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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이란 이름보다 이걸 더..." KBS 메인앵커의 바람

[이영광의 '온에어' 22] 이소정 KBS <뉴스9> 앵커

19.12.25 19:39최종업데이트19.12.2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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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뉴스9>의 한 장면 ⓒ KBS

 
11월 중순, KBS는 <뉴스9> 메인 앵커로 이소정 기사를 발탁했다고 발표했다. 메인 앵커 자리에 여성이 앉는 것은 지상파 역사상 최초로, 당시 KBS의 선택은 큰 화제를 낳았다. 이소정 앵커 발탁으로 KBS는 그간 딱딱하고 보수적이었던 이미지를 어느 정도 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3년 KBS 기자로 입사한 이소정 앵커는 사회부, 경제부, 탐사제작부 등을 두루 거치며 취재력을 인정 받은 인물로 KBS2 <아침뉴스타임>과 KBS1 <미디어 비평>을 진행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뉴스9> 앵커로 지낸 3주간의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KBS 사옥 신관에서 이소정 앵커를 만났다. 다음은 이 앵커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KBS <뉴스9> 메인 앵커 맡으신 지 4주 차인데 적응은 되었나요. 
"아니오. 아직도 정신없어요. 아침에 눈 뜨면 걱정되고, 밤에 끝나면 또 걱정되고, 어떻게 나갔는지 고민스럽고,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그날 하루 복기해 보고요. 계속 어렵습니다."

- 앵커가 처음은 아니신데도, 부담감은 여전하신 건가요?
"<뉴스9>라는 것이 주는 중압감이 굉장히 큰 것 같아요. 예전에 다른 프로그램 앵커 할 때는 이 정도로 부담스럽거나 어렵거나 숙제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매일 매일이 숙제 같고 시험 같아서 수험생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 어떻게 준비하세요?
"아침에 일어나서 그날 신문 거의 다 보고요. 또 아침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들도 있잖아요. 중요한 얘기들이 있으면 출근하면서 들어요. 그리고 보도국 오전 회의와 오후 회의가 있고요. 편집 회의를 하면서 어떤 아이템을 어떻게 배치할지 등을 얘기하면 저도 아이디어를 내기도 합니다. 이후에 각 취재 부서의 기자 선후배들과 의견도 나눠요. 그래서 저녁은 못 먹는 날이 많고, 어떻게 하루가 지나가는지 모르겠어요."

- 앵커는 뉴스 편집에 어느 정도 의견을 내나요. 
"미국은 나이와 경험이 많고, 카리스마 있는 앵커가 뉴스 전체를 장악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저희 뉴스는 그런 성격도 아니고, 사실 제가 연륜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앵커가 뉴스 편집을 주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선배들도 제 스타일을 살리라고 주문하곤 해서, 아이디어가 있으면 종종 얘기하죠. 예를 들어 북미 관계나 부동산 정책같이 복잡한 뉴스가 있으면 리포트에 앞서 그래픽으로 먼저 정리하고 가면 어떨까, 영상 구성을 이렇게 해보면 어떨지 등의 식으로 제안합니다."

- 다른 뉴스에 비해 앵커 멘트가 길어진 것 같은데, 맞나요. 
"맞아요. 길어졌어요. 저는 원래 짧게 짧게 치는 스타일인데, 앵커가 바뀌면서 보다 친절한 뉴스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많이들 하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일단 좀 길어져도 제가 차근차근 설명하는 시도를 해보고 있죠."
 

이소정 KBS <뉴스9> 앵커 ⓒ 이영광


- 지상파 첫 여성 메인 앵커라는 점에 많이 주목하는데 부담스럽지는 않나요.
"부담스럽죠(웃음). 저 자신도 처음에 듣고 '정말? 진짜요?' 하면서 엄청 놀랐거든요. 본의 아니게 '여기자'라는 대표성을 갖게 되다 보니, 제가 잘해야 다른 여기자 선후배들의 면도 설 것 아니에요? 본부장은 '너가 여기자라서가 아니라, 기자 중에 너가 할 역할이 있기 때문에 시킨 거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역시 부담스럽죠. 역대 앵커와 비교하면 젊고, 연륜이 짧은 편인데, '새로우면서도 깊이 있어야 한다'는 고민이 큽니다. 모든 게 부담이네요(웃음)."

- 40대 앵커 발탁도 KBS에서는 처음인 것으로 아는데요. 
"그렇죠. 본의 아니게 제 나이가 다 밝혀졌네요(웃음). KBS에 대한 편견이랄까,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무겁고 딱딱하고 촌스럽고 어렵고요. 저도 그런 걸 깨고 싶은 사람 중 하나였는데 일부 시청자들께서 시청자 상담실로 전화하거나, 이메일을 보내서 뉴스가 밝아지고 편해졌다고 얘기해주실 때 너무 감사해요. 하지만 나이 많고 연륜 있는 시청자들은 저같이 젊은 앵커가 못 미더우실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양한 관점으로 보려고 노력해요."

- 여성 메인 앵커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발표가 나자마자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전화를 많이 주셨는데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에 포커스를 맞춰 질문하더라고요. 그런데 21세기에, 선진국 반열에 들었다는 대한민국에서 여자가 메인앵커 되는 게 뉴스거리라는 것 자체가 좀 어색한 거 아닌가요?(웃음) 점점 남녀 구분 없이 그냥 '이소정이란 사람이 KBS 앵커야'라고 편하게 받아들이게 되겠죠."

- 다른 방송 뉴스는 오프닝 때 같이 나와 인사하고 앵커 멘트 할 때 따로 하는 반면 KBS <뉴스9>는 처음부터 혼자 하잖아요. 이런 방식 어떠세요?
"저희 뉴스도 앵커 두 명이 같이 한 적 있어요. 그건 그때 그때 어떻게 프로그램을 개편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혼자 서 있으면 고독하고 책임감이 무겁죠. 둘이 같이 있으면 제가 실수를 하더라도 기댈 데가 있는데 지금은 절벽 앞에 서 있는 느낌일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저희 뉴스 방식도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죠.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 앵커에 대한 생각은 어떠셨어요?
"중요한 자리죠. 개인적으로는 앵커 개인이 돋보이는 스타일은 KBS나 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고요. 일단 앵커는 취재기자들이 현장에서 열심히 뛰면서 쓴 기사를 잘 전달하는 사람이잖아요. 제 개인기에 기사가 묻히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 기자가 어떻게 취재했는지 이해하고, 기사의 핵심이 뭔지를 빨리 파악해서 최대한 그걸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사람이어야 하죠.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내가 돋보이기보다는 기사를 돋보이게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 앵커석에 처음 앉았을 때 느낌이 어땠어요?
"'여기가 <뉴스9> 앵커석이구나'를 느껴볼 여유도 없었어요. 정신없이 진행하고 나니까 끝났다고 박수를 쳐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하루 무사히 끝냈구나 싶었죠. 진짜 1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겠어요."

- 메인 앵커는 오디션으로 뽑고 기자님은 지난해 오디션 보신 걸로 알거든요. 오디션 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올해도 오디션이 있었고 작년에도 있었는데 저는 작년에 봤어요. 사실 오디션 공고가 뜬 지도 몰랐어요. 저를 아껴주시는 몇몇 선배가 왜 지원서 안 냈냐고 하시더라고요. 당시 <시사기획 창>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었거든요. 오디션 당일도 <시사기획 창> 때문에 일본으로 출장 가야 해서, 아침 일찍 오디션 보고 바로 공항 가서 비행기를 탔어요."

- 첫 방송 오프닝 멘트로 '뉴스의 홍수 속에 앞으로도 공정과 진실, 불편부당을 지켜가겠습니다. 작은 목소리도 귀하게 듣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과 얘기 나누고, 교감하면서 진실과 희망을 쌓아가려고 합니다'라고 하셨잖아요. 첫 오프닝 멘트인 만큼 고민도 많았을 것 같아요.
"오프닝 멘트를 며칠가 고민해서 썼냐고 많이들 묻더라고요. 그런데 8시 거의 다 돼서 편집부에서 첫날이니 한마디 하라기에 급하게 쓴 거예요. '작은 목소리도 귀하게 듣겠습니다'는 존경하는 선배 한 분이 이런 이야기도 하면 좋겠다고 하셔서 넣었죠."

- 앵커 멘트 쓸 때 중점 두는 부분 있을까요?
"이게 제일 힘든데, 마주 보고 말하듯이 하려고 노력해요. 특히 정치 기사나 법조 기사나 어렵잖아요. 어제(16일) 부동산 대책도 복잡했고요. 신문 읽는 것과는 다르게, 편하게 앉아서 들으셔도 쉽게 이해되도록 그냥 친한 조카, 이웃집 언니 혹은 누나가 설명해 주듯이 얘기하려고 해요. 하지만 기사의 핵심이나, 같이 고민해보면 좋겠다 싶은 부분은 힘을 줘서 강조하려고 하죠."

- 그러려면 기자님이 알아야 하니 공부해야 하잖아요. 어떻게 하세요?
"맞는 말이에요. 취재기자가 기본적으로 앵커 멘트를 써주기는 해요. 그걸 그냥 읽는 것과 제가 100% 이해해서 전달하는 건 차이가 있거든요. 시청자들도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기본적으로 신문 다 읽고, 모르는 거 있음 찾아보고, 회사 도서관에도 가고요. 아무래도 취재기자나 팀장, 부장이 전문가니까 물어보는 게 빠르고요."
 

이소정 KBS <뉴스9> 앵커 ⓒ 이영광


- 모니터는 어떻게 하나요. 
"매일 뉴스 끝난 뒤 다시 보고 집에 가거든요. 보면 매일매일 마음에 안 들어요(웃음). 제가 생각한 만큼 편하게 전달 안 됐다고 생각 들 때도 있고, 뉴스가 끝나고 나서 '아 이 부분은 이런 멘트로 설명했어야 더 쉬웠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이런 정치 기사는 더 강하게 무게 잡고 얘기했어야 했는데' 등등 매일 매일이 아쉽죠."

- 스포츠에서 경기 이해를 돕는 해설자와 경기 규칙을 판단하는 심판이 있죠, 해설자는 어느 팀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으로 해설 해야 하죠. 반면 심판을 공정하게 잘잘못을 따져서 결론을 내야 해요. 그렇다면 해설자와 심판 중 앵커의 역할은 뭐라고 보세요?
"저는 해설자에 가깝네요. 특히 공영방송 KBS의 앵커는 심판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심판 역할은 시청자가 하도록 열어 놔야죠. 저희는 심판하는 데 필요한 팩트와 전후 상황, 맥락, 그리고 해결 방법은 뭐가 있는지 등을 전달하고, 판단은 시청자가 하는 거죠."

- 기계적 중립에 대한 기자님 생각이 궁금해요.
"KBS 비판할 때 기계적 중립 이야기를 많이 하시곤 하죠. 솔직히 저도 기자 초년병 시절에는 일부 선배들 데스킹이 너무 기계적인 것 아닌가 불만일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제가 첫 방송 오프닝 때 불편부당이라고 말했는데, 기계적 중립이 아닌 불편부당한 뉴스여야 한다고 믿죠. 또 기계적 중립보다 더 나쁜 건 한쪽 시각에 치우쳐서 편 가르고,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 최동석 앵커와의 호흡은 어때요?
"많이 친해졌어요. 동석씨도 아이가 있고 저도 비슷한 나이의 아이가 있기 때문에 육아 이야기를 하며 많이 친해졌죠. 저는 성격이 다혈질인 편인데, 동석씨는 굉장히 차분하고 꼼꼼해요. 서로 보완이 된다고 할까요? 어떤 사안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리가 잘 되는,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아요. 되게 고마워요."

- 클로징 멘트는 특별히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아직 안 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선배 한 분이 '하늘 아래 나보다 못난 놈 없고, 나보다 못 배운 놈 없다'고 늘 말씀하세요. 제가 잘난 척하면서 뭘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러워요. 기자님 표현을 빌리자면 저는 해설자지 심판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정말 중요하다는 확신이 들고, 제가 120% 자신 있고,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생기면 할 거예요."

- 에피소드 있나요?
"앵커 결정된 뒤 보도국 프로그램 중 유튜브 생방송에 출연했어요. 실시간으로 막 댓글이 올라오는데 한 시청자께서 '괜찮아요. 안 예뻐도 돼요'라고 하셨어요(웃음). 안심이 됐다고 할까요. 안 예쁘니까 뉴스에 더 집중해 주시겠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죠."

- 시청자들에게 어떤 앵커로 기억되고 싶나요. 
"이소정 이름은 모르셔도 될 것 같아요(웃음). 솔직히 누가 알아보는 것도 부담스럽고, 부끄럽고, 평화롭게 살고 싶어요(웃음). 농담이고요. 제 이름보다는 시청자들이 나중에 '아, KBS에 그때 그런 앵커가 있었는데 뉴스가 편안하면서도 이해하기 좋았어'라고 제가 진행한 시기의 <뉴스9>를 기억해 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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