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학생들이 내내 합숙소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래서 천안 초등학교 학생들이 세상 떠난 거잖아요. 그런 비현실적, 비교육적 비인권적으로 운동하고 맞고 대학 진학을 위해서 승부 조작하는 시스템과 환경 안에 있는데, 이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근본적으로 개선되길 바란다면 제가 볼 때 그건 꿈꾸는 거죠. 불가능한 일입니다."

- 앞으로 과제는 뭘까요?
"저는 스포츠 혁신위 권고안 2안인 '학교체육 권고안'을 기본적으로 실행하면 바뀐다고 봅니다. 그건 새로운 안이 아니고요. 지난 10여 년간 논의된 모든 내용이 집약된 겁니다. 그래서 이미 로드맵 등 모든 게 다 나온 거예요. 정부 의지에 따라 실행을 할지 말지만 남았습니다."

- 내년에는 바뀔 거라는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전 큰 기대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 역량을 봤을 때 큰 기대는 안 합니다. 바뀌기를 희망하죠. 그러나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인식의 수준과 역량이 너무 떨어집니다. 그리고 대한체육회는 반대하고 정치적 사안으로 몰고 가고 정부는 표만 바라면 개혁이 될까요? 하지만 어쨌든 그 길을 계속 가야죠."

- 마지막으로 바람이나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주세요.
"우리 사회에 부탁하고 싶어요. 스포츠 개혁이라는 문제를 내 삶과 동떨어졌다 생각하지 마세요. 이건 엘리트 선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교육계의 문제고, 이게 생활체육으로 이어지면 대한민국 미래 복지 사회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엘리트 스포츠 문제에서 한 걸음도 못 나가고 있어요. 체육은 내 인생과 관계없는 문제로 생각하고 등한시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선진 사회로 가는데 있어 스포츠 개혁이 굉장히 중요한 변곡점 중 하나라는 걸 인식하면서 진지하게 바라봐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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