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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온갖 범죄가 대형교회에..." 한 역사 작가의 일갈

[이영광의 '온에어' 11] 다큐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심용환 역사 작가

19.10.21 16:03최종업데이트19.10.2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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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프리젠터로 참여한 심용환 역사 작가 ⓒ 이영광

 
지난 1월, 3.1 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CBS 다큐멘터리 2부작 <북간도의 십자가>가 방송됐다. 당시 화제를 모았던 이 다큐멘터리는 영화로 제작돼 지난 17일 개봉했다. <북간도의 십자가>는 100여 년 전 십자가 하나만을 붙들고 조선 독립을 위해 일제와 맞서 싸운 선조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작품이다.

특히 <북간도의 십자가>는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씨가 작은 아버지인 문동환 목사 역을 맡아 심용환 역사 작가와 대화 형식의 내레이션으로 꾸미는데, 그것이 매우 흥미롭다. 북간도에 다녀온 이야기가 듣고 싶어 지난 14일 서울 시청 근처 프레스센터에서 심 작가를 만났다. 다음은 심 작가와 나눈 일문일답.

- 프리젠터로 참여한 다큐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가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어떠세요.
"여기까지 이야기가 왔다는 데 대한 일종의 놀라움과 감사함이 있죠. 사실 영화화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뿌듯하기도 합니다. 영화배우나 감독에게 (영화가) 개봉되면 어떤 기분이냐고 묻지 않나요. 그런데 그들은 영화 수십 번 보지 않았을까요? (그들과) 비슷한 감정이 아닐까 해요. 다만 양심적이고 도덕적 책무를 감당하는 사람들의 의지로 한국교회가 변화하는 첫 번째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10만 명은 안 되더라도 몇 만 명이라도 보면 좋겠어요."

- 시사회는 어땠나요.
"반응은 좋았어요. (관객들이) 먹먹했다고들 하셨어요. 특히 한국 역사를 사랑하고 역사와 시대 속에서 기독교 정체성이나 기독교의 역사적 책무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이라면 더 감동적으로 보셨을 것 같아요. 영화에서 현대사로 올 때 직설적으로 풀기보단 은유적으로 많이 풀었어요. 현대사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감동적이면서도 막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이 시대에 흔들리는 한국교회를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동적이고 진지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해요."

- 북간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나요.
"사실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북간도에 대한 지식은 상식이죠. 왜냐면 영화에 나오는 김약연 선생이나 다섯 개 가문 얘기뿐만이 아니라도, 북간도에는 지금도 200만 명 이상이 살고 있어요. 그리고 그곳에 독립군 기지가 건설되고 청산리 대첩이 일어났다는 것, 그 멤버들이 임시정부 참여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죠. 그러나 그걸 직접 일일이 걸어 다녀보고 꼼꼼히 검토해 보니까 감흥이 남달랐어요.

영화를 보시면 후반부 윤동주나 문익환, 문동환 특히 문익환 목사님은 인상적으로 그려져요. 제가 굳이 얘기하고 싶은 건... 전반부에 실제 북간도를 새로운 애국계몽과 기독교와 독립운동 근거지로 만드는 데 있어선 김약연 선생 역할이 결정적이거든요. 북간도 지역에 민족교육 기관 세우는 과정에서 김약연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이 작품 통해 김약연 선생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어요."

- 내레이션도 참여하셨잖아요. 보통 내레이션과 달리 배우 문성근씨가 문동환 목사 역을 맡아 대화하는 형식이었는데 어떠셨어요?
"되게 부담스러웠죠. 왜냐면 대배우 문성근씨하고 녹음실 같이 들어가서 했거든요. 너무 대배우와 하다보니 저는 일반인이라 어색하고 부끄럽고 민망했어요. 저는 영화를 여러 번 보고 나니 민망하진 않은 데 영화를 보시는 관객은 어색함을 느끼실 것 같아요.

그래도 다큐멘터리 영화가 주는 매력이죠. 배우를 쓰면 자연스럽기는 하겠지만 진정성이 떨어질 수 있잖아요. 그러나 진짜 역사를 공부하고 있고, 기독교인이고, 문동환 목사님의 삶을 존경하는 후배가 목사님을 찾아가서 대화하는 거니까요. (영화에서) 목사님이 얘기를 많이 하시는 건 대본에 예정돼 있던 게 아니에요. 제 자랑이 아니라 제가 진정성을 드러내서 마음을 토로하고 후배로서 역사의식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니까 목사님이 진짜 마음을 여시고 이야기를 쏟아낸 거거든요. 보면 연기자가 보여주는 탁월함이나 내레이션의 탁월함은 1도 없는데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명명하고 싶어요."
 

다큐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프리젠터로 참여한 심용환 역사 작가 ⓒ 이영광

 
- 북간도에 가보니 어떻던가요?
"남아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영화를 굉장히 적은 예산으로 힘들게 찍었어요. 교회는 돈이 많지만, 기독교 문화자산 쪽으로 유통이 안 돼요. 더군다나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기독교 역사 인문학 같은 경우 많은 기독교인이 불경하게도 봐요. '왜 비판적 사고하냐'나 '시대의 문제 앞에 왜 고민하냐'면서 저부터도 20년 욕먹으며 커왔거든요."

- 영화에서 음악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왜 음악에 신경 많이 썼어요. 북간도가 다 옥수수밭 아니면 인삼밭이에요. 우리 땅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역사 유적지를 만들거나 관리하는 게 불가능했을 거예요. 사실 우리 땅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 산 사람들에겐 '디아스포라'거든요. 한반도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 넘어간 사람, 독립운동하러 넘어간 사람들이니까요. 일본이 거기까지 오면, 또 도망가셨고요. 그렇기 때문에 북간도엔 남아 있는 것도 별로 없었어요."

- 아무래도 역사 작가라서 일반인이 보는 시각과 다를 것 같은데.
"다르죠. 청산리전투나 봉오동전투 같은 경우도 구체적으로 알잖아요. 그런데 가보니 인삼밭밖에 없었거든요. 그때 비감함을 느꼈죠. 우리가 보통 윤동주 시인을 많이 기억하지만 영화에는 김약연, 윤동주, 문익환, 문동환 등 여러 사람들이 나와요. 사람들은 영화 볼 때 보통 (유명한) 사람을 좋아하잖아요. 그러나 역사라는 건 수많은 평범한 사람이 모여서 만드는 것이고, 수많은 (평범한) 사람이 쌓여 그 위에 (영웅이) 피어나는 거거든요. 그런 게 영화에 표현된 것 같아요. 찍으면서는 디테일하게 느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의미 있던 시간이에요."

-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뭐였어요?
"영화에 선바위가 나오잖아요. 그곳은 관광지가 아니에요. 거긴 사람들이 가지 않아요. 실제로 선바위란 곳은 당시 용정 일대에 살던 사람들의 소풍터예요. 문동환 목사님에게 물었더니 실제로 올라가셨대요. 영화에선 제가 폼을 잡고 서 있으면 드론이 올라가서 찍잖아요. 사실 저 고소공포증 환자거든요. 올라갈 땐 절벽이 아니고 동네 언덕 오르듯 올라가서 서니까 절벽인 거예요. 반 PD가 저에게 뒤돌아보지 말고 있으라고 하더라고요. 왜냐면 제가 바라본 쪽은 둥글둥글 산이었어요. 그러나 돌아보니 절벽인 거죠. 촬영 중이니까 폼을 잡고 서 있었는데 고소공포증 환자에겐 무섭죠. 그 절벽에 서면 앞에 산맥이 보이고 그 뒤엔 두만강이고 그걸 넘으면 함경도 회령이에요. 그런걸 알고 보면 느낌이 이상하고 간도 벌판도 보여요."

- 문동환 목사 자택에서 만나는 장면도 나와요. 문 목사 처음 만났을 때 어떠셨어요?
"저는 보수 교단 출신이에요. 예장 통합교단에서 신앙 생활을 했고 지금은 합동교회에 다니죠. 또 C.C.C라는 매우 보수적인 선교단체 출신이라, 사실 기장이나 민중 신학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 대신 저는 역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보수적인 신앙과 역사 인식에 충돌되는 지점이 많거든요. 왜냐면 제가 다닌 교회에선 세상 문제에 신경을 끄고 교회만 열심히 다니라고 하세요. 선교단체에서도 복음전파와 영혼 구원만 하면 되는 데 쓸데없이 생각이 많다고들 하시고요.

그러나 예수님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과 호흡했잖아요. 현실 문제와 역사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영혼 구원과 천당이 어디 있냐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게 해결이 안 됐어요. 이런 갈등 속에서 기독교 장로회의 문동환 목사 같은 분이 노력하셨고, 그게 제게도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줬어요. 그 때문에 98세로 병상에 누워계신 문동환 목사님 앞에서 고민이 많았어요. 영화에 보면 문동환 목사님이 '참 잘 왔다. 그 소리가 듣기 좋구나'라고 제 이름을 묻는 장면이 나와요. 되게 고마웠어요. 왜냐면 한평생을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하시고 죽음을 앞두고 계셨잖아요. 그런 분이 제 진정성 있는 고백에 '그 말이 듣기 좋구나. 이름이 뭐라고? 내가 다시 사는 것 같아'라고 말씀하시는 데 감사했죠."

- 목사님 돌아가셨단 소식 듣고 어떠셨어요?
"<우리는 누구도 처벌하지 않았다>라는 책을 영전에 바쳤어요. 우리나라가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에 대해) 정당한 처벌을 하지 못했다고 쓴 책이에요. 지금도 사실 많은 사람들이 검찰 개혁을 부르짖는 이유는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라고 생각해요. 똑같은 죄를 지었는데 어떤 건 기소하고 어떤 건 기소를 안 하기도 하니까요. 문 목사님이 돌아가셨단 소식을 들었을 땐 슬픈 것보다, '목사님 제가 목사님만큼은 아니더라도 제 영역과 과정에서 최선 다하는 삶 살겠습니다'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영전에 국화와 <우리는 누구도 처벌하지 않았다> 책을 올렸어요."
 

다큐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프리젠터로 참여한 심용환 역사 작가 ⓒ 이영광

 
- 십자가 하나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선조들의 발자취를 밟으면서 느끼는 것도 있었을 것 같아요.
"부끄러움을 느꼈죠. 영화 VIP 시사회 때 김기석 목사님이나 이만열 교수님이 '1920년 이후 한국 교회는 예수 천당에 모든 걸 걸었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은 '영화를 보고 감동적이라 말하고 싶은데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씀하셨어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북간도로 떠난 선조들의 삶을 보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그렇지(그런 숭고한 정신을 갖고 있지) 않잖아요. 물론 그런 교인들도 있겠지만 소수이고, 총회 헌법에 따르면 (세습이) 안 되는데도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잖아요. 또 목사가 수십 명의 성도에게 그루밍 성폭력을 가했다는 혐의를 받아도 교회를 다시 세워 운영하고요. 저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은 자랑스러움보다 착잡함, 고통스러움이었어요.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하나라는 책임감도 많이 느꼈고요.

냉정한 말이지만 한국교회는 이미 중요한 지점을 지났다고 생각해요. 1997년 금란교회 사태를 통해 한국교회 부정부패가 처음 고발됐고 그 이후 20년이 지났어요. 우리나라 대형교회 중 문제없는 교회가 별로 없어요. 세습 안 한 교회도 거의 없고요.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범죄가 우리나라 교회에도 다 있어요. 그렇지만 성도들은 (교회를) 개혁하지 않고, 교회가 아들에게 세습된다고 해서 떠나지도 않아요.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배가 크니 침몰하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지, 침몰하는 건 확실하거든요."

- 그럼 한국교회에 희망이 없다고 보세요?
"전 희망이 없다고 봐요. 그런데 다만 교회가 침몰하는 것과 하나님이 침몰하는 건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더라도 수많은 구명정과 수많은 배를 가진 사람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이 거대한 난파선 속에서 생각 있고 뜻 있는 사람들을 따로 떼내어 갈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목사가 아니지만, 제역할은 역사라는 조금 다른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게릴라죠. 예를 들면, 북간도로 가서 새로운 공동체를 마련하고 역사라는 무기를 통해 역사의식에 목말라 하는 크리스천들과 손을 잡아야죠. 전체를 구원하지 못하겠지만 새로운 형태의 고지 만드는 역할을 해나가야 할 거 같아요. 그 과정의 섭리 때문에 저를 <북간도의 십자가>에 참여시켰다고 믿어요."

- 영화를 보며 관객이 느끼길 바라는 게 있을까요?
"올해 3.1운동 100주년이잖아요. 영화를 보시고 나서 우리 역사에 대해 공부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영화를 보시면 '문익환이 어떤 사람이기에' 혹은 '북간도 사람은 아니지만, 문익환을 행동하게 만든 장준하가 누구기에 저렇게 하지'라는 의문이 들 거예요. 장준하, 문익환의 자서전이나 글을 읽으면서 이 분들에게 관심을 가지셔도 좋을 것 같아요."
 

<북간도의 십자가> 포스터 ⓒ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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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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