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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의 죽음, 이건 '사회적 타살'이다

[하성태의 사이드뷰] 여성 연예인에게 가혹한 사회, 두 사람의 죽음을 기억하자

19.11.26 12:10최종업데이트19.11.2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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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야. 언니가 일본에 있어서, 못 가서 미안해. 이렇게밖에 인사할 수 없어서 미안해. 그곳에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잘 지내. 언니가 네 몫까지 열심히 살게. 열심히 할게."

한 달여 전, 차마 보지 못했던 그 영상 속 구하라는 오열하고 있었다. 이후 우연히 접한 구하라의 그 모습을 채 다 볼 수 없었다.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절친'을 황망히 떠나보낸 이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그리고 이 영상에도 기어코 악플이 달렸다. 

시간이 흘렀다. 새삼 놀랐다. 평소처럼 스마트폰으로 포털 다음의 뉴스를 접하고는. '연예'뉴스에 댓글 창 자체가 없다는 사실을 처음 자각해서였다. 그러자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다. '그래, 설리가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지…'

반면, 네이버엔 여전히 클릭조차 꺼리게 만드는 댓글 창이 엄연했다. 단박에 '갈 길이 멀구나'란 또 다른 자각이 일었다. 연이어, 그 한 달 간 부고 글 하나 쓰고는 설리 '최진리'를 죽음으로 몰고 간 현실을 눈감았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됐다. 포털 다음 댓글 창 하나 없어진 것 빼고 무엇이 변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답은 쉬웠다. 아무것도 변한 건 없었다.
 

가수 구하라의 빈소가 25일 오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이곳은 팬들을 위한 빈소로 가족과 지인을 위한 빈소는 다른 병원에 마련됐다. ⓒ 사진공동취재단

 
그랬던 일요일 오후(24일), '구하라'란 이름 석 자가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설마'와 '아니겠지'란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공교롭게도, 나쁜 예감이 현실이 됐다. 이날 오후 서울 청담동 자택에서 구하라가 숨진 채 지인의 의해 발견됐다는 소식에, 마치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턱 올라간 듯했다. 

이후 대한민국의 전 매체가 포털을 통해 1분에 하나씩 기사를 쏟아냈다. 그리고 이날 저녁, 포털사이트 네이버 연예면 톱뉴스를 장식했던 <故구하라에게도 드리웠던 악플의 그림자>란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들은 우리가 알고 있으나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여러 '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아마도 설리의 안타까운 선택 이후 비판적인 보도 등을 통해 학습한 결과일지도 모를 그 반응들은 이랬다.

"악플러뿐 아니라 기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 쓰던 기자들 반성 없이 악플러들 탓만 하는 거 옳지 않다 봅니다." (bett****)
"네이버 댓글 창 없애주세요." (3527****)
"악플러들 너희도 고스란히 돌려받길." (wkde****)
"저 작은 체구에 얼마나 짊어질 슬픔과 아픔이 많았기에 그런 선택을 했을까.... 너무 안타깝다. 이번에 자살한 게 꼭 악플러 때문이라고 장담 못하지만 이미 겪고 있던 우울증은 악플러들 때문에 생긴 건 확실하다. 설리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 했는데 아무튼 그 곳에선 행복하자." (syjh****)


여성 연예인과 아이돌들에게 유독 악랄한, 악플과 포털 댓글, 그리고 언론에 대한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지적돼 있지 않은가. 설리를 극단으로 몰아갔던 그 상황과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누구도 원치 않을 반복학습

잠시 시간을 되돌려 보자.

KBS <청춘불패> 속 구하라를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유독 씩씩했고, 또 엉뚱하면서도 밝았던 구하라의 당시 나이는 19살. 2008년 7월, 18세에 카라 미니 1집으로 데뷔한 이래 각종 예능에서 활력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 구하라는 '구사인볼트'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달리기 등이 출중해 주목을 받았다. 2010년 정식 진출한 일본 활동에서도 그런 모습들은 그대로 이어졌다.

이후 전성기가 지난 카라(와 구하라)는 멤버 교체와 솔로 데뷔 등을 이어오다 소속사와의 결별을 하게 됐다. 소녀시대와 함께 1세대 대표 여성 아이돌에서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여성 아이돌을 거친 카라와 구하라. 그들 역시 고비와 홀로서기 등을 맞았고, 여타 멤버와 달리 연기로 눈을 돌리지 않았던 구하라 또한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2018년 9월 내밀한 사생활이 알려지는 고통까지 더해졌고 지난 5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재빨리 발견한 매니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됐기에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이후 구하라의 몸과 마음의 아픔을 걱정하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갈 수밖에 없었다. 몇 달 후, 구하라는 일본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간간이 일본 활동을 이어가며 새출발을 이어가는 듯 보였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듯 싶다.
 

구하라 ⓒ 콘텐츠와이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 직후, 지난 5월 한 팬이 구하라의 소셜 미디어에 편지 형식으로 쓴 댓글이 회자되는 것 역시 같은 이유일 것이다. 동갑내기 여성 팬이 썼다는 이 글은 우리가 결국 구해내지 못한, 마음이 아픈 한 사람이자 여성에 대한 절절한 위로라 할 수 있었다.
 
"하라야 있잖아. 나는 그래도 너가 살아줬으면 좋겠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갑의 여성으로서 또 한 때 너를 좋아했던 팬으로서 나는 너가 꼭 씩씩하게 살아나가 줬으면 좋겠어.

무사해서 다행이야. 정말 많이 걱정했어. 너를 좋아하던 시절에 너는 참 나에게 과분한 사람이었고 참 자랑스러운 사람이었어. 생활에 치여 전처럼 열정적인 마음은 아니지만 여전히 넌 나에게 그런 사람이야.

자꾸만 스스로가 싫어지거나 미워하는 마음으로만 살아가진다면 이렇게라도 살아가달라고 말하는 나를 미워해주면 안 될까. 너가 이겨내가는 과정에 어떤 관계로든 함께할게 사랑해."

형벌 아닌 형벌, 그리고 2차 가해

공인이 아닌 유명인으로서, 또 마음을 가진 하나의 사람으로서 연예인이 별다른 잘못 없이 공격 받고 혐오 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악플을 비롯해 현실은 녹록지 않다. 유별나고 지독하게 여성 연예인에게 가혹하다. 심지어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였던 구하라에게마저 그랬다. 전 남자친구와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직후, 구하라가 당한 2차 가해는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한때 연인이던 가해자의 폭력과 성관계 영상 유포 협박으로 고통 받고, 도리어 피해자를 조롱하고 동영상을 끈질기게 검색한 대중에게 고통 받고, 언론에 동영상 제보 메일까지 보낸 가해자에게 고작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에게 고통 받은 그가, 결국 삶의 가느다란 끈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25일 녹색당이 내놓은 <여성혐오가 죽였다, 이 사회가 죽였다, 구하라님의 비통한 죽음을 애도하며>란 논평의 일부다. 이렇듯, 구하라의 안타까운 선택은 설리의 그것과는 같지만 또 다른 양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 못지않은, 여성 연예인을 향한 악플과 선정적이었던 언론보도는 기본이다. 이미 지난 2011년 카라 멤버 중 일부가 소속사와 결별을 선언하며 폭로한 거대 기획사의 횡포와 인권 침해, 악플 등에 대한 안일한 대처 역시 구하라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을 터다. 이와 함께 지난 8월 남성 중심적 시각에 매몰된 대한민국 사법부가 구하라에게 내린 '형벌'아닌 형벌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8월, 구하라의 전 남자친구 최아무개씨 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는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그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위반(카메라 이용), 상해, 협박, 재물 손괴 등 5가지 혐의 중 이른바 '불법 촬영' 혐의만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이 세상에 알려진 뒤 재판부를 향해 비판이 쏟아졌다. 최근 유독 남성 아이돌과 연예인들의 성범죄에 관대한 듯한 모습으로 비쳐졌던 사법부를 향한 비판과 다르지 않다. 

사회적 타살
 

설리 ⓒ SM엔터테인먼트


구하라의 안타까운 죽음이 전해진 직후인, 24일 밤 KBS2 <거리의 만찬> '개미지옥 악플세상' 편은 악플과 연예인이라 감내해야 하는 고통에 주목하고 있었다. 공교로웠다. 설리의 죽음 이후 악플의 문제점을 짚는 이 방송을 접한 이들은 구하라의 죽음을 겹쳐 볼 수밖에 없었으리라.

방송에서 설리와 구하라의 동료나 선배 연예인은 입을 모아 다른 집중할 것을 찾으라고 했다. 부모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으며, 시골로 주거지를 옮기고 또 양봉이란 취미를 만들었던 본인들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그리고 정신과 전문의는 '위로 포비아'란 단어를 소개하며 지인들과 고민을 나눌 것을 조언했다.

또 변호사는 악플러를 처벌하는 모욕죄와 명예훼손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화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카레라이스를 먹으며 만찬을 즐겼다. 비단 악플 문제만 짚기엔, 방송 시간은 짧았고 다루는 시선은 다소 가벼웠으며, 내용조차도 협소했다.

공영방송이 이 정도로 주목한 것만으로 안도를 하기엔, 또 상황을 개선코자 하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다시 물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과연 한국은, 여성 연예인에게 유독 가혹한 한국사회는 여성 연예인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작금의 현실을 개선할 의지가 있는가?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연예인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토론회'를 개최한 것도, 여성가족부가 '청소년 연예인 성보호·근로권·학습권 실태분석'을 내놓은 것도 고 장자연 사건 직후였던 2010년의 일이다.

구하라와 같은 여성 연예인에게 가혹한 한국사회는,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그리고 대중과 언론은 그때보다 개선됐다고 자신할 수 있나. 아니, 또 다시 구하라를 죽음으로 몰고간 이들에게 과연 스스로를 개선할 의지가 있을까. 결국 그 시작은 나 또한 공범은 아니었는지 자문하는 일이 아닐까.
 
"과장 없이 말하겠다. 이것은 약육강식하는 식인사회의 킬링필드이다. 제도화된 약육강식이 아니라면, 이처럼 단순하고 원시적이며 동일한 유형의 사고에 의한 떼죽음이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고 방치되고 외면될 수는 없다."

25일 소설가 김훈은 한 일간지 칼럼에서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한국사회를 위와 같이 처절하게 비판했다. 한국 사회 구성원 전체를 향해 '아이고'란 곡소리를 내며.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하라의 안타까운 죽음을 비롯해 그간 떠나간 여성 연예인들을 구해내지 못한, 사회적 타살로 이끈 한국사회는 비판을 받아 마땅한 듯 싶다. 바로 이렇게.

'과장 없이 말하겠다. 이것은 (대중과 언론, '여혐' 혹은 '남성 중심' 사회에 의한) 약육강식하는 식인사회의 킬링필드이다. 제도화된 약육강식이 아니라면, 이처럼 안타깝고 지속적이며 동일한 유형의 자살에 의한 죽음이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고 방치되고 순간적으로 소비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명복'이란 '언어'조차도 허망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구하라와 설리의 죽음을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가수 구하라의 빈소가 25일 오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이곳은 팬들을 위한 빈소로 가족과 지인을 위한 빈소는 다른 병원에 마련됐다. ⓒ 사진공동취재단

 
구하라 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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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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