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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 포맷 여행기... 온정어린 시선이 북한 '본질' 가릴 수도

[TV 리뷰] SBS <샘 해밍턴의 페이스北> 제1부 '웰컴 투 평양'

19.12.09 18:16최종업데이트19.12.1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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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샘 해밍턴의 페이스北> 캡처. ⓒ SBS


 
고려항공의 기묘한 기내식, 동유럽 도시와 닮은 계획도시 평양의 모습,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된 세계에서 제일 높은 개선문, 105층짜리 미완공 류경호텔, 남한 맥주보다 맛있다는 대동강 맥주와 평양 만두 등 이북 먹을거리, 북한에서 개량했다는 '배사과', 북쪽 판문점 방문, 대규모 군중 동원과 칼 군무를 보여주는 대집단체조, 인민복 입어보기와 미용실 체험... 

지난 6일 오후 방송된 SBS 특집 다큐 <샘 해밍턴의 페이스北>이 보여준 것들이다. 방송 제작 의도는 최근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언젠가 다시 해빙될 날을 기다리며 북한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남쪽에 알린다는 취지이지만, 사실 위에 것들 가운데 새로운 것은 그다지 없는 것 같다. 

남한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국적자의 북한 방문기라는 점을 내세웠지만, 서양인의 북한 방문은 이미 반복적으로 많이 시도된 포맷이기도 하고, 이날 전파를 탄 것들은 유튜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콘텐츠다. 북한을 관광한 외국인들이 직접 찍어 유튜브에 올린 것들이다. 또 남한 사람들도 미디어를 통해 북한에 대한 웬만한 정보는 이미 어느 정도 아는 상태다. 한마디로 짧은 인상기, 수박 겉핥기식의 풍물 보여주기 이상은 아니었던 것 같아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만, 방송 전 예고편을 보면서 한국 사람이 아니라 남한에서 비교적 오래 거주하며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알고, 남북한을 객관적으로 균형감 있게 볼 수 있는 외국 국적자가 북한을 직접 체험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기대를 가졌다. 우리에겐 익숙하고 당연한 것을 이들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SBS <샘 해밍턴의 페이스北> 캡처. ⓒ SBS


그러나 막상 방송을 보니 출연자들의 감상평이 대체적으로 평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외적으로 동서독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룬 독일에서 온 니클라스 클라분데의 발언은 다섯 출연자 가운데 여러모로 공감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실제로 구소련이나 동유럽 등 과거 사회주의 경험을 가진 국가 국민들이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이해가 높다고 알려졌다. 이들도 과거에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현재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들, 주민들의 감정과 의식, 정치체제와 통치방식, 향후 북한이 가려는 길 등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이다. 

니클라스는, 평양 순안공항을 빠져나와 평양시내로 들어가며 본 시가지의 모습이 자신이 어릴 때 살았던 동유럽 도시들과 비슷하다고 했다. 이는 역사적인 연원이 있다. 6.25 전쟁 당시 미군의 엄청난 폭격으로 평양은 모조리 파괴되고 정전 뒤 성한 건물은 단 2개뿐이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전후 복구 과정에서 사회주의 우방들이 북한 재건을 도왔다. 소련 유학파 출신 건축가가 평양시를 설계했고, 각 도시마다 도시계획을 하고 건설한 국가가 다르다. 동독이 건설한 도시는 동독 느낌이 나고, 소련이 건설한 도시는 소련풍이 됐다. 이러한 역사적 이유로 니클라스도 그러한 '데자뷔'를 느꼈던 것 같다.  

니클라스는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주민을 상대로 역사적 연설을 했던) 능라도 5·1경기장에서 관람한 대집단체조에 대한 소감도 퍽 달랐다. 다른 친구들은 '장관이다', '멋있다' 등의 소감을 말했지만, 그는 '참가자들이 저걸 정말로 원해서 한 걸까'라고 조심스럽게 의문을 나타냈다. 

북한이 '빛나는 조국', '인민의 나라' 등 거창한 체제선전용 제목을 붙인 이 대집단체조는 사실 수많은 외국인들로부터 '인권 유린'이라고 지탄받고 있는 공연이다. 북한 당국 입장에선 외화벌이를 위해 뭐라도 시도해 보려는 의도였겠지만, 연습 기간에 끼니를 제공하지 않고, 학생들뿐 아니라 6세 이하 유아들까지 장기간 동원하기 때문에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니클라스도 아마 이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꼈던 것 같다.    

SBS <샘 해밍턴의 페이스北> 캡처. ⓒ SBS

  한편 다큐 속 장면들은 제작진이 입북을 허가받지 못한 관계로 출연자들이 직접 촬영해 온 것들이라고 한다. 출연자가 촬영하고, 방송국이 편집해 완성한 다소 특이한 결과물이다. 샘 일행이 찍어온 장면 중엔 일견 평이하고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그 진정한 본질이나 의미는 잘 드러나 있지 않은 장면들도 있다. 

샘 해밍턴 일행의 첫날 저녁식사 메인 요리로 나온 갈비탕을 보면서 과거 한 탈북민이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북한에선 소를 잡아먹으면 사형이라고 말하면 남한 사람들은 웃으면서 아무도 믿지 않더라"고 했다. 소를 불법 도축하면 그 죄를 엄중히 물어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농기계 보급률이 매우 낮다. 그래서 북한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 농부라는 말이 있다. 그나마 고된 농사일에 의지할 것은 소뿐이기 때문에 북한에선 매우 중요한 동물이고, 따라서 불법 도축에 대한 처벌도 혹독한 것이다. 방송을 보면서 누군가는 소고기를 먹은 죄로 사형을 당하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그걸 알고나 있을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들은 지난 10월 2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금강산 남한 시설 철거를 지시하기 일주일 전에 금강산에 다녀왔다. 김 위원장은 '너저분한 남쪽 시설을 다 들어내라'고 말하면서도 '남쪽 사람들이 오면 언제나 환영한다'고 슬며시 여지를 뒀다. 연일 대남 비난을 이어가면서도 남한 방송국과 연계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남한 연예인이 아닌 외국인 국적자를 초청했다.

이것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두는 한편, 남한 사람들이 금강산에 관광을 가줘야 한다는 사고와 달리 북한이 유치하고자 하는 것은 남한 관광객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해외 관광객을 포함한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SBS <샘 해밍턴의 페이스北> 캡처. ⓒ SBS


서두에서 이 다큐가 익숙한 포맷의 단순한 여행기라고 썼지만, 은정휴게소의 식품 판매나 미용실 이발 체험은 북한의 긍정적인 모습을 포착한 것으로 느껴졌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인민생활 향상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경공업 제품들을 생산해 내는 노력, 북한이 한때 구현하고자 했지만 실패하고 사라져버린 성실하고 정직한 사회주의적 인간상을 엿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브라질 출신의 카를로스 고리토는 미용실에서 이발 서비스를 받고 '남한 어디에서도 이런 서비스는 못 받아 봤다'며 칭찬했는데, 이것이 방송을 위해 미리 준비된 행동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미용사의 직업적 자부심과 순수한 봉사정신 같은 것이 엿보였다. 

그럼에도 북한을 남한에 소개하고 잘 알게 해서 장래 남북관계를 대비한다는 의도로 북한을 온정적 시선으로 스케치하는 것은 그 체제의 본질을 못 보게 가려 버린다는 측면에서 일정한 한계가 있다.

최근 남북 사이의 통일 담론을 가려버리며 등장한 것이 '평화권'인데, 평화는 소중한 가치이지만, 북한 주민의 생존권, 인권, 행복추구권, 체제 전환도 그와 동등한 무게를 가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남한 사람들의 이익과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후자를 희생시키며 평화담론을 '도구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SBS <샘 해밍턴의 페이스北> 캡처. ⓒ SBS

 
주류 남한 사회는 북한을 강한 민족주의적 감정으로 바라보며 동질감과 동포애를 느낀다. 북한학 권위자로 잘 알려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에 의하면, 남한 사람들 대부분은 북한 지도부와 북한 주민을 분리해서 보지 않고, 동일한 의식과 목표를 공유하는 균질한 집단으로 보곤 한다. 하지만 양자는 억압하는 권력과 억압받는 피지배 관계라고 보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북한을 70년 넘게 지배해온 김씨 가문의 목표는 '권력 유지'이기 때문이다.

북한에도 남한 사회처럼 계급 갈등과 변화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북 주민은 외부 세계에 관심이 높은데, 당국은 현상 유지를 고집한다. 주민의식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정치체제는 여전히 정체돼 양자 사이에 심각한 격차가 일어나고 있다. 남한 사람들이 권력과 주민 사이의 긴장·갈등 관계를 이해하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면 북한이라는 국가, 그 사회에 대한 이해가 현재보다 더 깊어질 것이다. 그래서 남한 정치인들이 북한 간부들에게 좋은 정책이나 지원을 하기보다 주민들을 위한 정책과 지원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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