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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에 피로감까지... 'VIP' 굳이 불륜이어야 했을까?

[TV 리뷰] 드라마 속 다양한 재료들, '불륜'의 향이 망가뜨릴 수도

19.11.05 13:26최종업데이트19.11.0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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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드라마 < VIP >의 한 장면 ⓒ SBS

 
예상은 했지만 어김없는 고구마가 썩 달갑진 않다. SBS 월화 드라마 < VIP > 3회는 별다른 진전 없이 마무리 됐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호텔로 간 남편 성준(이상윤)을 발견한 정선(장나라)은 "믿을 테니까 그냥 아니라고 말해!"라고 다그친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성준은 정선의 바람처럼 부인하는 대신 "끝났어"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내놓았다. 

도대체 무엇이 끝났다는 것일까. 바람을 피우긴 했으나 자신의 감정만큼은 정리됐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 파국의 관계가 모두 종결됐다는 뜻일까. 눈앞에서 자신의 불륜을 시인하는 정직한 남편에 절망한 정선은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 오열했다. 모든 것을 잃은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삶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정작 정선은 무엇도 끝낼 수 없었다. 

성준을 잃는 게 너무도 두려웠던 정선은 이혼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일상은 계속됐다. 같은 사무실로 출근해야 하는 두 사람의 주변에는 불편한 공기가 감돌았다. 주변 사람들도 그 낌새를 눈치챌 정도였다. 비록 성준은 불륜의 대상이 정선이 모르는 사람이라 했지만, 정선은 "당신 팀에 당신 남편 여자가 있어요"라는 익명의 문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의심의 부피는 점차 커져만 갔다. 

결국 정선은 성준에게 용서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진실'을 들여다보지 않은 상태에서 진정한 용서가 가능한 것일까. 성준은 '일종의 사고'였다는 말 이외에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모르는 게 약일까. 덮고 가는 게 답일까. 더구나 정선은 자신의 상처를 보듬을 시간조차 충분히 갖지 못했다. 사무실 내 동료들에 대한 의심은 계속될 테고, 그 의심이 끝내 정선을 파괴할 것은 뻔하다. 

"끝났어"라는 성준의 맥 빠지는 해명
 

SBS 월화드라마 < VIP >의 한 장면 ⓒ SBS


< VIP >는 시청자들을 정선의 시선에서 '남편의 불륜 상대 찾기'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차해원 작가는 시청자들에게 명쾌한 답을 주지 않은 채 여러 복선과 장치를 통해 긴장감을 유지시켜 나가고 있다. 시청자들은 오직 "당신 팀에 당신 남편 여자가 있어요"라는 익명의 문자에 기초해 추리 게임에 나섰다. 그러나 애초에 문자의 진위가 확인되지 않았고, 성준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확증도 없다. 

성준의 "끝났어"라는 맥빠지는 해명과 익명으로 온 문자의 내용과 달리 (그 대상이) 정선은 모르는 사람이라는 성준의 대답은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 (왠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는 인상마저 풍긴다.) 게다가 성준은 정체불명의 남성으로부터 서류 봉투를 건네 받고 그 대가로 돈을 건네기도 했다. 뭔가 훨씬 큰 '비밀'을 품고 있는 듯 보였다. 

또, 불륜 대상 후보(?) 선상에 오른 VIP 전담팀 이현아(이청아), 송미나(곽선영), 온유리(표예진)는 이른바 '나쁜X'이 되기에는 혐의점이 너무 없었다. 의심을 하게 만드는 정황들은 너무 도드라져서 오히려 의혹을 거두어 갔다. 캐릭터에 대한 묘사도 제법 섬세했는데, 작가의 애정이 듬뿍 들어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단순히 불륜녀로 몰아가 매장할 만한 캐릭터들은 아니었다. 

이쯤되니 질문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꼭 '불륜'이어야 했을까? < VIP >를 보면서 드는 아쉬움이다. < VIP >는 백화점 상위 1% VIP 고객들을 관리하는 전담팀의 활약과 '불륜 상대 찾기'라는 추리 게임, 두 가지 틀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이야기가 잘 버무려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흥미로움과 매력도는 전자가 훨씬 풍성한데, 후자의 강렬함에 묻히고 있는 것이다. 

설득력 없는 전개 개속된다면... 허탈감만 커질 듯

백화점 내의 VIP 전담팀은 그동안 잘 다뤄지지 않았던 낯선 영역이라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또, VIP 전담팀 내의 인물들도 (굳이 불륜으로 의심받게 하지 않더라도) 저마다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가 다양해 뽑아낼 수 있는 스토리가 한가득 아닌가. 또, 졸부 VIP 고객(배혜선) 등 흥미로운 캐릭터들도 얼마든지 끄집어낼 수 있어 보인다. 

그런데 '불륜'이라는 독한 향이 < VIP >라는 드라마에 들어간 다양한 재료들의 개별성을 망가뜨린 듯하다. 혼신의 힘을 다한 장나라의 연기가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이끌어 내며 시청률 상승(3회 시청률 8%)을 견인하고 있지만, 고구마 전개에 계속된 '찾기'는 피로감을 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게다가 설득력 없는 전개이거나 어설픈 반전으로 이어진다면 허탈감은 더욱 커지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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