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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 치료 거부하는 어머니, 그리고 아들의 선택

[넘버링 무비 159]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커밍 홈 어게인'

19.10.07 10:54최종업데이트19.10.0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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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부산국제영화제 ⓒ 부산국제영화제


01.
아들은 엄마를 위해 밥상을 차린다. 자신이 기숙학교에서 지내던 시절, 처음 면회를 오면서 준비해 오셨던 음식들로. 모두가 자신이 좋아했던 것들이었다. 뼈에서 맛이 우러나기 때문에 얇게 저민 살을 뼈에 붙여 두어야 한다던 갈비도 재우고, 명절 때마다 밥상에 오르던 당면도 만들고. 작지만 정성이 느껴지는 데코레이션의 다양한 전도 굽는다. 어린 시절의 기억 그대로. 옆에는 한국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누나도 함께다. 이 한 번의 상을 차리기 위해 다니던 회사마저 그만둔 아들 창래. 그는 뉴욕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전도유망한 기업의 중요한 인물이었다.

웨인 왕 감독의 신작 <커밍 홈 어게인>은 위암에 걸린 어머니의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는 아들이 그 과정에서 하루 동안 떠올리게 되는 과거의 일들에 대한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정된 4편의 갈라 프레젠테이션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한 이 작품은 재미 교포 가족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다루면서도 죽음과 이별을 앞두고 있는 가족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파고든다. 웨인 왕 감독의 절친한 작가로 알려진 이창래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에 기초하고 있으면서, 젊은 시절 파킨슨병을 앓던 어머니를 병간호 해야 했던 감독 본인의 경험이 담겨있다. 이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이 아들인 창래인 것과 동시에 아들의 역할을 다하고 싶지만 어머니의 뜻 또한 받아들여야 하는 상충하는 감정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이유다.

이번 작품은 홍콩에서 태어난 웨인 왕 감독이 중국계 미국 감독으로서 작품 초기에 집중했던 이민 세대의 아이덴티티를 이어받은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감독 특유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소시민 삶 속으로부터 이끌어낸 따뜻하고 가슴 아린 인간적인 이야기도 함께 묻어난다.

02.
특정 상황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보편적으로 이해 가능하고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의 감정과 유사한 상황을 지나오지 않은 상황에서의 간접적인 경험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지점의 감정. 보편적이라는 단어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경계의 정의는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나 행동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전자의 감정보다는 후자의 감정에 조금 더 치우쳐 있다는 기분이 들게끔 만든다.

물론 이 영화에도 보편적 감정을 끌어내는 마음들이 존재한다. 자신이 떠나고 난 뒤에 남겨질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언제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어머니의 마지막 남은 인생을 위해 최대한 아들 된 도리를 하고 싶어 하는 아들의 마음처럼 말이다. 다만,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감정의 고저가 훨씬 더 크게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영화 종반부에서 표현되는 종래의 감정적 분출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되려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영화 <커밍 홈 어게인>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3.
가족이 함께 모여 어머니와 만찬을 나누는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아들이 그 과정에서 떠올리는 과거의 기억에 대한 장면들은 이 영화가 하나의 시점이 아니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게끔 만들어준다. 애석하게도, 지금 당장 어머니를 생각하며 떠올리게 되는 과거의 장면들은 대부분 나빴던 일들이지만 말이다. 우리가 이따금 행복한 기억이 아니라 아픈 기억으로부터 더 커다란 미련을 얻게 되곤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표현이다. 항상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멀리서 던진 어머니의 농구공이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며 슛을 성공시키던 날처럼 함께 웃고 있던 날들도 분명히 있다.

그런 기억들로 인한 미련이 그로 하여금 현재의 모두를 포기하고 어머니에게 매달리게 하는 이유가 된다. 그 자신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서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오면 사실대로 이야기하면서도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 갈피를 제대로 잡을 때까지 어머니와의 시간을 연장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이제야 알게 되어서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스러운 2번의 항암치료를 끝낸 어머니가 더 이상의 연명 치료를 포기하고 안식을 얻겠다고 선언한 뒤에 불같이 반대하는 누나에 맞서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나서는 창래의 모습. 이는 완전한 이성의 영역에 반응한 행동이다. 여전히 그는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이번에는 그 반대로 완전한 감성의 영역에 반응해 무너지고 만다.

04.
일반적으로 과거의 기억과 현재 상황이 교차되는 경우에 각각의 장면이 서로 호응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기억이 발단이 되어 다음의 상황이 이어진다거나 지난 경험의 결과로 인해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된다든가 하는 식이다. 영화 <커밍 홈 어게인>에서의 활용은 조금 다르다. 기억은 기억으로 존재하며 현재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요인일 뿐, 현재 상황을 어떻게도 바꾸어 놓을 수 없다. 새로운 선택도 할 수가 없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어떤 상황에서도 바뀔 수 없는 고정된 값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영화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느껴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분명히 짜인 극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 느껴지는 껍데기를 떼어내고 나면 허구로 이루어진 상황은 이 작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기자들의 연기는 허구일지 모르지만, 그 소스가 되는 상황과 감정은 모두 진짜인 셈이다. 예상 가능한 결말을 향해 나아가지만, 영화는 마지막까지 아들의 모습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는다. 결과값이 고정되어 있다는 뜻의 다른 의미는 결과보다 그 결과로 인해 남겨지게 되는 것들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며, 감독은 그 의미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 <커밍 홈 어게인>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5.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기자회견에 웨인 청 감독은 건강상의 이유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다.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일이었지만 특별히 따로 전해 온 영상을 통해 그는 좋은 기회에 다시 한번 부산을 찾겠다고 말했다. 실망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 영화가 그의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이야기했듯 그와 절친으로 알려진 소설가 이창래와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고,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으며, 1990년대에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음악 이문세의 '옛사랑'이 타이틀 OST로 활용되었다. 감독의 사랑하는 것들로 채워진 작품이 따뜻하지 않을 리가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려진 작품이 마음을 채우지 못할 리 없듯이 말이다.
 
부산국제영화제 BIFF 커밍홈어게인 웨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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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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