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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만찬' 차이나는 '먹방'인 까닭

사회 약자, 이웃과 함께 하는 식사, 오락·과시용 ‘먹방’과 차별화

19.12.24 17:37최종업데이트19.12.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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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이 싫었다. 언젠가부터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것을 보게 되면 얼른 채널을 돌리거나 꺼버렸다. 일부 연예인들의 개인기 성격이 컸던 초창기 '먹방' 때는 '식사 행위마저 상품화 되는구나' 싶어 씁쓸했지만 크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상파, 종편 할 것 없이 유사 '먹방'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연예인은 물론 대다수 일반인까지 '먹방'에 가세하면서 말 그대로 시도 때도 없이 남의 먹는 모습을 보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자 거부감이 일었다.   

무엇보다 반감이 커진 까닭은 음식은 넘쳐나지만 상식과 배려는 없는 '무개념 먹방'들 때문. 평범한 생활자들은 엄두도 못 낼 비싼 식재료가 그들 냉장고 속에는 가득하고 한 끼 식사에 수십 수백만 원을 쓰면서도 아무 망설임이 없어 보이던 그들. 

스크린 속 세상보다 훨씬 거대한 현실 이편에 김치 하나, 밥 한 공기가 전부인 식사마저 어려운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전혀 개념치 않는 듯. 음식이 음식이기 전에 '고통 아는 생명'이었다는 사실은 차마 언급할 틈도 없는. 
 

<거리의 만찬>을 함께 한 '제주4·3' 생존자 분들 ⓒ 방송 화면 캡처

 
그 와중에 한 '먹방'이 달리 보였다. KBS2 <거리의 만찬>이었다. 인지도 높은 연예인 여럿이 나와 음식을 먹는다는 기본 틀은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 출연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가장 큰 차이점은 주인공이 음식도 연예인도 아니라는 점. 

그 '먹방'의 주인공은 우리 사회 약자들, 부당한 이유로 소외당하고 상처입고 그래서 더욱 큰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나와 결코 다르지 않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선한 의지와 힘이 있는 이들이 같이 하는 식사였다. 
    
<거리의 만찬>이 그간 한 끼를 함께 한 이들 중에는 참혹한 제주4·3과 광주 5·18의 피해자,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멈춘 뒤로도 힘겹게 투쟁 중인 내부 고발자와 하청 노동자, 편견과 싸우는 성 소수자 부모, 자살자 유가족, 다문화 2세대 등이 있었다.  

가장 근래 따뜻하고 기쁘게 지켜본 식사 자리는 '열여덟 어른들' 편이었는데, 부모의 사망이나 기타 이유로 보육원에서 살다가 불과 만 18세에 '보호 종료'되어 사회에 홀로 나와 독립해야 했던 세 명의 청년들이 '만찬'에 참석했다.    
 

<거리의 만찬> '열여덟 어른' 편에서 보육원에서 자라 홀로 독립해 살아온 준형 씨를 위해 차려진 생일상. ⓒ 방송 화면 캡처

 
참담한 시간을 겪은, 여전히 그런 현실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만찬'은 절대 우울하지 않다. 되레 당사자들이 내놓는 각각의 삶 이야기는 싱싱하고 향기로운 제철 음식 같다. 강인하고 아름답고 그 안에 풋풋한 희망과 끈끈한 행복이 느껴지는. 

여기에 각각 음악과 개그 그리고 개인의 삶에서도 베테랑이라 할 만한 방송인 양희은과 박미선, 신참이자 막내인 이지혜의 깊은 공감이 더해지고 매회 주제에 어울릴 법한 음식들이 정성스레 차려지면서 그야말로 멋진 만찬이 된다. 

이렇듯 서로를 챙기며 즐겁게 나눈 밥 한 끼의 힘은 강했다. 지난 22일 <거리의 만찬>에 다시 나온 '땅콩회항사건' 피해자 박창진씨와 첫 촬영 당시 도로에서 투쟁 중이던 톨게이트 수납원들은 그 사이 모두 대기업을 상대로 한 힘겨운 법정 다툼에서 승소했다.

삶이 힘든 이들이 너무 많다. 세상은 점점 나빠지는 것만 같고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세상을 돌리는 힘의 출발은 너와 나로부터다. 나와 너, 우리를 위해 차리는 한상, 거기서 얻는 따뜻한 밥심이 너무도 귀하고 강할 수 있는 이유다.  
 

<거리의 만찬> 첫 촬영 당시 한국도로공사의 부당 해고에 맞서 길 위에서 투쟁 중이던 톨게이트 수납원들 ⓒ 방송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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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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