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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로 남편-아이 잃은 여성... 그가 만든 논란의 장면

[안치용의 영화적 사유] 다이앤 크루거 주연 <심판>

19.11.12 19:40최종업데이트19.11.1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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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전개와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심판>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 <심판>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폭탄 테러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한 여자가, 범인들이 밝혀졌지만 사법제도의 문제로 응징할 수 없게 되자 스스로 그들을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일단 줄거리가 익숙하다.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소재다. 그러나 실제 영화는 예견과 다르게 전개된다. 복수에 따르는 활극이 별로 없다. 무엇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진지한 드라마에 가깝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할 거리는 인종문제이다. <심판>을 연출한 파티 아킨 감독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나고 자란 터키계 독일인이다. 아킨 감독은 이주민의 자식으로 자신이 직접 겪은 독일 내 소수민족 문제를 영상에 담아내곤 했는데, <심판>도 이러한 계열에 속한다.

터키계 독일인의 '인종차별' 고발

주인공 '카티아'(다이앤 크루거)는 폭탄테러로 남편과 어린 아들을 잃는다. 카티아는 사고 후에 폭탄테러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기억해 내고 범인을 찾는 경찰에게 알려준다. 영화가 전개되며 밝혀지듯, 폭발사건은 네오나치에 의한 인종혐오범죄였다. 남편이 쿠르드족일뿐더러 남편 사무실이 터키인 등이 사는 이주민 지역에 위치했기에 불특정한 표적이 되어 테러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경찰은 혐오범죄보다는 쿠르드족 남편의 범죄 경력을 근거로 범죄조직 간의 암투에 더 비중을 둔다.

영화는 경찰의 태도에 깔린 인종적 편견을 보여주면서 앵글은 인종혐오로 폭탄테러를 저지른 네오나치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심판>은 독일에서 터키인을 겨냥해 실제로 일어난 일련의 살인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이다.

네오나치 조직 NSU(National Socialist Underground)에 소속된 독일인 3명이 2000~2007년 10명의 시민을 살해했는데, 그 중 8명이 터키에서 온 이민자이거나 쿠르드인이었다. 사건 발생 당시 독일 정부와 언론은 범인보다는 희생자의 출신에 집중한 모습을 보였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이러한 인종 차별과 혐오는 영화 <심판>에서도 극의 형식으로 반영되어 있다.

이 영화는 아킨 감독의 사회고발이다. 그것은 영화적 감수성에만 의존하지 않았고 적잖은 당사자성을 드러냈다. 아킨 감독은 "희생자 중 한 명은 내 형의 지인이었고, 충분히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영화는 추모와 고발을 수행하게 된다. 고발에 있어서는 거대담론을 피하고 개인사를 다큐처럼 잔잔하게 조명하는 방식을 취했다.

정의와 존엄
 

영화 <심판>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주)


인종문제 외에도 생각할 거리는 많다. 사법제도의 취약, 혐오범죄 조직의 국제적 연결 등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논쟁적이라는 <심판>의 엔딩에 더 주목하게 되었다. 아킨 감독은 보도자료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작품이 논쟁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제 영화를 통해 논쟁점을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해요. <심판>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예요. 삶에 대해, 정의에 대해, 독일의 법 시스템에 대해,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죠. 제가 이것들에 답을 내릴 수는 없는 상황이니, 그냥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건 괜찮지 않나요?"

감독이 말한 대로 이 영화의 주제 중의 하나가 정의이다. 국가의 사법제도가 실현하지 못한 정의를 피해당사자가 직접 실현하는 것에 대해 큰 이견은 없지 싶다. 물론 "악법도 법이다"라며 악법(과 그것의 관철)의 대승적 수용이 가능한 건전한 시민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공동체의 와해는 정당하게 행사되지 못하는 공권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경향을 가속시킨다. 그리하여 최소한 탈리오원칙(동태복수법)의 준수까지는 심정적으로 수용되지 않을까. 실제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동태복수의 실현 능력이 없거나 복수 과정에서 자신이 입을 피해를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심판>에서도 동태복수를 다룬다. 인종혐오 테러로 남편과 자식을 잃은 여자는 사법체계의 취약함으로 인해 석방된 테러범들을 자력으로 응징하고자 한다. 같은 종류의 폭탄을 만들어 같은 종류의 죽음을 돌려줄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주인공 카티아는 첫 번째 시도에서 결행 직전 물러난다.

이 즈음에서 <심판>의 음악감독을 맡은 조슈아 홈이 소속된 미국의 하드 록 밴드 '퀸즈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음악을 떠올리는 게 좋겠다. 아킨 감독은 조슈아 홈을 음악감독으로 캐스팅한 이유를 그들의 노래 중 하나인 'I Sat by the Ocean'으로 설명했다.

영화 <심판>은 총 3장으로 나뉘는데, 폭발로 인해 가족을 잃는 1장 '엄마', 범인을 밝혀내기 위한 법정 싸움을 담은 2장 '정의', 그리고 주인공의 치열한 고민을 담은 3장 '바다'이다. 아킨 감독은 "'퀸즈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음악이 매우 공격적이면서 자기파괴적인 우울함을 가지고 있다"며, 자신이 바란 <심판>의 이미지와 완벽히 일치했다고 말했다.

첫 번째 복수 시도, 그리고
 

영화 <심판>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주)


첫 번째 복수 시도를 스스로 그만 두고 돌아온 뒤 그리스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주인공의 고뇌는 깊어간다. 마침내 두 번째 시도에 돌입하고, 이후 결과를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아킨 감독이 언급한 "자기파괴적인 우울함"이 아마도 엔딩의 논란장면을 뜻하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말을 "자기파괴적인 존엄"으로 바꾸고 싶다. '자기파괴'를 감행함으로써 탈리오원칙은 (자신 쪽에 불리한 방향으로) 깨졌지만, 복수는 실현되었고 동시에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까지도 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도 사이에 각성의 계기로 제시되는 두 개의 장치가 눈에 띈다. 하나는 폭파하려고 한 테러범들의 캠핑카에 인접해서 날갯짓 하던 새이고, 다른 하나는 카티아의 몸에서 다시 시작된 생리이다. 카티아는 폭발사고 후 생리가 멈췄다. 기이하게도 자기파괴의 복수를 앞둔 시점에 자신의 몸이 이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온다. 한 마리의 작은 새를 구하고, 치르지 않아도 되는 죗값으로 온전해진 자신의 몸을 바친다. 정의는 가장 존엄한 방식으로 실현된다. 존엄은 항상 값비싼 법이다.

이 영화는 독일영화로 원제가 < Aus dem Nichts >이다. 한국 개봉제목 <심판>과는 결이 다르다. "Nichts"는 '무(無)'나 완전한 공허를 뜻한다. "Aus"는 영어로 'out' 정도의 의미다. 영화의 2장이 '정의'이고 3장이 '바다'인 것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영화는 인종문제를 내세우지만 정의의 문제를 함께 다루면서 결국 인간 존재의 문제로 막을 내리는 구조이다.

주인공 카티아를 연기한 다이앤 크루거는 이 영화로 제70회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독일에서 태어난 다이앤 크루거는 프랑스와 영국에서 활발하게 모델로 활동을 하다가 뤽 베송 감독의 눈에 띄어 배우로 데뷔했다. 할리우드까지 진출해 <트로이(2004)>, <내셔널 트레져(2004)>,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 등에 출연했는데, 흥미롭게도 <심판>은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국어인 독일어로 연기한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11월 14일 개봉.
덧붙이는 글 안치용 기자는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겸 한국CSR연구소 소장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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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평론하고, 래디컬 정치를 사유한다. 활자에도 익숙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글을 쓴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대학생들과 자주 접촉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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